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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의서점 Feb 02. 2017

고양이처럼 가벼워지기

서점과 고양이의 나날

 불판 위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고기를 보면서 나는 친구에게 말했다. 너무 좋은 거야. 이제야 내게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서점에 있고 손님을 맞는 게 무척 오랫동안 해온 일처럼 편안하다고. 그런데 말이지... 불안해.

 불안이라는 거창한 주제를 다룰 능력은 없다. 그저 어젯밤 고기를 먹고 눈길을 밟으며 집으로 들어오는 길에, 내 불안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대해 다다른 결론을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작년 여름이 끝날 무렵, 친구와 밤의서점을 열었고 거의 동시에 새끼고양이를 기르게 되었다. 러시안블루 4개월 남아. 처음 볼 때부터 낯도 가리지 않고 품으로 파고드는 강아지 같은 고양이였다. 능력을 넘어서는 일은 쉽게 시도하지 못하는 성격인데 ‘서점에 밤의 고양이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지인의 질문에 우연이라는 선물을 덥석 받아 들고 말았다.(물론 길고양이들을 만나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쳐다볼 정도로 고양이를 짝사랑한 역사가 길긴 했다.) 그리고 이 고양이는 평온한 내 일상을 뒤흔들어놓기 시작했다.   

 본업인 번역 외에 서점과 고양이, 아르바이트(교정) 세 가지가 한꺼번에 일상에 들어온 것이다. 처음 두 달은 그야말로 패닉이었다. 한 가지도 제대로 못하는 기분이 들었다. 오랜 회사 생활을 통해 제대로 일해야 한다는 강박이 몸에 뱄고, 자신에 대한 기준도 엄격한 편이었으므로 내가 내는 결과물이 너무도 한심했다. 

 오히려 밤의서점은 오래 고민한 결과물이고, 든든한 친구가 함께하고 있기에 걱정이 되지 않았다. 문제는 나였다. 잘하고 싶었던 일에서 자신감이 떨어졌고, 그러다 보니 회피하고 싶었다. 회피에는 필연적으로 불안이 따라온다. 상처받고 싶지 않아 몸을 둥그렇게 말고 시간을 보내다 보면 사람은 한없이 작아지고 만다.         

 

 어젯밤 눈길을 뽀드득뽀드득 밟으며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그래도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고. 우선, 서점에서 손님들을 만날 땐 회사에서 나를 짓누르던 ‘잘해야지’의 강박에서 자유롭다. 책을 고르던 중에 자신의 이야기와 고민들을 털어놓는 손님들 앞에서 나는 무방비 상태가 된다. 내 경험을 열어놓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이 즐겁다. 아마도 우연과 개방감이 주는 청량함이 나를 가볍게 만들어주는 모양이다.(책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 부끄러울 때는 있어도 이건 차차 배워나가야 하는 거니까 당연한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보니, 보니가 있다. 나의 소중한 고양이는 한없이 본능에 충실한 태도와 거절을 두려워하지 않는 당당함으로 나를 사로잡았다. 어릴 적 여러 번 집을 옮겨 다닌 상처가 있음에도 눈치를 보거나 사람을 두려워하는 법이 없다. 마음껏 사고를 치고, 마음껏 애정을 표현한다. 내가 혼을 내고 눈도 안 마주치고 일을 하고 있으면, 곧장 달려와서 내 품에 안긴다. 울적해진 주인이 으스러질 정도로 꽉 안고 있어도 잠잠히 안겨줄 줄 안다. 함께 살면서 진심으로 나는 고양이를 닮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불안할 땐 어떻게 하기로 결론을 냈느냐고? 놀 여유가 없어도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놀 시간을 내기로 했다.(이건 친구에게 배운 지혜다.) 맛있는 것을 먹고, 산책을 멈추지 말고, 어딘가에 제안을 넣고, 거절을 당해도 보니처럼 그냥 넘기기로 했다. 내 시간을 좋은 것들로 채워가기로 했다. 그리고 진지함은 책을 읽을 때에만 찾기로 했다. 그래도 불안하면 고양이의 배를 주무르며 불안을 잠재우기로 했다.(마지막 방법은 이미 굉장한 효과를 보고 있다. 고양이와 떨어져 있던 설 연휴에 금단증상에 시달릴 정도로.)


(by 밤의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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