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스프 냄비
첫 아이가 다섯 살이 되었다.
동생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예전부터 막연히 해왔다. 그런데 막연한 마음이라는 건 참 편리해서, 정말 바쁠 때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아이가 아주 어릴 때, 어린이집에 다니지 않던 시절에는 하나를 돌보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빠듯했고, 복직을 하고 나서는 더 고되졌다. 육아시간을 쓴다고 해도 업무량이 줄어드는 건 아니었고, 아홉 시부터 네 시까지 원래 여섯 시까지 끝내야 할 일들을 서둘러 처리한 뒤, 지친 몸으로 아이를 데리러 가 밤 열 시까지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나날이 반복되었다. 그냥 일만 할 때보다, 그냥 육아만 할 때보다 이상하게 더 힘든 시간들. 그래서 ‘둘째’라는 생각은 마음속에서 잠시 접혀 있었다. 접어두면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덜 걸리적거리는 방식으로.
그러는 사이 아이는 세 살이 되었고, 네 살이 되었고, 다섯 살이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접어둔 종이가 자꾸 손끝에 걸렸다. 이 이상 미루면 터울이 너무 커지지 않을까. 주변에서는 터울이 적을수록 좋다는 말을 했고, “다섯 살이면 지금도 꽤 크네” 같은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조금씩 조급해졌다. 그렇게 결국 다시 임신을 했다. 예정일은 10월. 이대로라면 다섯 살 터울이다.
그런데— 아, 임신 초기가 이렇게 힘들었던가.
그걸 나는 완전히 잊고 있었다.
첫 아이 때도 분명 힘들었다. 나는 그때 주위의 육아 선배들에게 물었다. 다들 정말 이렇게까지 힘들었냐고. 다들 웃으며 말했다. 아이 키우는 게 더 힘들다고. 그 말이 그땐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그 말을 하는 쪽이 되었다. 동료가 임신하고 힘들어하며 “언니도 이랬어요?” 하고 물을 때, 나 역시 “잘 기억이 안 나.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금방 지나간 것 같기도 하고…” 같은 흐릿한 말만 했었다.
극심한 입덧을 겪으며 문득 그 때의 나의 답이 떠오른다. 아, 나도 그때 이랬는데. 왜 이렇게 말끔히 잊어버렸을까. 물론 그걸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고 해서 임신을 시도하지 않았을 것 같지는 않지만.
이번 주 들어 입덧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내 입덧은 어떤 의미에서는 단순하다.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다. 입맛이 없다. 그런데 공복이면 멀미처럼 속이 계속 울렁거린다. 뭐라도 먹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음식 앞에만 서면 ‘먹기 싫다’는 감정이 먼저 온다. 정말로, 전혀, 먹고 싶지가 않다. 나 스스로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며칠 동안 작은 실험을 했다. 무엇은 먹을 수 있고, 무엇은 내 속을 더 어지럽히는지. 밥이나 면처럼 씹어 삼켜야 하는 것들은 보기만 해도 거부감이 들었다. 요거트는 괜찮았다. 스프도 괜찮았다. 씹지 않고 삼킬 수 있는 것들. 반대로 두유 같은 완전한 액체는 먹을 때는 부드럽게 내려가지만, 다 먹고 나면 오히려 속이 더부룩해졌다. 몸이 싫어하는 방식이 따로 있는 것 같았다.
어제 남편이 옥수수스프와 크림스프를 각각 다른 냄비에 한가득 끓여주었다. 오늘 나는 크림스프 한 냄비를 거의 비웠고, 그제야 조금 기운이 났다. 남편이 말하길, 첫 아이 때도 스프를 끓였던 것 같다고 했다. 그때도 아무것도 못 먹어서 스프를 만들어줬던 것 같다고. 그랬었나. 그랬던 것도 같다. 우리 둘 다 첫 아이의 격렬한 시간을 지나오며, 임신 시절의 장면들을 대충 흘려보낸 모양이다.
어제는 하루 종일 거의 누워 있었다. 메스꺼움은 누워 있으면 조금 덜했고, 덜한 만큼 시간이 더 느리게 흘렀다. 아이가 하원하고 나서야 겨우 몸을 일으켰다. 오늘은 그보다는 조금 나아, 노트북을 열 수 있었다. 그동안 이런저런 일들로 글을 잠시 멈추었는데, 오늘 같은 컨디션이 이어진다면 다시 써볼 수 있을 것 같다.
오늘 저녁은 미역국에 밥을 말아 먹는 걸 시도해볼 생각이다.
아주 사소한 계획이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그 정도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