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1982)은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작품이다. 이 책이 여러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시대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던 개인의 삶과 인간 존재의 이유를 가벼움과 무거움, 우연과 필연, 영혼과 육체 사이를 오가며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1968년 체코의 자유·민주화 운동, 즉 ‘프라하의 봄’이다. 자유·민주화에 대한 끓어오르는 열망과 공산체제로부터의 탈바꿈을 꿈꾸던 체코는 잠시나마 ‘봄’을 맞이했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 소련침공에 의해 무력화된다. 시민에 대한 감시와 통제, 개인의 재능을 무시한 검열. <시민의 정치적 신상명세서>가 오롯이 사람을 평가하는 유일한 기준이 되어버린 국가. 이를 배경으로 4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토마스는 가볍다. 삶이 주는 무거움에 그의 삶의 방식을 ‘가벼움’으로 택했다. 아들이 있으나 이혼 후 아버지의 권리 따위는 주장하지 않아 가족들로부터 쉽게 빠져나올 수 있었다. 바람둥이다. 진정한 사랑보다는 에로틱한 우정을 추구해 여자가 많다. 수많은 하루살이 애인과 ‘사비나’라는 고정적 애인이 있다. 그런 그가 테레사라는 여자를 만나 진정한 사랑을 나누면서 그의 삶은 무거워진다. 더 생생해지고 진실되어지는 것이다.
테레사는 무겁다. 그녀의 어머니는 잘못된 결혼과 임신으로 삶을 내팽개친 듯하다. 젊음과 아름다움을 스스로 포기한 지 오래다. 영혼 없는 육체마냥 함부로 대한다. 테레사는 온갖 집안일에 동생돌보기, 웨이트리스까지 하며 출생의 죄책감까지 감당해야 했다. 그런 환경에서 침체되어 있던 그녀의 영혼이 토마스를 보며 튀어 오른다. 토마스와 테레사의 만남에는 6개의 '가벼운' 우연이 존재한다.
사비나와 프란츠는 극과 극이다. 같은 말인데도 그들이 이해하는 뜻은 차이가 있다. 음악은 프란츠에게 해방을, 사비나에겐 공산주의 체제에서 집단성을 상징하는 소음일 뿐이다. 행렬은 프란츠에겐 생동하는 역사지만 사비나에겐 혐오스러운 의식일 뿐이다. 사비나의 조국, 체코가 프란츠에겐 혁명에 대한 동경심을 불러일으키는 나라지만 사비나에겐 공동묘지일 뿐이다. 이러한 차이는 물론 그들이 갖고 있는 서로 다른 역사에 기인한다.
사비나가 택한 삶의 방식은 ‘배신’이다. 아버지와 집안을 배신하기 위해 싸구려 배우와 결혼했다. 개인의 재능과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국가를 배신했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해 준 프란츠를 배신했다. 배신의 배신을 거듭하며 그녀의 존재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가벼워졌다. 오로지 혼자 있을 때만 진리 속에 사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 그녀는 우울하고 공허하다.
프란츠는 사비나를 통해 불행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자유와 새로운 삶을 만끽하며 그의 삶은 좀 더 가벼워졌다. 사비나의 흔적은 곳곳에 남아 있다.
사람마다 삶의 방식은 다르다. 그 방식은 어느 순간 몸에 배어 쉽게 변하기 어렵다. 토마스처럼, 사비나처럼. 그러나 ‘관계 속’에서 비로소 변화가 가능하다. 토마스는 테레사를 통해 무거워졌다. 테레사는 토마스를 통해 영혼을 불러일으킨다. 프란츠는 사비나를 통해 가벼워졌다. 사비나는 프란츠의 ‘공동묘지’에 대한 의미를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가벼움과 무거움, 영혼과 육체, 개인과 국가, 필연과 우연 들을 서로의 관계를 통해 보여주는 작품.
시대와 환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나 관계를 통해 비로소 변화하고 의지하며 성장하는,
어쩌면 인간은 '참을 수 없을 만큼' 가벼운 존재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