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입학

"엄마, 다녀올게요."

by 김태은

어느새 아이가 다섯 살이 되었고, 유치원에 입학했다. 삼월도 중순을 향해가는 지금, 아이는 벌써 열흘째 유치원에 다니고 있다.


처음 유치원에 갔던 날. 아이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려고 입꼬리를 올렸지만, 내 마음속은 어쩐지 자꾸만 들썩였다.


나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아이였다. 그래서인지, 우리 아이도 어딘가에서 멈춰 서지 않을까, 낯선 문 앞에서 발걸음을 떼지 못하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을 지우지 못했다. 그래서 괜히 더 밝은 목소리로 “유치원 가자!” 하고 나섰다. 혹시라도 아이가 “가기 싫어”라고 말하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유치원은 아파트 단지 안에 있어 금방 도착했다. 어린이집보다 훨씬 큰 건물, 커다란 입구. 낯선 선생님들이 아이를 반겨주었다. 아이는 잠깐도 망설이지 않았다. 쓱 들어가더니,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엄마, 다녀올게요.”


나는 잠깐 말문이 막혔다.


“어… 어어, 잘 다녀와.”


아이의 뒷모습은 아주 자연스러웠다. 한 번도 처음인 적 없는 사람처럼, 자신의 자리를 알고 있는 사람처럼. 나는 그 모습을 조금 멍하게 바라보다가, 그대로 돌아섰다. 우리 아이는, 어쩌면 어린 시절의 나보다 훨씬 단단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우리 아이는 이상하게도 ‘밖에서의 자신’을 잘 안다.


집에서는 금세 짜증을 내고, 떼를 쓰고, 정리하라는 말에는 입을 삐죽 내미는 아이인데, 밖에 나가면 전혀 다른 얼굴을 한다고 했다. 어린이집에 다닐 때부터 그랬다.


선생님들은 늘 말했다.


“정리를 정말 잘해요. 항상 선생님을 도와주려 해요.”
“편식도 안 하고, 밥도 아주 잘 먹고요.”
“친구들도 잘 챙겨줘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조금 어리둥절했다. 그 아이가, 우리 집에 있는 그 아이가 맞나 싶어서.

야채는 입에도 대지 않고, 밥은 늘 남기고, 정리는 언제나 미루는 아이가 밖에서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남편이 회사에서 조금 더 차분해지고, 조금 더 다정해지는 것처럼, 아이도 아이 나름의 방식으로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유치원에서도 비슷했다. 하원 시간마다 선생님은 늘 웃으며 말했다.


“오늘도 잘 지냈어요.”


옆에서 다른 아이들의 하루가 길게 설명되는 동안에도, 우리 아이의 하루는 늘 그 한 문장으로 정리되었다.


나는 그 말이 고마우면서도, 조금은 막막했다. 정말 잘 지내는 걸까. 아니면, 그냥 잘 지낸 것처럼 보이는 걸까. 아이에게 물어보면 선생님과 비슷하게 말했다. 잘 지냈어, 그렇게.


며칠 뒤, 선생님이 처음으로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점심을 남기지 않고 전부 다 먹어요. 그런데 제가 볼 땐, 먹기 싫을 때도 억지로 먹는 것 같아요. 혹시 집에서 음식을 남기지 말라고 가르치시나요?”


나는 아니라고 말했다. 집에서는 오히려 자주 남긴다고. 다만 이전 어린이집에서 음식을 깨끗이 다 먹으면 칭찬을 받았기 때문에 그러는 것 같다고.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먹기 싫으면 남겨도 된다고 알려주고 있다고.




그렇게 며칠이 더 지나고, 어느 아침, 아이가 말했다.


“유치원 안 가고 싶어.”


준비는 다 끝난 상태였다. 현관문만 나서면 되는 순간이었다.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오늘은 쉬고 싶다고, 안 가겠다고,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제야 알 것 같았다. 괜찮아 보였던 시간들 안에도, 분명히 아이 나름의 버티는 순간이 있었을 거라는 걸.

마음이 흔들렸다. 하루쯤 쉬게 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결국, 나는 아이의 손을 잡았다.


“그래도 가야 해.”


아이의 울음은 복도까지 이어졌다. 그런데 유치원이 가까워질수록, 아이의 울음은 조금씩 멎었다. 눈은 여전히 붉고 부어 있었지만, 표정만큼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돌아왔다.


유치원 앞에는 또 다른 아이가 울고 있었다. 엄마에게 매달려, 가지 않겠다고 소리치고 있었다. 우리 아이는 그 장면을 한 번 흘끗 보고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내 손을 놓았다. 그리고 혼자 계단을 올라갔다.


“엄마, 다녀올게요.”


나는 그 인사를, 그날은 조금 다르게 들었다.


하원할 때, 선생님이 조용히 물었다.


“오늘 아침에 운 것 맞죠?”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이 아이에게 울었냐고, 유치원에 오기 싫었냐고 물어보았지만, 아이는 아니라고 했다고 했다. 다친 데가 아파서 울었다고.


나는 그 말을 듣고 잠깐 멈췄다.

나의 아이는 자기가 울었다는 사실보다, 유치원에 오기 싫어서 울었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은 아이였다.




그날 이후로는, 아이가 그렇게 울며 떼를 쓰는 일은 아직 없다.

요즘은 손을 잡고 걸어가며 말한다.


“엄마, 오늘도 잘 다녀올게요.”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아이의 하루가 얼마나 많은 것을 담고 있을지, 조금은 상상해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잘 지낸다는 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뜻이 아니라,
그 안의 여러 감정을 자기 나름대로 지나왔다는 뜻일지도 모른다고.


아이는 오늘도 그렇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하루를 건너가고 있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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