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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백 May 06. 2021

내 나이 서른, 척척박사가돼보기로했습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대학원생의 일기_1

오늘도 날이 맑다. 

날이 맑으면 맑아서, 비가 오면 흐려서 공부가 하기 싫다.

분명 공부하는 것이 그나마 제일 좋아서 여기 있건만 왜 하루가 멀다 하고 공부는 하기 싫어지는 것일까? 

이것은 실존하는 감정인가, 한국 교육 과정의 폐해로 인한 습관적 상념인가....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우선 책을 멀리해 본다. 


돈이 없는 서른 살의 대학원생은 잡념이 많다. 

순수하게 공부에 집중하기에는 한국 땅에서 사는 것만으로도 돈이 너무 많이 든다. 가난에 대한 결심은 가난을 극복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끝도 없이 생긴다. 행복한 가정의 행복의 이유는 수만 가지이지만, 가난한 가정의 불행의 이유는 가난 하나라고 했던가 대학원생의 불행도 어쩌면 가난 그 하나로 귀결될지 모른다. 오랜 고민 끝에 선택한 이 길은 언제나 가난 때문에 그 선택에 대한 정당성을 스스로 되뇌게 만든다. 


그러니 날이 맑은 오늘도 이 삶이 불행한 것만은 아니라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리스로 돌아가야 그럴듯한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사회과학도로서 종종 공학도 척척박사님들께서 어서 타임머신을 만들어주셨으면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여전히 내가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나의 결과물들이 세상이 망하지 않는데 조금은 보템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제가 사회가 망하지 않게 조금씩 버티고 있을 테니 공학박사님들은 어서 타임머신을 만들어 주세요.)


돈은 없고 날은 맑은 오늘 같은 날이면 척척석사와 척척박사가 이렇게나 다르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과연 나는 이 길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생각하다가도, 매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길을 택했을 것이라 결론짓는다. 아직은 내 존재가 이 사회에 얼마나 보템이 될지 모르겠지만, 나는 사회의 다양한 모습에 관심을 기울이는 나와 같은 연구자들의 존재의 필요성을 믿는다. 사람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들이 당연하지 않을 수 있음과 모두가 얼마나 다양한 삶을 살아가고 다양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를 발견하고 그것을 문장화 함으로써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 그럼으로써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더 잘 풀어낼 수 있는 언어와 근거를 제공해 주는 것, 그것이 나와 같은 사람의 역할이라고 믿는다. 그러니 다른 이들이 삶을 바라보는 것이 나의 일이다. 누구보다 자세히 삶을 관찰하고 글로 써내려 가는 것, 누구도 관심 갖지 않을 법한 이야기에 관심을 두는 것, 내가 선택한 이 일이 부디 그 삶을 조금이라도 더 평화롭게 만들 수 있기를 소망한다. 

 

이 글은 누군가의 삶을 바라보는 동안 내 삶을 놓치지 않기 위한 내 삶에 대한 기록이다. 인간이 아닌 존재로 여겨지는 대학원생은 과연 어떻게 삶을 연명할 수 있을까 나도 내 앞날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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