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그 방을 기억한다. 좁은 방에서 4명이 다닥다닥 붙어 이불을 나눠 덮던 곳. 난 그 밤을 기억한다. 시공간의 경계가 불분명한 밤. 그리고 혼란 속에서 현실을 도피했던 밤을.
조명은 분명 꺼져 있었다. 몇 시간 전, 마지막으로 스위치를 딸칵 누르고 잠을 청했던 건 본인이었기 때문이다. 웅웅대는 냉장고 소리가 묻힐 즈음, 뭘까 싶었다. 무언가가 내 오른쪽 눈을 강타했다. 이미 많이 맞아봤기에, 단단하고 빠른 주먹이란 걸 단번에 알아챘다. 순간적으로 뜨인 두 눈 중 왼쪽 눈으로 남자를 보았다. 돌주먹을 쥐고 있었던 건, 당신이구나. 정신이 번쩍 들더니, 새로운 공포감이 들었다.
금세 오른쪽 눈에 가해진 충격은 쉬이 진정되질 않더니,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놀란 마음에 바닥을 굴렀고, 함께 자고 있던 세 명의 아이들이 하나둘씩 소스라쳤다. 나는 손바닥으로 내 눈덩이를 만지는 순간에도, 왼손으로 왼쪽 눈을 감쌌다. 어떻게든 또 다른 주먹을 막아야만 했다. 그런데, 심상치 않다. 굴러다니던 테니스공을 잡은 것처럼 큼지막했다.
서울이 떠나가라 울음을 터뜨리니, 담당 사회복지사가 허겁지겁 방에서 달려 나왔다. 고된 일을 마치고 이제야 한 시름 놓으려 하셨을 텐데, 나는 인간 알람 시계가 된 것 같아 미안했다. 선생님, 그러니까 쌤으로 줄여 부르던 사회복지사는, 난잡한 상황을 먼저 파악하기 시작했다. 왜 때렸으며, 하필 눈을 때렸는지 그를 취조하기 시작했다.
당시 시각은 자정을 훌쩍 넘겼지만,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신체 부위 중 눈은 가장 컸는데, 그게 더 커질까 봐 두려웠다. 사회복지사는 훌쩍거리는 나를 안아주고는, 한숨을 작게 쉬었다. 곧이어 우선 치료를 받는 것이 맞겠다고 판단한 것인지, 야간까지 운영하는 동네 병원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틀려먹었다. 이 시간에 치료를 받지 않는단다. 심지어 연락조차 닿지 않는 병원도 있었다. 담당 사회복지사는 우여곡절 끝에, 야간까지 치료를 진행하는 병원을 겨우 찾아내셨다. 실은 담당 사회복지사가 간곡하게 치료를 부탁한 걸로 알고 있다. 다른 신체 부위도 아니고, 눈을 다쳤으니 제발 부탁한다며 애원하셨다. 나는 간절하게 요청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더 괴로웠다.
나는 담당 사회복지사가 두 손으로 전화기를 마주 잡고, 허리를 굽히는 장면 속에서 목격했다. 그 밤이 남긴 또 한 명의 피해자를. 혼자서 12명가량 되는 아이들을 관리한 하루라고 여겼을 텐데, 그녀는 얼마나 놀랐을까. 고통은 이렇게 전염되고, 꿈속으로 도피하지 못하게 만든다. 우여곡절 끝에, 가까스로 인근 병원에 도착했다. 나는 시설에서 도망쳐 나왔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었지만,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했다. 접수처에서 내 눈을 보고 놀라던 직원의 눈초리가 얼마나 따끔하던지 선명하다.
그들은 내 눈이 얼마나 심각한지, 표정으로 투명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동시에 불쌍하게 보는 시선을 다 찌그러뜨리고 싶을 정도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일단 치료를 받아야 하니 애써 무너지지 않은 척할 수밖에. 지금까지 사회복지시설에 맡겨져 고아 신세로 전락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들었다. 언젠가부터 예민하게 의식하더니, 미치지 않도록 정신줄을 잡으려 했다. 그러나 오늘은 합리화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다. 천장을 바라보는 척하며, 채워진 눈물을 흘리지 않는 것이 유일한 다짐이었다. 동시에 허겁지겁 시설의 안과 밖을 뛰어들어간 기억까지 교차했다.
내 순서가 되자 잰걸음으로 진료실 안으로 걸어갔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굶은 소처럼, 가냘픈 몸을 밀어 넣었다. 의사는 피곤해 보였고, 놀랄 줄 알았다. 하지만 새빨간 안구를 보고도 덤덤했다. 슬펐다. 나처럼 놀라지 않고, 같이 울어주지 않아서. 눈물이 나왔다. 접수처 옆 파란 의자에서 앉아 그렇게 눈물을 참았는데 소용이 없었다. 의사는 말했다. 눈에 스크래치는 나지 않았지만,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고. 담당 사회복지사는 울음을 참으려 애를 쓰지만, 헐떡거리며 우는 나의 손을 잡았다. 이제는 가보라는 말에 진료실을 나왔다. 다시 마주한 접수처 직원은 손을 흔들며, 잘 자라는 말을 했다.
시설로 복귀하기 위해 택시를 탔다. 조금 전, 의사의 하얀 가운과 청진기가 또렷이 기억났다. 아, 그는 내 신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 세상에서 신체를 고쳐주는 사람은, 의사와 신이 유일하다고 들었는데 어쩌면 같은 사람이겠구나 여겼다. 당시 나는 초등학교 4학년이었고, 어린시절부터 들렀던 교회에서 기도한 덕분에 복을 받나 생각했다.
시설에 도착했다. 묻지 마 폭행을 가한 형이 보인다. 그의 눈은 멀쩡하지만, 내 눈은 터진 핏줄로 붉어졌다. 그 형을 포함한 아이들은, 처음 보는 색의 안구를 보고 놀랐는지 말을 잊지 못했다. 그러나 끝까지 사과의 한 마디도 듣지 못했다. 억울했다. 미치도록 복수하고 싶었다. 점점 화끈거렸고, 안대를 한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지 짜증날만큼 불편했다. 이번엔 안구 속에 테니스공을 넣은 것처럼 힘겨웠다.
이제 반대쪽 눈을 연달아 때릴까 겁에 질렸다.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담당 사회복지사는 얌전히 자라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유독 문을 닫는 소리가 굉음처럼 컸다. 거울을 볼 용기는 나질 않고, 다시 혼자서 이 밤을 보내야 했다. 보호자는 내가 유일했다. 다시 내 이부자리에 누웠다. 아파서 구르던 그 자리는 유독 차갑게 느껴졌다. 그러곤 입에 손수건을 물었고, 새벽 내내 눈물을 흘렸다. 잠을 안 오는 이유도 있었다. 어떻게 하면 저 곤히 자는 못된 놈에게 복수할지에 대하여,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나도 고의로 두들겨 팰까? 실수로 넘어져서 다치게 할까?
악행들을 상상만 하며 이를 갈았다. 그런데 나는 악행을 저지르고, 저 인간처럼 편히 잠을 잘 사람은 못 된다고 단념했다. 그리고 병원이 아닌, 또 다른 천장을 멍하니 쳐다봤다.
다음 날 내가 아닌 것 같았다. 폐가 아릴 정도로 불어낸 풍선을, 눈에 달고 있는 소년이 보였다. 안구는 검붉게 충혈이 되어있었다. 아침밥을 먹기 위해 일어난 아이들은 나를 걱정했다. 고마운데 다른 아이들의 상처를 재자극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화장실 안에 있는 거울 앞에 섰다. 그리고 물었다. 어제 아침처럼, 햇살과 눈싸움을 할 수 있겠지?
그 사건 이후로, 가끔 천둥이 치는 날이면 이불을 둘러싸서 웅크리는 버릇이 들었다. 최선의 방어자세를 취하며 잠에 들기 시작한 것이다. 만약 아무런 일 없이 흘러가면, 오늘은 아니구나. 형들이 잠에 푹 빠져서 다행이구나 생각하며 안도했다. 또한 내가 이유 없이 눈을 폭행당한 그날은, 비가 내리고 천둥이 치는 밤이었으니 언제나 자동 반사하고 있었던 셈이다.
편하기도 했다. 비슷한 연령대 아이들끼리 한 방에 모여 잤으니, 큰 형들의 괴롭힘에 대비해서 전부 방어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나만 못 자는 건 아니라는 사실에 위로가 되었던 거다. 다들 대항하기보다는 당해줘야겠다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왜곡된 공동체 의식은 특정 상황이 잘못된 것인지 분간하지 못하게 만들기도 했던 모양이다.
반대로 언제든 도망갈 수 있도록, 아픈 척을 한 날들도 길었다. 날 불쌍하게 보아야만, 끝날 걸 알아버린 나이였다. 고작 열한 살, 여우주연상을 받기엔 충분한 나이었을지도 모른다. 영화와는 다른 점이 있다면, 연기는 맞는 시늉이라도 할 수 있지, 현실은 맞고 난 이후 찌그러진 얼굴을 들이밀어야 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아픈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