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깃도 못 스치는 사이

by 요니

선선한 바람이 불던 일요일 저녁,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반포한강공원으로 향했다. 1년간 가야지 가야지만 했던 곳을 무슨 바람이 불어 갑자기 가게 된 건지 아직도 알 수가 없다. 선선한 바람을 따라 잠수교를 지나는데 무지개 분수쇼가 눈앞에서 펼쳐졌다. 지나가던 사람들도,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모두 핸드폰을 들고 서로를 찍어주거나 스스로를 찍고 있다.

걷다 보니 잠원한강공원의 스타벅스를 봤고 ’ 다음엔 저기서 책 읽어야지 ‘ 생각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자정을 넘어 월요일이 되어간 시점에 무지개 분수쇼를 올린 인스타에 누군가 답장을 보냈다.


N : 어 나도 봤어

나 : 반포?

N: 반포 옆에 잠원에 있다가 반포 가는 길에서 추워서 집에 갔지

나 : 잠원? 나도 거기 근처 스벅까지 찍고 집에 돌아갔는데

N :?? 나 거기 스벅에 있었어

나 :?????


N으로 말하자면 내가 고등학교 때부터 호감을 가지다 대학 입학 후 마음을 표현했다. 하지만 19살 입시생과, 20살 신입생은 철저히 다른 세계에 살고 있었고 꾸역꾸역 이어지던 관계도 끝이 났다.

’ 끝이구나 ‘라고 느낀 그날부터 3일 동안 걷다가, 엘리베이터를 탄 후 10초 뒤, 버스에 앉자마자 등 눈물은 시도 때도 없이 무자비하게 흘러내렸다.

실연의 눈물이 3일인 이유는 어김없이 눈물을 흘리던 셋 째날 집에 예상치 못 한 큰일이 생겼고 더 이상 N을 위해 흘릴 눈물이 없었다.

시간은 흐르고 우리도 서로의 삶에서 잊히고 있었지만 내 눈물은 마르지 못했다. 어김없이 눈물을 꾹 참고 밤바람을 맞으며 밖에 앉아있던 날, 아주 우연찮게 N과 전화를 하게 되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N은 왜 우는지 묻지 않았다. 자기 이야기를 하다 내 눈물이 잠잠해지는 게 느껴지면 ‘이제 늦었다. 자자.’ 한 마디로 나를 재웠다. 그 이후로도 여러 차례 N의 소소한 일상을 자장가 삼아 잠에 들었다.

N은 내가 울 때 단 한 번도 이유를 묻지 않았다. 난 N의 그 점이 좋았다.

그때부터 우리의 관계는 좋아해에서 행복해로, 무한한 애정은 무한한 응원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몇 년간 어떤 해는 생일축하, 어떤 해는 새해 인사를 카톡으로 인스타 DM으로 간간이 안부를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업무로 인해 인천공항을 자주 갈 때, 내 인스타를 보고 N의 연락이 왔다.


N : 인천공항이야? 나 1 터미널인데!!

나 : 나 방금 1 터미널에서 2 터미널로 넘어왔는데..


신기해하며 이어진 대화로 N은 직업 군인이 되어 인천공항 코로나 관련 업무로 파견 나와있었고 운서역 1번 출구에 숙소가 있다는 것까지 알게 되었다. 그때 내 숙소는 운서역 2번 출구 근처였다.

일찍 업무가 끝나 용인의 언니집으로 가는 공항버스에서 N의 연락이 왔다

”오늘 술 마실래? 나 일요일에 숙소 빼고 다시 인천으로 복귀해 “

이미 버스에 몸을 싣고 용인으로 향하고 있었기에 우리는 결국 만나지 못했다.


구남친 혹은 졸업 후 만난 적 없는 동창생들은 길 한 복판에서 한눈에 들어오더니 딱 한 번이라도 스쳤으면 하는 사람은 꿈에조차도 나오지 않는다.

N과 나는 100m도 채 안 되는 거리에서 몇 번이나 옷깃도 못 스쳤다.

우리는 사실 더 많이 마주쳤을지도 모른다. 카페 다른 테이블에서 서로의 웃음소리를 들었을지도 모르고, 각자 핸드폰을 보면서 같은 도로를 걸었을지도 모른다.

N과의 관계는 약속보다 우연이 어울린다. 스치고 아쉬워하고 신기해하지만 N과 나는 만나자고 말하지 않는다.

그래도 지금처럼 안부를 물으며 지내다 뜻밖의 장소에서 우연히 옷깃이 스치는 바람에 약속으로 이어진다면 말해주고 싶다.

그때 내 눈물을 너의 일상으로 닦아줘서 고맙다. 그리고 지금은 좋은 누나, 동생으로 서로의 행복을 축하하지만 예전에 나 진짜 너랑 결혼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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