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 고생하는 사서짤 모두 아시잖아요
사서선생님들 대부분은 아실 거라 생각한다. '사서 고생하는 사서' 이 문장 한 마디에 얼마나 많은 회환과 기쁨과 뿌듯함 그리고 탄식, 슬픔이 담겨있는가. 아직까지 이 말을 모를 순 있어도 까먹은 사서는 본 적이 없다. 2012년부터 시작해서 일과 공부를 내내 병행했다. 그 누구보다도 미워하고 싫어했지만, 선배님들과 교수님과 아직까지 연락할 정도로 애증어린 D전문대학을 시작으로 학점은행제를 통해 4년제 학사학위를 받고 호주에서 돌아와 중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그 기간동안 나는 학교도서관 1년, 교육청 학교도서관 담당 주무관(휴직대체) 2년, 서울시 작은도서관 전담사서 1년, 다시 학교도서관 1년이라는 꽤 복잡한 커리어를 쌓았다. 임용티오가 봇물터지던 시기에 대학원에 다니고 있었기에 졸업 후 다시 바늘구멍 앞에 놓여졌다. 그나마 사서임용 암흑의 10년이 지나고, 30대 초반에 임용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작가로 밥벌어 먹고 살긴 힘들 것 같아 고3 때 진로를 정한 후 줄곧 학교도서관 사서만 생각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리어가 뒤죽박죽인 것이 민망하지만 결국 돌고 돌아 다시 학교도서관에 와있다. 현재는 특성화고등학교 사서로 6년째 재직 중이다. 어느덧 12년차의 경력직이 되었다. 그 과정 중에서 공무직으로, 공무직의 휴직대체자로, 공무원의 휴직대체자로, 작은도서관 전담사서로 있으면서 직업적 회의감과 기쁨을 참 많이도 느꼈다. 어떤 자리가 더 좋고 나쁘고를 감히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전담사서 근무 시 비록 며칠이지만 계약기간 절 반 이상을 월급이 밀리는 경험을 해볼 줄은 꿈에도 몰랐을 뿐이다. 지금의 나라면 당시의 말도안되는 부당함에 대해 분노할 수 있었을까. 사무실식구를 먼저 챙기던 윗 분이 그럴 수 있지 않냐며 내가 이해심이 부족하다는 말 따위를 듣고 적어도 울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공무직으로 근무하면서 느낀 별의별 감정에 대해선 전부 말할 수조차 없고, 또 말하고싶지 않다. 온전히 이해받기 힘든 영역이면서 또 온전히 이해받기를 원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아는 연차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저 275일 계약기간부터 시작해서 마지막에 공채로 다시 힘들게 돌아온 내가 대견할 뿐이다. 호주에서 단 한 달만 더 있었더라면 결코 얻지못할 재취업의 기회였기에, 그 때 나의 판단이 여전히 다행스럽다. 사족이 길었지만, 아무튼 나는 꽤 다사다난한 커리어를 가졌고 지금은 이에 비해 무기계약직이라는 안정된 직종에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공부를 시작했냐하면.
온전히 솔직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사회적인 현상과 더불어 외부적인 요소도 한 몫했고 무엇보다 연봉을 높히고 싶었다. 지금 나의 일이 좋고 이 일을 오랫동안 더 좋아하려면 연봉이 높아야만했다. 연봉에 대한 기준은 각자가 다르므로, 내 생각에 비추어 모든 공무직 사서들의 연봉을 가늠하지 않기를 바란다. 어찌되었건 현실적인 이유로 나는 조금 덜 쪼들리면서 자취도 하고싶고, 자차도 몰면서 내가 생각한 이상적인 30대 싱글 직장여성의 모습에 더욱 가깝고 싶었다. 그러니까 학교도서관 사서로 있으면서 연봉을 높힐 유일한 방법은 임용고시에 합격하여 호봉을 인정받는 정교사가 되는 것 뿐이었다. 지금도 이 생각이 여전히 유효하기에 일병행 삼수생에 도전하고 있다. 다만 2년 간의 수험생활을 겪으며 결심한 것이 있다면, 올해 공부는 7월 공개모의고사 이후로 점수에 따라 끝을 내겠다는 것이다.
일을 병행하며 공부를 한다는 것은 불안함을 못견뎌하는 내 성격상 오히려 적합한 선택이었다. 나는 안정된 내 자리도 걷어찰만큼의 용기와 자신감이 부족했고, 무엇보다 통장잔고가 깎여가는 불안함을 견딜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스운 점은 나는 내 나름대로 용을 써가며 했다고했는데 점수는 큰 폭으로 오르지도 않았고 또 그래, 코피를 쏟아가며 공부하지는 않았다. 못한 것인지 안한 것인지 이제는 내 역량이 의심스럽다.
작년엔 브런치와 블로그에는 반년동안 아무런 글을 올리지 않았다. 그렇게해서까지 얻은 결과가 고작 이정도 점수라는 것이 허탈하기까지하다. 매거진을 굳이 새로 만들어 연재하는 이유는 어떤 대단한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오로지 스트레스를 풀 곳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우연히 내 글을 본 누군가가 공감되어 위로도 받는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을 것이고, 약소하게나마 내 글이 사서라는 직업을 이해하는데에 있어 도움이 된다면 그 것 역시 다행일 것이다. 언젠가 내 직업으로 꼭 글을 연재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정교사가 된다면 그 간의 모든 이야기들을 모으고 모아 적당한 제목으로 사서에 대한 책을 내보겠노라고 생각도 했고 말이다. 다만 그 정교사가 언제될지 도무지 알 수 없기에, 임용고시생 일기를 빌어 조금이나마 써보려한다. 항상 노트북으로만 글을 써오다가 이제는 핸드폰으로 글을 쓰는 것에 익숙해지려 노력하고 있다. 퇴고는 하겠다만 그 이상의 수정은 하지 않을 것이기에, 이 글이 잘 쓰인 글이라고 자신있게 말하진 못하겠다. 다만 이보다도 솔직한 글은 여태 내 브런치에서는 보지 못했던 것임을 밝혀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