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낭만사서, 그게 저예요

학교도서관저널 <낭만사서의 선곡 라디오> 연재를 마치며

by 사서 유


어릴 적부터 작가를 꿈꿔왔음에도 내가 글을 써서 돈을 번다는 생각은 쉽게 하지못했다. 글을 납품하여 고료를 받는다는 것은 프로들의 세계에서나 생길법한 일인데, 나같은 작가지망생이 그럴 일이 찾아오나싶은 마음에 언감생심 꿈도 못 꾼 것이다. 그러나 기회는 운명처럼 찾아왔다. 당시 학교도서관저널에서 작가지망생 특집으로 인터뷰를 청하고자 브런치를 통해 기자님이 연락하셨고, 그 일을 계기로 몇 편의 짧은 토막글을 원고로 보냈었다. 그 후 지면에 내 글만 실리는 코너를 연재하기까지의 과정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제안을 받은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영광이었으며, 겁이 난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거절할 리 만무한 일생일대의 기회였다. 내 글이 처음 코너에 실렸을 때의 환희란. 10년동안 블로그에서만 혼자 써오던 글이 모여 브런치작가에 통과했고, 이후에 브런치를 통해 잡지코너를 연재하는 필자가 되었다. 모든 공모전에서 낙방한 처지임에도 이 곳을 마냥 미워할 순 없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2년반 가량 코너를 연재하면서 내가 세운 철칙은 3가지였다. 반드시 주제는 명확할 것, 소재가 없다면 만들어서라도 곡을 찾아낼 것, 왠만하면 마감일보다 하루 이틀 원고를 빨리 제출할 것. 다행히도 이 3가지가 잘 지켜진 덕분에 별 탈없이 코너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연재 때는 긴장감도 있던 터라 <낭만사서의 선곡라디오>의 그 낭만사서가 나임을 쉽게 실감할 수 없었지만, 연재가 끝나자 자신감이 이자 붙듯 불어났다. 기나긴 시험을 통과한 것 같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절친한 친구와 헤어진 느낌마저 들었다. 매 해 새로운 곡을 선정하고 이에 맞는 내 생각을 잘 정돈하여 빚는 일이 나에게는 매번 새친구를 사귀는 과정처럼 느껴졌다. 한 번 내 손을 떠난 글은 지면에 실리고나면 더이상의 수정이 불가능했다. 필자이자 독자이던 나의 시기는 서로 달랐기에 가끔은 남이 쓴 글을 읽는 것과도 같았다.


코너를 시작하며 나를 처음 알아봐주신 기자님, 편집장님, 매번 정성스러운 답메일을 보내주셨던 두번째 담당기자님께 한번도 감사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우스갯소리로 연재가 끝나고 인사를 드리며, 유퀴즈에 내가 나온다면 꼭 학교도서관저널을 언급하겠다는 말씀도 드렸다. 반은 농담이었지만 반은 진심이었다.


10년전 쯤에 친구와 연극을 보러갔을 때의 일이다. 당시 관객을 대상으로 배우들이 퀴즈를 내서 정답을 맞춘 이가 상품을 받아가는 시간이었다. 한 배우가 마지막 선물로 종이봉투 하나를 건넸고, 그 안에는 본인의 사인이 적혀있었다. 다소 실망한 관객에게 그 배우는 자신이 언젠가 대배우가 될지 모르니 그 사인을 소중히 간직해야할 것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 장면이 성인이 되고나서 가장 잊을 수 없는 기억 중 하나로 남았다는 것을 그 분은 알고계실까. 이후 나는 같은 마음으로 작가용명함을 따로 파내어 기회가 되면 건네고 다녔다. 혹시 모르지. 내 명함도 언젠가는 유명한 작가가 스스로 만든 첫 명함이라며 박물관에 전시될 날이 올지도.


이상하다. 정말 언젠가는 내가 쓴 글이 책으로만 나올 것 같고, 공부가 끝나면 쓰고싶은 소설이 입소문을 타 드라마화가 될 것만 같다. 허무맹랑한 이야기이지만, 글쓰는 사서라고 소개되면서 유퀴즈 류의 프로그램에 나와 내 이야기를 하게될 것만 같다. 그리 된다면 지금 이 글을 읽고계신 분들에 대해 꼭 말을 해야지. 여러분이 읽고있는 지금 이 글의 필자가 언젠가는 이름만 들어도 유명한 작가가 되겠노라 약속했다고. 그 때되면 '아, 나 저사람 글 오래전부터 읽어왔는데'라고 당당히 이야기하시길 바란다. 이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당신이라면 내 성공에 충분히 일조하신 셈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500일의 썸머>에서 썸머가 이해되는 사람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