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유학4. 그게 사는데 유일한 해결책은 아니니까요

영어가 유일한 해결책일까?

by Liaollet

항상 어디론가 도피를 꿈꿨다. 지금에 만족하기 어려웠고, 여기보단 다른 곳이 훨씬 좋을 거야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밀라노로 도피를 했어도 똑같이 도망치고 싶은 것들은 생겨났다.


가장 먼저 나타난 건 언어였다. 아카데미 수업은 모두 영어로 진행됐다. 심지어 이 아카데미는 전 세계에서 학생을 뽑기 때문에 스페인, 프랑스, 벨기에, 인도, 브라질, 멕시코, 이스라엘, 이탈리아 각국의 영어들이 난무했다. 내가 배웠던 영어가 영어가 맞았던가 라는 의문이 들만큼 발음, 억양, 톤이 다양했다.


하루 종일 영어로 듣고, 말해야 했다. 익숙하지 않은 언어 환경에 노출되면 힘들다. 여행이 아닌 공부나 일을 해야 하는 경우에는 더더욱 말이다. 실수에 대한 두려움은 점점 커져 사람을 굳게 한다. 한 번은 팀프로젝트를 했는데, 브라질 친구가 말했다. “네가 하는 말은 뭐라는지 하나도 모르겠어”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한국말할 때처럼 말하지 못하는 내가 답답했다. 가브리엘 말이 맞았다. 사실 나도 내가 뭐라는지 몰랐다.


심지어 아카데미 일정은 참으로 빨랐다. 오후 6시쯤까지 영어로 디자인 수업을 다 듣고 나면 과제는 매일같이 바로바로 주어졌다. 영어로 자료를 서칭 하는 것도 시간이 걸렸는데, 프레젠테이션을 만들고, 디자인도 단 몇 시간 내에 끝내야 했다. 아카데미였지만 바로 명품브랜드의 실무로 일을 시작해야 했기 때문인 것 같았다.


명품계열 쪽은 시간엄수가 철저하다. 마감시간을 1초도 넘기면 안 됐다. 서툰 영어로 하루하루 따라잡느라 바빴는데, 하루는 아주 늦어버렸다. 그날은 정말 자포자기였다. 아무리 해도 시간 안에 한 것이라고는 60% 정도였다. 스스로 포기했던 날이다. 이곳을 다니면서 제대로 잠을 잔적이 별로 없는데도 항상 시간이 부족했다.


코로나로 수업은 줌을 통해 진행되기도 했는데, 이날 아카데미를 관리하던 엘리자베트의 얼굴표정이 기억난다. ‘너 어쩌려고 이래…‘라는 얼굴이었다. 그날 버티고 버티다 처참하게 뭉개졌다. 그 표정을 마주하고 울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았다. 그녀는 암사자 같은 카리스마로 단호한 구석이 있었는데 도리어 그날은 모든 게 보인다는 듯 친절했다. 그게 더 슬프게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줌미팅이 끝나고 신라면을 끓여 먹었다. 아주 많이 맵게. 그날 라면이 너무 매워 한참을 울었다.


한창 영어가 잘 들리지도 않고, 말도 나오지 않을 때, 집에 서 버거를 만들어 넷플릭스를 보며 먹곤 했다. 말은 못 하는데 먹기는 해야겠더라. 그래도 나름 영어 공부를 한다고 영어자막을 틀어놓고 보고는 했다. 그때 본건 '미드나잇 가스펠'이었다.


눈앞에 가장 크게 보이는 한 가지가 부끄럽게 만드는 때가 있다. 그 처음의 벽이 언어였다. 적응하는 게 느렸다. 이런저런 이유를 찾아 '왜 이러지?'라고 생각할 때는 모든 게 문제가 됐다. 모든 게 걸림돌이었다. 그런데 당장 이런 생각을 한다고 해서 무언가 바로 해결되지도 않았다.


한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훨씬 나아졌다. 지금 이런데 뭐 어때. 모든 걸 다 잘할 필요도 없고 괜찮아. 몇 번이고 스스로를 죽이고 있던 건 난데. 이거 못한다고 죽지도 않았다.


모든 느낌과 생각은 생겼다 지나가는 것이라 여겼다. 그러니 당장 할 수 있는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면 버거를 맛있게 먹는 것. 중요했다. 별달리 특별할 게 없었다.



영어 말 한마디 못했는데, 이 버거는 할 말이 많아 보였다. 먹을 때 재료들이 다 튀어나와 애를 먹었지만 맛있었다. 언어라는 게 사는 데 유일한 해결책은 아니다. 사는 데 할 게 얼마나 많은데, 스스로를 더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후로는 아카데미 졸업이 가까워질수록 영어가 늘어 말도 많아졌고, 영어로 프레젠테이션도 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과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디자인을 설명할 수 있었다. 노력은 할 테지만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언어가 아니더라도 힘들게 하고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게 사는데 전부가 아니라고 괜찮다고 이야기해 주고 싶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조금씩 사소한 행복을 스스로 챙겨주는 것. 이것이 도피한 곳에서 발견한 유일한해결책이었다.


https://youtu.be/89uU_PSClx8
Gabriela Bee - LIKE2LIKE

It's easy to get cynical

Life is so unpredictable

Woooooooo

I like to like things

'Cause so many things are amazing‘



매거진의 이전글코로나 유학3. 머리까지 차오르는 물을 향해 뛰어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