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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Jul 19. 2023

2023.6.2 / 외국로망의 시작은 이모로부터 왔다

인천공항-미국, 크루즈 여행 0일차

이모께 반가운 제안을 받은 것은 늦봄이었다. 앞서 셋째이모(이하 미국이모)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나의 롤모델이자 존경하는 사람. 내가 겪었던 고뇌를 모두 겪은 어른. 누구보다도 가까운 이모라고 할 수 있겠다. 미국이모는 아들하나에 딸만 넷인 집에서 셋째로 태어나 본인의 살길을 본인이 찾아야겠다고 일찌감치 생각하셨다. 결국 홀로 영국으로 넘어가 일하면서 학비를 벌어 부모님의 도움 없이 유학을 하셨고 그 이후로 결혼 후 법정통역사 시험에 도전하여 가정주부인 상태에서 4년 만에 시험에 합격하셨다. 내가 이모를 자각하기 시작했을 나이부터 이모는 법정통역사이셨으니, 이 이야기 역시 꽤 오래전 이야기이다. 하지만 나는 이모의 그 발자취를 무려 26년이나 지나 고대로 밟고 있었다.


나의 외국로망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이제는 로망이라고 부를 수조차 없는 외국에 대한 꿈은 아마 이모의 이야기를 들으며 유년시절을 보냈기 때문일 것이다. 이모가 처음으로 영어공부를 하라며 사주신 포켓몬 미국판 dvd를 몇 번이고 보았던 것도 생각이 나고 셋째이모를 미국이모라 부르며 자연스레 미국이라는 나라에 관심을 가진 것 같기도 하다. 스무 살 때 이모가 모든 경비를 부담해 주시면서 미국을 처음 방문하게 되었고 그때 겪은 여러 감정적 충격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그리고 드디어 20대 중반이 되던 나는 이모의 발자취를 그대로 밟아 홀로 호주에 떠나기를 이른다. 심지어 이민을 목적으로.


미국을 방문하게 된 것은 이번이 세 번째였지만, 여행은 저마다 의미가 남달랐다. 처음 떠난 여행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기처럼 친척언니인 레이첼언니와 이모에게 기대어 한 여행이었다며 두 번째 여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내 힘으로 떠난 여행이었다. 이모는 이모댁 앞까지 리프트를 타고 온 나를 장하게 여기셨고, 그건 이모부도 마찬가지셨다. 이모부는 살면서 몇 번 뵙지 못한 분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이뻐해 주시는 것이 느껴지는, 말보다는 행동에서 다정함이 느껴지는 분이었다. 레이첼언니는 멀리서 온 나를 언제나 보러 와주는 언니였고, 언니가 스무 살의 나를 여기저기 끌고 가 준 덕분에 나는 조금 더 다양한 경험을 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세 번째인 이번 여행은 이모의 초대로 오게 된 두 번째 여행이자 대학원을 혼자 학비를 대며 졸업한 나에게 주시는 선물인 여행이었다. 고생한 것에 대한 보상은 누군가 해주어야 한다며 나를 크루즈여행에 데려가신 감사한 여행이다. 제안을 받자마자 나는 쉽지 않은 기회라는 것을 직감하고 곧바로 수락하였다. 나를 생각해 주시는 이모의 애정이 감사한 것은 물론이고 크루즈여행은 내 연봉으로는 쉽게 떠날 수 없는 여행이기 때문이었다. 10년 차이지만 여전히 세후 250을 받지 못하는 나의 입장으로선 내 두 달 치 월급을 털어야 다녀올 수 있는 여행이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연가사용으로 인한 사소한 에피소드가 있었지만, 관리자분들과 부장님께서도 흔쾌히 보내주셨고 나는 몇 차례 이모에게 불안함을 호소한 뒤에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최대한 한국에서 내 일정을 처리하고 가야 한다는 생각에 무리했던 탓인지 감기를 달고 시작한 여행이었기에 비행기 안에서 기침은 끊이질 않았다. 주위사람들에게 눈치가 보여 속으로 기침을 삭여가며 했더니 오히려 더 심해진 느낌이었다. 그렇게 힘든 비행을 마치고서 이모부와 이모를 보자 내가 미국에 다시 왔다는 것이 실감 나기 시작했다.


이모부께서는 내가 혼자 리프트를 타고 이모댁을 오고 가고 했던 것이 대견하면서도 내신 마음에 걸리셨는지 공항과 댁이 거리가 꽤 있음에도 나를 데리러 와주셨다. 이모부께서는 그렇게 말보다는 행동으로 나를 이뻐하셨다. 이모댁에 도착하여 이모가 차려주신 저녁을 먹은 뒤 짐을 풀고 이모댁 침대에 누워 내일 떠날 여행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내가 상상조차 쉽게 가지 않는 크루즈여행을 내가 사랑하는 이모와 떠난다. 이모와 단둘이 떠나는 첫 동행이기에 내심 그 부분도 설레었던 것 같다. 여행의 시작은 크루즈에 탑승하는 것이 아닌 그렇게 미국에 발을 딛는 그 순간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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