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가 먹고 싶다.

이태원에 살아도 한국인

by 이백

분식이 살아남을 수 없는 땅이 있다. 분식의 세계에서는 던전 같은 곳.. 역세권, 맥세권, 공세권, 편세권 다 갖췄지만 분세권만은 갖추지 못한 척박한 땅, 그 이름은 바로 이태원이다.



이태원에 살면서 가장 불편한 부분 중 하나는 단연 떡볶이를 먹기 힘든 환경인데 이태원에 분식집이 없었던 건 초등학교 때부터였다. 웬만한 한국 초등학생이라면 있는 학교 앞에서 떡볶이 사 먹는 추억이 나에겐 없다. 이태원 초등학교 앞에는 그럴듯한 문방구도 그 흔한 떡볶이 집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2동 사는 친구들이라면 그런 추억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쪽엔 문방구도 있었고 시장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태원 1동에서는 떡볶이라는 음식은 뭔가 유니콘 같은 존재였다. 척박한 나의 유년시절 같으니...


그러다 분식의 위대함을 알게 된 건 초등학교 5학년 때 학원을 다니게 되면서부터였다. 학원은 보광초등학교 근처에 있었는데 그 주변을 처음 갔을 때의 그 충격이란, 학교 바로 앞에 무려 문방구가 4개나 있는 게 아닌가! 분식집도 엄청 크게 있었다. 막 피카추도 팔고 떡꼬치도 팔고... 순대 꼬치도... 얼마나 부럽던지. 그러나 그것도 잠시 척박한 교외 환경은 초등학교에서 그치지 않았다. 내가 진학하게 된 한강중도 보성여고도 주변에 분식집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특히 한강중학교 앞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슈퍼, 문방구, 분식집은 커녕 정말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이 팔차선 도로만이 우리를 가로막았다.


사실 이태원에 아예 분식집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여기저기 포장마차나 분식집이 종종 생기곤 했다. 다만 거의 3년을 못 버티고 문을 닫아버려 나는 자주 절망을 겪어야만 했응 뿐.. 또 사라지다니.. 그래서일까? 언제부터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와 친구들은 새로운 분식집이 생기면 탐방을 가는 습관이 생겼다. 어디에 분식집이 생겼다더라 가격이 얼마고 맛은 어떻다더라 하며 아주 빠르게 정보가 공유됐다. 요즘처럼 아예 떡볶이를 파는 곳이 없던 시절에는 버스를 타고 옆동네로 떡볶이를 먹으러 다니기도 했다. 요즘은 배달이라도 되지, 예전에는 그런 것도 없었으니 원정을 나가야만 떡볶이님을 영접할 수 있었다. 우리의 떡볶이에 대한 집착은 그렇게 시작됐다.


떡볶이에 대한 집착은 나이가 들 수록 더 심해지는 듯하다. 나와 친구들 그리고 엄마까지 우리는 버릇처럼 제발 누가 이태원에 제대로 된 분식집 하나만 차려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하고는 한다. 분식집이 살아남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누군가 용기 내서 사명감을 갖고 분식집을 열어주신다면 가게의 번영을 위해 정기적으로 돈을 바칠 준비가 되어있다. 용기 있는 분식집 사장님을 찾습니다.



이태원에 살지만 한국인이라 한식을 먹고 싶다


사실 이런 류의 불편함은 비단 떡볶이만의 문제는 아니다. 나에게 있어서는 떡볶이로 대표되는 한국음식들이 이태원에선 유독 찾아보기 힘들다. 이전에는 이렇게까지 한식을 먹는 게 힘들지 않았는데 점점 이태원 상권이 변화를 겪으면서 한식을 파는 음식점들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됐다.


그래도 어린 시절에는 분식집을 제외하면 백반을 먹을 수 있는 한식집이 여럿 있었다. 거리의 상인분들이 바빠서 항상 배달을 시켜 드셨으니 백반집은 언제나 성황이었다. 그러나 내가 중학교에 들어갔을 때쯤 이태원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대표 상품이었던 의류 제품들의 인기가 시들고 그 자리를 외국음식점들이 대신하면서 백반집도 설 자리를 잃어 갔다. 그나마 한식을 대접해 주던 백반집 마저 사라져 가면서 이태원은 정말 한식의 불모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나의 떡볶이도, 제육볶음도, 삼계탕도 그렇게 내 곁을 떠나갔다.


이태원에 살면 케밥도 배달되고, 수제버거도 배달되고, 초밥, 바비큐, 베트남 쌀국수 전 세계의 음식을 집에서 배달시켜먹을 수 있다. 다행히 돈만 주면 이제는 족발이니 닭볶음탕이니 하는 한식들도 배달시킬 수 있게 되었지만, 멀리서 오는 까닭에 배달비는 너무 비싸기만 하다. 그런 점에서 이태원은 때론 영 사람 사는 동네처럼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다. 사람이 살기 위해 필요한 편의시설들이 턱없이 부족하기만 하다.


굳이 따져보자면 사실 외식을 할 만한 적당한 한식집이 없는 것처럼, 다른 동네에는 다 있는 것들이 유독 이태원에는 없다. 다른 동네에는 거의 없는 것들이 이태원에는 많으니 감수해야 하는 건가. 그러나 '사는 곳'으로 이태원에 있는 나는 그런 것들보다는 마트, 시장, 분식집, 파리바게트 같은 것이 더 필요하다. 언젠가 동네에서 인터뷰를 할 때에도 사람들이 원하던 건 나와 마찬가지였다. 외국음식점들을 매일 갈 수는 없으니 매일 갈 만한 공간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분명 이런 바람이 나만의 것은 아닌 것 같은 데도 이태원에는 사람 사는데 필요한 편의시설들이 맥을 못 추리고 사라져 가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결론을 내보자면 이태원에 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떡볶이쯤은 집에서 만들 줄 알아야 한다. 아니면 떡볶이쯤은 안 먹고살 수 있는 사람이 되거나 말이다. 나는 전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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