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500일의 썸머>에서 썸머가 이해되는 사람이라면

나의 이상형은

by 사서 유

세번 넘게 다시 본 영화가 내게는 2편이 있다. 꿈이 힘들때에는 <라라랜드>를 보았고, 혼자인 것이 허전한 마음이 들때면 <500일의 썸머>를 보았다. <500일의 썸머>를 처음 볼 나이가 고작 19살이였어서 그저그런 로맨스영화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했고, 두번째 볼 때는 사랑에 대해 어려서 썸머가 도통 이해되지않았다. 오히려 썸머의 행동에 따라 이리저리 치이며 반응하는 톰이 더욱 안쓰럽게 느껴졌달까. 그런 썸머가 이해되었던 것은 몇 번의 지난한 이별을 거친 후인 20대후반에 이르러서였다. 톰이 얼마나 미숙했고, 썸머가 그에게 얼마나 많은 암시와 기회를 주었는지 그제서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30대가 되어서는 썸머를 온전히 이해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톰의 미숙함이 안타깝기도 했으며, 썸머가 왜 지금의 남편과 결혼했는지가 이해되었다. 어렸을 적에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선물해주는 톰에 가까웠으나 그만큼이나 용기있었고 사랑에 대해 무지한만큼 순수했다. 썸머가 결혼한 남자는 그녀에게 일방적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선물한 남자가 아닌, '그녀가 무엇을' 읽고있는지를 궁금해하던 남자였다. 톰이 썸머와의 관계를 통해서 다음 사람인 가을을 만나듯, 썸머 역시 톰을 만나며 투명한 그에게 마음을 여는 법을 배웠을 것이다.


이상형이 구체적이진 않았던 내가 실은 감상에 젖어사는 사람일까봐 미처 밝히지 못한 것이 있다. 바로 <500일의 썸머>에서 톰이 아닌 썸머가 이해되는 사람이 이상형이라는 것이다. 그런 사람과는 사랑에 대해 철학적인 이야기를 할 수가 있을 것 같고, 서로가 서로에 대해 깊히 골몰하는 시간을 함께할 것같다. 연애까지 가지 않더라도 그런사람과의 대화라면 온전히 마음놓고 좋아해볼 용기를 내보지않을까. 설령 그 영화를 보지못했더라도 내가 왜 이 영화를 좋아하는지 알아보고자 노력해주는 사람이라면 저런 것들이 가능하지않을까. 그치만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려운 일임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나이가 되었기에 그저 바람으로 남겨둘 뿐이다.


어쩌다보니 그간 만났던 사람들과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해보지 못했다. 마음 속에 이 영화에 대한 열렬한 애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이 영화를 함께 보자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다. 이해못할 것이 분명하기에 애시당초 이야기를 꺼낼 생각조차 하지않던 사람도 있었고 이해할 것 같던 사람과는 당장에 앞둔 문제를 해결하기에 급급했다. 결국 썸머가 이해되는지 묻지 못한 채 종료됐다. 실은 썸머가 이해되는지가 아니라 내가 이해되는지를 묻고싶었기에 아마 쉬이 이야기가 나오지 못했으리라.


영화한줄평에 누군가 이런 말을 적었다. 우리는 한 때 모두 톰이였고, 썸머였다고. 무지했기에 무모하고 순수했던 톰과 알고있기에 주저할 수밖에 없던 썸머. 지금의 나는 톰과 썸머 그 어디즈음에 있을까. 마냥 모르지도 또 그렇다고 다 알지도 못한 채로 이 영화를 다시 틀어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겁은 많은데 용기는 내보는 나같은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