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흰색 속은 고통뿐이다. 차있다면 그것뿐이다.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 있다. 뭘 만들어야 할지 몰라 앉아 있다. 누구보다 오래 앉아 있으면 방법이 떠오를 것 같지?
아니.
그 고통을 견디면 답이 나올 거라는 건 하찮은 바람일 뿐이다. 아스팔트 위로 비에 젖은 전단지가 사람들의 발길에 밟히고 짓이긴다. 더럽게 말라붙어 희끗한 흰색. 검회색 돌 알갱이들 틈에 애처롭게 끼어있다.
일어나지 못한다. 무기력하다.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창작이라는 거창하고도 권태로운 글자로 하얀 캔버스에 마주하는 게 제일 싫다. 쓸 것도 그릴 것도 없기 때문이다. 텅 비었다.
어쩌다 뭐라도 끄적여 놓으면
피비린내 맡은 날벌레들이 꼬인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데?"
어디서도 못 찾은 논리를 캐내려 날갯짓이 재빠르다.
"음... 그건... 그냥.."
"이유가 없어? 그냥이 어디 있어!"
모든 게 설명이 되는 게 있었나?라는 물음에 빠지기 전
우선 대답은 한다.
"어.. 그러니까 느낌이 그렇게 들어서"
"그러니까 무슨 느낌인데?"
관심의 깊이를 타인에게서 끈질기게 찾는다.
정작 관심도 없으면서 자기 위로를 위해 바쁘다.
오지랖은 이런 거라고 할 수 있다.
설명을 해내라는, 이해시켜 보라는 그 알량한 위선.
질질 한쪽 발을 끌어대며 길가에 그림을 그리던 나로서는
느꼈다는 그 감정에 왜 설명을 필요로 하는가?라는 의문이든다.
너는 이미 두 발로 걷는데
발하나 같지 않다 하여 그 다름을 이해시켜줘야 하는가?
백지는 그래서 답답하다.
설명을 해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
그냥 아는데 왜 설명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해하지 못하는 존재가
왜 이해하는 존재를 나무라는지 알 수가 없다.
세상은 원래 무슨 일을 하던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 이유를 설명하지도, 찾고 싶은 생각도 없다.
사실은 그게 내가 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이런 내게 왈가왈부하지 않는 것.
스프레이를 뿌린다.
날개들이 쌍으로 떨어져 내린다.
전단지 위로
벌레는 사실 아무 잘못이 없지
반대로 묻는다.
자 이제 너도 그 이유를 나에게 이해시켜 봐
그러니까 그 이유가 뭔데?
넌 언제나 항상 여전히 온전히 설명할 수 있습니까?
노력조차 안하고 있잖아 당신.
한참 시끄럽게 날아다니더니
이젠 누워서 하얗게 변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