동양의 베니스 시탕에서 꾼 한 겨울밤의 꿈

by 요니

알바를 하며 몸이 근질근질하던 찰나에 계약건 통역으로 칭다오에 갈 일이 생겼다. 비행기표를 찾아보라는 업체 사장님께 양해를 구해 일주일 먼저 가있겠다고 했다. 업체 사장님은 흔쾌히 알았다고 표를 끊어주셨고 부산-상해, 칭다오-부산으로 표를 얻었다.


교환학생 시절 친한 언니 T가 상해에 있어 상해로 일주일 전에 갔지만 언니가 너무 바빠 볼 수가 없었다. 혼자 카페에서 계약서를 다시 살펴보며 통역 준비를 하고, 상해 곳곳을 걸어 다니며 구경했다.

그러다 계약이 불발되었고 일정이 붕 떠버렸다. 언니는 바쁜 일정으로 얼굴도 보기 힘들고 그래서 혼자 여행을 다짐했다. 우전(乌镇)을 갈까 했는데 우전은 너무 많은 사람들이 가고, 아직까지 중국 현지인들만 주로 간다는 시탕(西塘)을 알게 되어 그곳으로 갔다.


*시탕과 우전은 상해에서 근접한 수향마을로, 수향은 물의 고향이라는 뜻이다. 고전은 옛 마을이라는 의미로 이곳은 몇 백 년이 넘는 건물들이 수로를 둘러싸고 있어 낮이나 밤이나 아름다워 관광객들이 줄을 선다고 한다.

언니는 겁도 없다며 어떻게 혼자 여행 갈 생각을 하냐고 했지만 사실 상해에서 혼자는 너무 심심하고 뭐라도 해야 했다. 위쳇 (위쳇은 카카오톡과 같은 중국 어플)에 있는 예약 사이트에서 대충 호텔이랑 기차표를 예약했다. 상해에서 시탕은 거리가 가까워서 무궁화호 같은 기차들만 운행했다.

하루 전 날 예약을 끝내고 설렌 마음으로 기차를 탔지만 마주 보고 앉는 4인용 좌석에 사람 몸 보다 더 큰 짐을 들고 다니는 중국인들 속에 혼자 덩그러니 있으니 갑자기 무서워졌다. 나 진짜 가도 되는 거니?

중국의 수향마을 중 가장 상업화가 되었다는 말처럼 시탕은 술집, 클럽, 기념품샵 등 상당했다. 술집의 호갱행위도 장난 아니었다. 게다가 고전(사각형으로 건물들이 수로를 둘러싸고 있는 구조)으로 들어갈 때 입장료도 지불해야 한다.

고전 안에 숙소를 예약했기에 입장료 없이 들어가 짐을 풀었다. 이후 기념품 샵에서 엽서를 사고 엽서 안의 장소를 가이드 삼아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밤이 되니 가게마다 홍등이 켜지면서 강에 비친 시탕고전은 더욱 중국스러워졌다.

술집들의 가격은 안주 포함한 가격으로 혼자 가볍게 온 나에겐 비쌌기에 그냥 지나치고 있었다. 그때 한 호객행위를 하는 직원(리앙이라고 부르겠다.) 이 다가와 옆에서 빠른 속도로 나를 영업하고 있었다. 이미 나를 중국인으로 알고 하는 말들이기에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워 부스 중궈런, 워 팅부동 니더 슈어. (나 중국인 아니야. 니 말 못 알아들어.)"라고 말을 했다.

"나 니 전머 후이 슈어 한위.(그럼 너 어떻게 중국어 하는 거야) " 라며 우리의 대화는 물 흐르듯 시작되었다.

‘혼자 여행 와서 구경하고 있다’라고 하니 자기는 10시에 마친다고 그때 이곳을 구경시켜주겠다는 것이다.

숙소에서 혼자 양꼬치와 칭다오를 마실 계획이었기 때문에 거절했다.

하지만 리앙의 끈질긴 행동에 우선 알았다며 대충 위쳇 아이디를 주고 떠났다.


고전을 나오면 일반 동네가 나온다. 옛 마을에서 현재로 나와 꼭 시간 여행을 한 느낌인데 현실은 여행객 물가에서 현지인 물가로 바뀐다. 덕분에 내 마음도, 내 지갑도 한시름 놓았다. 현지인들이 갈 법한 허름한 가게에서 황먼지(중국식 닭볶음탕)에 맥주를 사 먹고 시탕 맥주와 꼬치 종류별로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맥주를 한 캔 까서 마시고 있는데 리앙에게 연락이 왔다. 못 나간다고 말을 했는데 아까 흘려 말했던 내 게스트하우스 위치를 알고 있었고 기다린다는 말로 전화가 끊겨버렸다. 거절을 하려고 나가서 주위를 살펴보는 순간

“워!!!!“

나는 깜짝 놀란 채 주저앉았고 깔깔 웃는 리앙의 모습에 실소가 터졌다. 그래, 뭐 맥주 한 잔만 하고 오자.

낮에 내가 걸었던 낯선 길을 같이 걷다 리앙은 단골 술집이라는 곳으로 나를 데려갔다. 중국에서는 칭다오, 하얼빈만 주로 마시는데 리앙은 코로나를 시켰다. 여기는 관광객들 장사라 외국 술만 파나보다.


우리는 라이브 공연과 떨어진 제일 넓은 자리에 앉았다. 넓은 자리가 부담스러웠으나 노랫소리가 작게 들려 이야기를 하며 술을 마시기 좋았다. 그때 퇴근을 한 리앙의 지인이 ‘여자친구야?’라고 물으며 자연스럽게 앉았다.

‘한국인 여행객’이라는 신박한 단어는 작은 동네에 비슷한 일상을 사는 그들에게 궁금증을 유발했는지도 모르겠다.

피곤함과 호기심이 섞인 리앙의 지인들이 한 명, 두 명 오기 시작하면서 남녀가 섞인 열 명이 채 안 되는 중국인들과 술자리를 하게 되었다.

그때의 우리는 마치 오래된 동료 혹은 동창회를 위해 예약하고 만난 사람들 같았다.

일, 여행, 연예인, 그리고 성형까지 여러 주제를 넘나들며 이야기를 나눴고 맥주 빈 병은 30병이 훌쩍 넘었다.

이렇게 편견도 어색함도 없는 다수와의 자리는 처음이었는데 너무 자연스러워 웃기기도 했다.

우리의 술자리는 새벽 4시가 넘어서 끝이 났다.


시탕 겨울의 새벽 4시는 해가 뜨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정적만이 가득한 곳에서 알딸딸해진 리앙과 나는 뛰어다니며 80년대 나 잡아봐라 놀이를 했고, 지나가다 보이는 인형 뽑기 가게에서 돈을 날렸다. 아주 멋진 곳을 데려가준다며 내 손을 잡고 뛰어서 간 곳은 고전이 한눈에 보이는 곳이었다. 어둠 속에서 빛 밖에 안 보였고, 취한 내가 찍은 사진은 흔들린 빛뿐이었지만 그때의 기억은 생생하다.


다음 날이 되어 그곳을 걷다 보니 모든 게 꿈만 같았다. 불과 5시간 전까지 술을 마시던 곳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문이 꽉 닫혀있었고, 우리가 뛰어놀던 곳은 여행객들로 다시 붐비기 시작했다. 그날 밤의 순간을 사진으로 담지 못했다. 그 자리에서 마시던 맥주들과 편견 없는 테이블에서 서로의 일상을 나누던 우리들의 흔적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아직도 그때만 생각하면 꿈만 같다. 마치 처음부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밤과 낮이 다른 장면이 나온다. 그 부분과 시탕의 낮과 밤은 똑같았다. 홍등으로 사람들이 가득했으며, 노랫소리와 사람들의 목소리로 뒤섞여있는 작은 마을. 아침이 되면 노 젓는 사람과 고요하게 찰랑이는 호수의 작은 마을.


동양의 베니스라고 불리는 시탕에서 동양의 비포선라이즈를 찍어버렸다. 나 또한 그다음 해 여름 이곳에서 리앙을 다시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