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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은 많은데 용기는 내보는 나같은 사람

by 사서 유

브리짓 존스와 동갑으로 남기까지 채 얼마 남지 않았다. 만으로 32세인 브리짓보다 1살 더 많아지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리이다. 짱구엄마 미선씨의 나이를 넘었을 때에는 그런가보다했다만, 삼순이에 이어 브리짓보다 나이가 많아진다는 것이 못내 싱숭생숭하다. 싫다고하기엔 나는 지금의 내가 만족스럽고, 좋다고하기엔 가속도가 붙는 시간이 무서워진다. 브리짓이 새해 첫 날 <All by my self>를 부르며 자축하는 시퀀스가 불현듯 떠오른다. 그 장면을 볼 때까지만해도 와닿지는 못했는데, 이제는 혼자서 노래를 부르고 흔히 말하는 생쇼를 할 수 있는 자취방을 가진 그녀가 진정 어른이었음을 실감한다.


어릴 때 내가 썼던 글들을 하나 둘 읽어보았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사적인 글들이 누가 보아도 공감할 정도의 보편적인 이야기로 변해갔다. 특히나 연애에 관한 글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관계가 종료될 때마다 나는 나를 위로하기위해 열심히 글을 올렸다. 지금도 유명세가 높지않지만 당시 내 블로그는 방문자수가 극히 적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닌듯 싶다.


그렇게 글을 살펴보다가 지금부터 10년 전에, 그러니까 내가 20대 중반 언저리였을 적에 쓴 글에 웃음이 났다. 내용의 이야기인 즉슨 상처받고 데인 경험이 많아질수록 사랑에 있어 소극적으로 변하고만 내가 낯설다는 류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그 글을 쓴 이후로 나는 참 열심히 사랑해왔고, 여전히 겁없다. 10년 전의 내가 어른인양 썼던 글을 이제는 어른값을 해야만하는 나이에 놓인 내가 다시 읽어보니 그저 귀엽기만 하다.


어린아이들은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넘어진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이들은 다칠 것을 생각치도 못한 채 그저 열심히 뛰어다닐 뿐이다. 30대가 되어도 내가 잃지 않은 것들을 떠올리다보니 나는 경험한 것에 비해 꽤나 용기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공적이던 사적이던 부딪히고 보는 성향이 여전하다. 상황이건 대상이건 마음에 드는 경우 어찌할지 궁리해본다. 재밌는 것은 그렇다고해서 겁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며 마음을 졸이면서도 마치 그러지않은 사람인양 행동해본다. 겁은 많은데 용기도 많은 나같은 사람, 분명 티는 나지 않을 뿐 주변에 여럿 있을 것이다.


앞으로 나이에 나를 가두는 일들은 늘어날 것이다. 상황적으로도 그렇고 나 스스로도 이에 분명 자유로울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 덕에 나는 후회없는 20대를 나의 선택으로 가득 채워놓았으니 앞으로 반절 남은 나의 30대 역시 여전히 용기있기를 바라본다. 쉴 새 없이 무너져 무뎌질지어도 겁 뒤에 따라오는 따뜻한 것들을 잊지않도록. 한 살 한 살 더 먹은 나를 여전히 대견해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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