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푸른빛의 아침이 밝아왔다. 당시 시설에선 원생을 포함하여 여러 동물까지 관리하고 있었다. 황소부터 닭, 오리와 토끼들이 뛰어노는 목장을 따로 두었을 정도니까. 그중 목청이 가장 좋았던 동물은 단연 닭이었다. 사료를 잘 먹은 건지, 탈출하고 싶다며 울부짖는 건지 모를 만큼.
그날도 어김없이 담당 사회복지사는 기상 시간에 맞춰 아이들을 깨우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닭보다 아침을 빠르게 직감하는 아이들은 아침 식사 시간이 임박했음을 느끼고 기상했다. 너 나 할 것 없이 이불을 정리하고 이미 옷을 갈아입고 있었던 경우가 부지기수였으니까. 식사 시간을 알리는 방송은,클래식 음악이 재생되고 난 뒤에 겹쳐 울렸다. 아이들은 일제히 방 밖으로 우르르 달려 나갔다. 줄을 늦게 설 수록 자신만 손해였기에 무한 경쟁의 주인공들이다. 역시나 고기 쟁탈전이 벌어지는 건 어제나 오늘이나 다름없었다. 같은 식탁에서 함께 먹자는 따스한 한 마디도 없다. 목장 안에서 여물만 기다리는 굶주린 소들과, 시설의 사람들이 다를 것은 하나 알지 못했다.
나는 전날 새벽에 있었던 소동의 여파가 남아있어, 누군가 뛰거나 넘어져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어차피 밥을 많이 안 먹었으니까. 발걸음을 옮겨 텅 빈 생활관 속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샤워실 거울은 크니까, 더 잘 보이겠지 여겼다. 하얀 안대를 눈썹 위로 젖히고, 충혈된 눈덩이를 한참 들여다봤다. 어제보다 붓기가 심했다. 또 눈물이 차올랐다. 어제 새벽에 느꼈던 분노감은 동공처럼 커졌다. 영화 <나 홀로 집에> 속 등장하는 케빈은 호화스러운 호텔방에서 해방의 목소리라도 냈지. 이게 무슨 꼴이람.
재수 없을 미래가 눈에 비쳤다. 하지만 울 수 없었다. 울면 눈이 더 부을 거라는 의사의 말이, 작은 귀 주변을 맴돌았다. 배꼽시계는 정직하게 울리는 바람에,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기 시작했다. 약 140개의 눈이 날 보고 불쌍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형들에게 밑 보인 행동을 해서 두드려 맞지 않았을까? 또 혼자 덜렁대다 다친 바보는 아닐까 등의 무수한 질문이 끊임없이 쏟아졌다.
목젖에 들이미는 칼처럼, 질문에 답하기엔 두려웠다. 다행스럽게도 그들은 질문할 여유가 없다. 고기를 한 점이라도 입에 욱여넣어야 하는 원생들이다. 긍휼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어른은 새치기를 시도하려는 연장자들을 규제하느라 분주하지만, 구두로 주의를 줄 뿐이다. 그 장면을 몇 년째 바라보고 있으니, 이제는 차라리 먹지 않는 게 편하지 않을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하나도 기발하지 않았다. 학교 급식을 먹기까지 기다릴 수는 없었다. 결론을 지었다. 시설에서 대량으로 조리되는 식사는 학교와 일반 가정집 메뉴보다 잘 나오는 구성이었기 때문에 놓치지 않기로 했다.
나선형 계단을 빙글 돌아 내려갔다. 모래주머니를 발목에 찬 심정으로, 1층 식당의 유리문을 밀었다. 시끌시끌했다. 아침부터 할 말이 그렇게나 많은지 부담스러웠다. 유감스럽게도, 나에게 폭행을 가한 형은 평상시처럼 밥을 우걱우걱 씹고 있었다. 재수 없는 자식. 저 멀리 얼마 남지 않은 반찬통을 보고 화가 났다. 고기를 몇 점 집으려다가 바닥에 떨어트린 그를 보니, 마치 탐욕으로 가득 찬 돼지처럼 보였다. 내가 마른 건 그 돼지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더 미웠다. 어떻게 맛있는 반찬만 다 먹어치웠지? 돼지 같은 자식. 꼬리만 달아주면 컹컹 소리 내면 웃길 텐데. 누가 봐도 못된 사람이라고 혀를 차 줬으면 바랐다.
당시 하교를 하면, 시설로 돌아와 텔레비전을 켜는 것이 소소한 행복 중 하나였다. 그중 만화 프로그램 <겁쟁이 강아지 커리지>를 틀어주는 채널로 딱 맞추면 쾌감이 느껴졌다. 음량을 최대한 올리고 양반다리를 취한다. 서서히 음침하고 서늘한 분위기가 시설 내부를 집어삼킨다. 그 만화는 욕심이 많고 게으른 역할을 꼭 돼지에게 주었다. 그래서 내겐 돼지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느리기만 한 줄 알았더니, 욕심도 많고 게으른 동물이야! 주름도 못났고, 괜히 뚱뚱한 게 아니야!” 순하고 낙천적인 뮤리엘도 매번 의자에 앉아 시간을 죽이고 있는 걸 보니 결코 착한 건 아니라고 여겼다. 그 옆을 가족애랍시고, 주인들을 지키는 커리지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모습이 나와 닮아 안쓰러웠을 뿐이다.
은색 식판을 들고 메뉴를 둘러봤다. 냄새가 고소한 게, 앞서 잘 구워진 고기가 차가운 철제 반찬통 바닥에 쏟아졌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런데 잘 구워진 오리고기는 어디 가고, 꾸덕한 기름만이 배식 그릇의 2부 정도를 채우고 있었다. 식어버려 반찬통 손잡이는 차가웠고, 기름은 단단하게 굳어가고 있는 찰나였다. 평소 같았으면 일찍 줄을 서, 식판을 가득 채우고도 남았을 반찬인데 틀려 먹었다. 허탈한데 문득 다른 아이들의 입속에서, 분쇄된 - 우는 표정을 짓는 - 오리 반찬을 목격했다.
다른 사람에게 먹히려고 그동안 흙바닥을 걸어 다닌 것이냐라며 야단쳤고, 도리어 안쓰럽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소화되기 전에 꼭 복통이라도 일으켜달라고 소원을 빌었다. 그 순간만큼은 애꿎은 다른 아이들에게 심술을 부리는 것이 나의 유일한 반찬이었다.
그 사건 이후로, 스무 살이 될 때까지 오리고기를 입에 가져가지 못했다. 콩팥과 비슷한 모양과 선홍빛 색깔, 어린 시절에 맡은 향기만으로도 트라우마를 겪었다. 아팠던 기억들을 소화하지 못한 이유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지금은 오리고기를 잘 먹지만, 성인이 되었을 때는 게걸스럽게 입안에 오리고기를 채워 넣는 사람들을 보면 강한 거부감이 들었다. 그 사람들은 죄가 없다. 나와는 다르게 맛있게 먹고 있었을 뿐이다. 단지 재수 없게 내 눈에 띈 것이다.
똑같다. 전부. 날개 한 번 펴 본 지 얼마나 됐다고. 결국 상위 포식자들에게 먹히는 처지라는 게. 결국 짠 오리 기름에 밥을 비벼 놓고, 마른 멸치와 소스에 눌어붙은 양파를 반찬 삼아 먹었다. 씹고 또 씹었다. 내용물이 목구멍을 넘어가면, 화가 치밀어 빠득빠득 이를 갈았다.
2
<정희재 - 아무튼, 잠>에는 이러한 문단이 있다.
잠을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 정직해서다. 잠처럼 투자한 만큼 또박또박 대가를 돌려주는 체계도 드물다. 주식과 선물 가상화폐는 어지간한 영혼은 탈탈 털려버리고 말 가변성으로 롤러코스터를 태우지만, 잠은 아니다.
잠은 투자한 시간만큼 심장 건강과 체력, 그리고 집중력을 돌려준다. 모질고 거친 세상에서 쪼그라들었던 마음도 복원된다. 어떻게든 잠을 도피처로 두고 싶었던 내겐, 편안한 수면은 사치였다. 묻지 마 식으로 무력을 행사하는 권력자들과 함께 사는 이상, 잠을 풍족하게 자지도 못했고 자지 말라고 붙들어놓는 손아귀에 매번 잡히는 나였다. 악몽에서 깨어나도, 여전히 악몽에 삼켜지는 현실 속에서 잠을 사랑하지 못했다. 무료임에도 불구하고 충분하게 누리지 못했고, 복원해야 할 거친 세상에서 쪼그라들었던 마음도 치유하지 못했다.
낑낑 소리가 날 정도로 이를 씹었던 그날 저녁, 잠만은 베란다에서 자게 해 달라는 간청이 묵살되었다. 함께 생활하던 담당 사회복지사는 소란이 커질 때만 구두로 경고를 줄 뿐, 다시 방관에 일조했다. 내가 왜 맞았는지, 왜 식사를 많이 못 하는지, 식사를 늦게 먹으러 내려오는지에 대한 관심을 쓸 겨를이 없었다. 단지 많은 아이들을 케어하는 것에 있어서, 피곤하다는 단일 의견만으로는 납득이 되지 않는 상황. 또 다른 관점에서 보면 내 눈이 시퍼렇게 퉁퉁 부었을 때처럼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그제야 품 안에 반쯤 안길 수 있었다.
그 누구도 내 편은 없었으며, 하필 시설에 맡겨진 것이 역겨웠다. 자연스럽게 부모를 증오했지만, 분풀이 대상은 오로지 본인이었다. 자해를 단 한 번도 하지 않았지만, 대신 여린 마음을 난도질했다. 함께 지내는 아이들도 나처럼, 각자 하루하루 생존을 위해 전투적으로 움직였던 것이 위안이 될 때도 있었다. 그러다 학교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에 집중했으며, 시설에 돌아오길 희망하는 아동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오죽하면 내가 학교 담임 선생님에게 시설에 가기 싫다며, 하룻밤만 당신의 집에서 재워달라고 애원했을까. 맨바닥이라도 좋다고, 허리춤을 부여잡고 울던 기억이 더러 있다.
한편 머리가 커지면서, 담당 사회복지사에게 따지고 싶었던 적이 많았다. 내가 여전히 아프다고, 잠을 제대로 못 자니 각종 프로그램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거라고. 자칫 엄마랑 살고 싶다는 최후의 카드를 꺼낼 방법도 있었다. (그때 당시 내가 나가고 싶으면, 퇴소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면 나를 맡겨두고 떠난 엄마랑 얼굴은 볼 수 있을 거라고 여겼던 거다.
상당히 많은 양의 빨래와 청소를 혼자 도맡는 것도 아니니까, 제발 형들 좀 혼내달라고. 어른이 아이보다 강한 사람 아니냐며 대들고 싶었다. 심지어 아이들은 한 달마다, 자신에게 주어진 청소 당번을 부여받았는데, 빨래 당번으로 2명이 배치되었다. 그 말은 한 명이 빨랫더미를 세탁기에 넣어 버튼을 눌렀고, 또 다른 한 명이 젖은 빨래를 펼쳐 널어놓았다는 사실이다.
건조가 완료될 때면 모든 아이들이 모여 자신의 옷을 잃어버릴세라, 필사적으로 자신의 몫을 개었다. 그중엔 자신의 부모님에게 상처를 받은 사람이 가장 부지런했다. 부모로부터 다시 보는 날까지 건강하자는 그 말을 듣고, 그때 입었던 옷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던 걸까 싶다. 다시 돌아와 사회복지사의 앞뒤가 맞지 않는 듯한, 기계적인 답변은 매번 여력을 탈탈 털어버렸다. 동시에 불만이 곧 터질 것 같은 상황에서도 매번 반복되는 내적 갈등도 있었다. 바로 연소자를 괴롭히는 밀고자를 고발할 것인지, 말지에 대한 문제였다.
하지만 매번 내 마음속 배심원들은 항상 만장일치를 알렸다. 다음 피해자는 내가 될 것이라는 예상하에, 겁에 질려버려 독자적으로 무산시킨 것이다. 만약 드러나지 않은 폭행 이력들을 밀고하게 되면, 결국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보복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 마음속 응어리진 공포심과 불안은 어디에도 풀 수 없었다. 그나마 머리를 식힐 수 있는 거라곤, 주말마다 찾아오는 자원봉사자들의 손을 잡고 외출을 떠나는 것이었다. 물론 자원봉사자들에게도 겪었던 부조리들을 모두 공개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침묵을 지키는 날들도 길었다.
도합 17년을 거주했던 기간 중 유년 시절, 밝은 인상과는 다르게 말이 유독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다자이 오사무 - 인간실격>에서 읽은 한 문장이 겹친다.
저는 온 세상이 일순간에 지옥의 업화에 휩싸여 불타오르는 것을 눈앞에 보는 듯하여 왁 하고 소리치면서 발광할 것 같은 기색을 필사적으로 억눌렀습니다.
매사 주어지는 선택을 강요받고 감정을 은닉해야 했던 나는 어떻게 미치광이가 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시설 담당 선생님과 자원봉사자 앞에서 가면을 쓰고 연기한 덕분일까. 아니면 합리화를 무한으로 자행한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어른들이 무심코 내뱉는 말 중 하나인 “넌 착해서 그래.”라는 무책임한 발언을 순순히 받아들인 탓도 있다. 그게 나를 잠식하는 말일 줄은 그땐 몰랐다.
나는 어떤 아이였을까. 겉으론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시달렸고, 속으로 거친 폭풍에 내쳐졌던 아이. 그렇다고 반항심을 가출이라는 형태로 표출해 본 적 없는 모범생 지망인. 가출하거나 방황을 하면 할수록 퇴소가 늦어진다는 으름장에, 매번 울음을 뚝 그쳤던 아이. 학교생활이든, 시설 생활이든 성실한 태도로 일관하면 엄마를 꼭 만날 수 있겠다는 희망을 품었던 아이. 그러다 그리움이 악으로 변질되어, 더 이상 부모를 그리워하지 않게 된 아이가 되었다. 가족의 빈자리가 크지만, 꼭 당신에게 사랑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믿음이 생겨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나는 운이 좋은 아이였다. 시설 안에서 사랑을 듬뿍 받는다는 건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는데, 나를 좋아해 주는 어른들이 꼭 있었다. 바른 행실과 큰 눈망울과 상관없이, 애정의 관심을 쏟아주던 사람들 말이다. 그중 친엄마보다 나를 오랜 시간 보듬어주신 김쌤. 그리고 일부 자원봉사자들은 마치 자신이 잃어버렸다가 찾은 가족처럼 나를 보살펴주었다.
과연 어떤 사람이 나의 유년 시절을 까맣게 채웠던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 건네주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