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가방과 샌드백
복싱장에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지하철역에서 술에 얼굴이 벌게진 남자가 가방을 패대기친다. 세상 가득 화를 품은얼굴이다. 뭐가 들었는지 가방은 바닥으로 묵직하게 내리쳐진다. 한 번인가 했는데, 계단을 올라가는 내내 울린다. ‘퍽!’ ‘퍽!’
화일까? 울분일까? 아님 술에 취한 장난인가? 그에게 무슨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르겠으나 가방처럼 바닥을 치는 심정일지도 모르겠다. 붉게 스쳐 지나간 얼굴과 가방 색이 닮았다.
복싱을 할 때, 거울을 보고 딱 팔길이만큼 뻗어 얼굴을 친다. 앞을 보고 한참 쳐대는 게 결국 자기 얼굴이다. 그래서 얼굴이 빨개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가방 말고 빨간 샌드백이 저 남자 앞에 있었으면 차라리 좋았겠다 싶다. 한참 샌드백을 치고 와 힘이 빠졌던 터라 저 힘찬 패대기에 놀랍다.
가방 말고 얼굴을 치세요.
새빨간 건 얼굴, 가방, 샌드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