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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아 Jul 13. 2020

[주역에세이] 아내 말 잘 들은 남성작가들의 괘

아내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  풍화가인(風火家人)괘

아내 말 잘 들은 남성작가들과  풍화가인(風火家人)

위대한 작가들의 글쓰기 비결은 뭘까. 많은 이들의 마음을 빼앗는 글을 쓰는 작가들이 나는 늘 궁금했다. 도대체 비결이 뭘까. 그러던 중 일본계 영국인 ‘가즈오 이시구로’의 인터뷰 기사를 보게 되었다. 201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그는 35년간 (겨우) 8편의 작품을 남겼다 한다. 그런 그가 영화로도 제작된 바 있는 ‘남아 있는 나날’(The Remains of the Day)은 한달 만에 썼다고 하니 대체 어찌된 일인가. 도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그 배경엔 바로 이시구로의 ‘마눌님’인 ‘로나 맥도갤’의 존재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겠다(‘마눌님’은 ‘마누라’, ‘부인’과는 또 다른 포스를 주는 용어이므로 특별히 선정하여 사용하기로 한다).


1982년부터 전업작가의 길을 걸었던 30대의 이시구로는 1년에 80여 페이지를 쓰며, 그런대로 만족하며 작가로서의 삶을 살았다고 한다. 1년에 고작 80여 페이지를 쓰면서 ‘만족하며’ ‘전업작가’의 길을 걷고 있었다니 그의 패기와 인간미에 매우 정이 간다. 그러나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의 시선은 그렇지 않았는지 날카롭게 빛나는 칼 같은 시선으로 글 쓰는 이시구로의 등을 따갑게 한 모양이다.

 


첫 소설부터 주목 받은 그가 여기 저기 저기 밖으로 불려 나가거나 집 안에서는 빈둥대자,  보다 못한 부인은 그에게 ‘전력집필’을 요구한다. 그는 점심식사 1시간, 저녁식사 2시간을 제외하고는 아침 9시부터 밤 10시 30분까지 주 6일간 글쓰기에 매달린다. 마눌님의 말씀이 있었던 까닭이다. 그렇게 휘몰아치는 몰입으로 글쓰기에 매달린 결과 ‘남아 있는 나날’을 한달 만에 쓰는 쾌거를 이룬다. 마눌님 말씀을 듣다가 한달 만에 떡이 생긴 것이다!


반면 그의 ‘파묻힌 거인(The Buried Giant)’은 무려 10여 년이 걸렸다. 2004년에 착수한 그 소설은 2015년에야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이건 또 무슨 일인가. 2004년의 어느 날, 그는 ‘파묻힌 거인’의 초안을 마눌님께 보여드린다. 마눌님의 입에서 단 3음절이 나온다.

쓰-레-기(ru-bbi-sh).


13년 후 노벨문학상을 타게 되는 남편의 작품을 마눌님은 가차없이 ‘쓰레기’라 평한다. ‘이런 쓰레기를 출판해서는 안된다. 처음부터 다시 써라’ 그가 ‘파묻힌 거인’을 세상에 내보내기까지 10여 년이나 걸렸던 이유이다. 그의 독자들은 그 세월을 기다렸고 파묻힌 거인 역시 성공을 거뒀다. 이번에는 비록 오래 걸렸지만 매우 맛있고 유익한 떡을 빚은 것이다.


그는 2015년 ‘더 톡스(The Talks)’라는 인터뷰에서 마눌님 말씀을 들으면 떡이 생기는 체험에 대해 이렇게 증언한다. “나를 대단치 않게 보는 사람의 한결같은 지적질이 중요합니다(I think it’s very important for people like me to have a consistent editing voice and someone who doesn’t’t take me too seriously.)”




국내 사례로는 작가 조정래를 들 수 있다. 이미 마눌님을 통해 떡이 생기는 기적을 많이 체험한 그는 ‘황홀한 글 감옥’에서 마눌님 찬가를 늘어 놓는다. 그의 마눌님은 시인 김초혜씨다. 함께 문학을 하는 반려자로서 작가 조정래의 최초의 독자이자 열독자라고 한다. 감시자, 감독자, 교정자, 조정자로서의 마눌님이시기에 그녀가 잘못된 부분이나 어색한 표현을 지적하면 '태백산맥'의 위대한 작가 조정래는 마눌님 말씀에 절대복종 하며 100% 수정을 가한다고 한다.



주로 작가의 아내에 대해 썼지만 일상에서 마눌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잘 듣다가 자다가도 떡이 생기는 신비한 기적의 체험을 한 사례는 무수히 많다. 오죽하면 ‘마누라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말이 생겼을까. 도대체 마눌님의 말은 어떠한 말이길래 자다가도 떡이 생길까.




부부 간의 이러한 관계를 잘 알려주는 괘가 있다. 바로 주역의 31번째 괘 ‘풍화가인(風火家人)’이다. 위에는 바람(☴)이, 아래는 불(☲)이 있는 이미지다. 괘명은 가인(家人), 즉 집사람이다(중국어로 家人(jiārén)은 가족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풍화가인을 설명하는 말이 기막히다.


家人은 利女貞 하니라(가인 이여정)
(여자가 곧으니 이롭다: 貞= 곧을 정)


여자가 곧으니 이롭다. 직언을 해야 이롭다는 것이다. 마눌님은 어떤 눈치도 보지 않고 진실을 직설하는 존재이다. 마눌님은 그 대상이 남편인 경우 때로는 독하게 지적을 한다. 살다 보면 직언을 해주는 사람이 별로 없다. 나 역시 서로 얼굴 붉힐 일 하지 말자 싶어 친한 관계가 아니고서는 가능한 직언을 삼가는 편이다. 하지만 마눌님은 이러한 주저함 따위 초월한 존재이다. 또한 반려자와의 관계는 ‘상극’이라기보다는 ‘대극’의 관계에 놓여 있다. 나의 반쪽(半)인 동시에 반쪽(反)인 것이다. 이렇듯 대극으로서의 반려자의 말은 때로는 악셀이, 때로는 브레이크가 되어 의사결정과 방향제시에 균형감각을 준다. 바로 여기에 자다가도 떡이 생기는 마눌님 말씀의 비밀이 있다.


풍화가인에는 다음과 같은 풀이도 있다.


有孚, 威如, 終吉 (유부 위여 종길)
(孚 = 미쁠(믿음성이 있다) 부, 威 =위엄 위, 如 =말 이을 이)


믿음을 갖고 위엄 있게 말을 이으면 끝내 길하다는 것이다. 가족은 서로에 대한 믿음을 갖고 충정어린 직언을 할 수 있는 존재이다. 서로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 그르칠 일이 없다.


예전엔 집안의 불을 다스리는 것이 여성이었다. 부채질을 하며 불을 지피는 여성의 모습을 상상해 보자. 바람과 불을 다스리는 여성으로서의 풍화가인(風火家人)괘는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을 말하는 괘이기도 하다. 글이 되었건 일이 되었건 배우자의 화력을 북돋게 하는 마눌님의 말씀, 이래도 듣지 않을 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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