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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베르따 Nov 14. 2024

베네치아 산타 루치아 – 빛과 순교의 전설이 깃든 역사

산타 루치아 기차역 – 사라진 성당의 흔적

오늘 12월 13일은 시라쿠사의 순교자, 성녀 산타 루치아의 축일이다. 성녀 루치아는 시칠리아에서도 손꼽히는 아름다운 해변 도시 시라쿠스 출신으로, 기독교 박해의 막바지였던 4세기 초에 신앙을 지키며 순교한 성인이다. 당시 그녀는 끔찍한 고문을 받으면서도 신앙을 버리지 않았고, 순교 중 나타난 기적으로 인해 성녀로 추대되었다. 성녀 루치아는 고문을 당하는 모습으로 묘사되기도 하지만, 더 대표적인 이미지는 두 눈알이 담긴 접시를 들고 있는 모습이다. 전설에 따르면 고문 중에 눈이 포크로 도려내졌으나 기적적으로 새로운 눈이 생겨났다고 한다. 이러한 상징은 루치아의 이름이 유래한 ‘Lux(라틴어로 빛)’와 연관되어 빛의 성녀로서 그 의미가 해석된다. 그녀의 축일인 12월 13일은 동지와 가까워 밤이 짧아지고 낮이 길어지는 시점과 맞물려 ‘겨울의 빛’이라는 의미를 상징한다.

베네치아를 온 사람이라면 대부분 지나갔을 산타 루치아 기차역이 바로 그 유해와 성당이 있던 장소. 오스트리아에 의해 베네치아 천년 역사가 끝난 이후 1860년 지금의 자리에 기차역을 짓기 위해 성당을 허물어 사라진 이름을 기억하도록 역 이름으로 남겼다. 아래는 베네치아 산타 루치아 기차역과 허물어지기 전의 산타 루치아 성당이 있는 그림.


산타 루치아 유해의 이동 – 고향 시라쿠스에서 베네치아까지

성녀 루치아는 6세기에 교황으로부터 기적을 인정받아 성인으로 봉해졌으며, 그녀의 유해는 8세기경 고향 시라쿠스에 안치되었다. 그러나 11세기에는 시칠리아가 외세의 지배를 받으면서 성인의 유해를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졌다. 당시 비잔틴 장군 마니아쿠스가 시라쿠스에서 유해를 가져가 콘스탄티노플 황제에게 바쳤고, 그 후 성녀 루치아의 유해는 황제의 도시 콘스탄티노플에 남겨지게 되었다.


그러나 유해가 영원히 그곳에 머무르지 않았다. 1204년, 제4차 십자군 전쟁 당시 콘스탄티노플이 약탈되었고, 그 과정에서 베네치아의 도제 엔리코 단돌로는 여러 성인의 유해와 성물을 베네치아로 가져가려 했다. 나이 든 단돌로는 시력을 거의 잃은 상태였고, 빛의 성녀 루치아의 유해를 통해 자신의 시력을 되찾을 수 있기를 바랐다. 그는 비잔틴 황제를 상대로 협상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고, 성녀 루치아의 유해를 베네치아로 가져와 자신의 임기를 마친 뒤 팔라쪼 두칼레가 보이는 산 조르지오 수도원에서 은둔 생활을 시작했다.


유해의 안식처 – 산타 루치아 성당에서 산 제레미아 성당까지

베네치아에 온 성녀 루치아의 유해는 이후 산타 루치아 성당에 안치되었다. 그러나 1861년, 산타 루치아 성당은 새로운 기차역을 짓기 위해 철거되었고, 유해는 베네치아의 또 다른 성당인 산 제레미아 성당으로 옮겨졌다. 이때 베네치아 대주교와 훗날 교황이 된 요한 23세는 유해의 얼굴에 실버마스크를 씌우는 의식을 거행하며 유해를 더욱 보호하고 존중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1981년에는 도난 사건이 발생했다. 11월 7일 밤, 무장 강도가 성당에 들어와 성녀 루치아의 유해가 담긴 유리관을 훔쳐갔다. 당시 강도들은 신부의 머리에 총을 겨누며 유해를 탈취해 갔고, 사건은 큰 충격을 남겼다. 다행히 5개월 후, 성녀 루치아의 축일인 12월 13일이 되던 날 유해는 기적적으로 다시 돌아왔고, 베네치아의 카날 그란데를 따라 원래 자리로 운반되었다.


성녀 루치아의 상징과 순례의 여정

성녀 루치아의 유해는 베네치아를 찾는 많은 이들에게 신앙의 상징이자 신비로운 전설로 남아 있다. 시력을 상징하는 성인으로서, 산 제레미아 성당은 오늘날에도 눈이 좋지 않거나 안구 질환이 있는 이들이 방문해 성녀의 축복을 기원하는 순례의 장소가 되었다. 베네치아를 방문해 스트라다 노바 거리를 지나가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이 성당을 지나치지만, 이곳에는 단순한 성당 이상의 깊은 역사와 전설이 담겨 있다.


최근인 2014년, 성녀 루치아의 유해가 잠시 고향인 시라쿠스로 옮겨져 현지 사람들과 대중에게 공개되었고, 수많은 순례객들이 고향으로 돌아온 성인의 유해를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그 순간만큼은 성녀가 고향 시라쿠스의 해변과 사람들 곁에서 안식을 찾은 듯했다. 실버마스크로 가려진 얼굴과 노출된 발을 지닌 그녀의 유해는 여전히 수많은 순례자들에게 경건한 기도를 불러일으키며 빛의 성녀로서 자리하고 있다.


성녀 산타 루치아의 유해와 산타 루치아 기차역이 지닌 역사는 종교와 전설을 넘어 오늘날 베네치아의 중요한 상징으로 남아 있으며, 순례자들과 관광객 모두에게 깊은 인상을 주는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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