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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하트에겐 없고 샘 윌슨에겐 있는 것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를 보고서

by 사서 유

내가 마블을 좋아했던 이유는 이렇다. 자신의 존재와 사상에 대해 끊임없이 골몰하는 히어로들, 전투능력 너머로 각 인물이 가진 철학들, 스스로에 의해 만들어지고 완성된 히어로들을 통해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메시지 등. 중요한 것은 정확히 <어벤져스: 앤드게임>이후로 차례로 등장하는 뉴히어로들을 보면서 마블에 대한 애정을 점점 잃어갔다는 것이다. 단, 캡틴 아메리카에게 직접 선택받은 차기 캡틴 샘 윌슨을 제외하고.


아이언맨의 후계자이면서 뉴 히어로들 중 거센 비난을 받고 있는 아이언하트는 뉴 캡틴을 향한 애정만큼이나 정이 떨어져 갔다. 아니, 나는 사실 아이언맨의 진정한 후계자는 스파이더맨이라고 믿는다. 아이언맨과 유사부자관계에 가깝던 스파이더맨은 그와 때론 부딪히고 함께해 가며 아이언맨의 신념을 점점 이해하게 되었다. 선대 영웅과의 서사가 있고 그의 고뇌를 이해하며 자신만의 철학을 세우는 것. 감히 아이언의 이름을 차용한 아이언하트에게는 없고 스파이더맨과 차기 캡틴아메리카 샘 윌슨에게 있는 것이 바로 이점이다.

다만 스파이더맨이 아이언맨의 유산을 계승하는 것에 가깝다면, 샘 윌슨은 스티븐의 산을 건네받는 것에 가깝다. <어벤져스: 앤드게임>에서 스티븐은 샘에게 직접 방패를 건네주는데 이는 단순히 캡틴 아메리카의 자리를 물려주는 것이 아닌 방패가 가진 힘의 무게를 선의로 다룰 줄 아는 사람으로 스티븐이 샘을 지목한 것에 가깝다. 샘 윌슨은 MCU드라마 <팔콘 앤 윈터솔져>에서 스티븐의 선택을 외면하고 말지만 이내 그의 뜻을 받아들여 혈청을 맞지 않은 인간의 몸으로 캡틴 아메리카의 자리를 이어받는다. 본 영화에서 샘은 혈청에 대해 고민하는 듯 보이나 그는 끝까지 인간의 한계선 안에 활동하는 히어로를 택한다. 극 중 버키의 대사는 이 영화가 관통하는 메시지이자 마블이 그동안 놓치고 있던 그들만의 철학 같다.


최근까지 마블이 내놓은 뉴 히어로들은 기본적으로 '태어나 보니 능력자이면서 이 능력에 대해 골몰하기에는 어리고 미숙하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주로 새로운 영웅들이 등장하던 작품의 이야기는 기존에 있던 영웅들이 모종의 계기로 이들을 발굴하고, 이들이 성장하는데에 필요한 용기를 주며 물러나는 방식으로 식으로 흘러갔다. 영화 <캡틴 아메리카:뉴 브레이브 월드>는 마블이 정신 차리지 못하고 자신들이 세운 철학을 스스로 발로 차버리며 내놓던 작품들과는 정확히 대척점에 있는 영화라 할 수 있겠다.

스티븐(전 캡틴 아메리카)의 사이드킥으로 팔콘 역을 톡톡히 해내던 샘은 시리즈에 비중을 점차 늘려가며 관객들에게 서서히 자신의 위치를 인식시켰다. 샘이 스티븐과 함께하는 시간은 곧 관객이 그를 납득할 수 있는 시간으로 비례했으며, 샘은 전 캡틴 아메리카의 유산을 그대로 받들되 스티븐과는 다른 새로운 철학을 내세운다. 스티븐이 미약한 인간에서 혈청을 맞고 초인적인 능력으로 재탄생하여 미국 그 자체를 지켜주는 든든한 영웅에 가깝다면, 샘은 미국을 지탱하게 만드는 힘에 가깝다. '아메리카 드림'이라는 말이 따로 있을 정도로 평범한 사람도 꿈을 갖고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곳. 스티븐이 초인적인 능력마저 갖게 된 백인 남자라는 점과 스티븐이 흑인이라는 것은 단순히 캐릭터를 설명하는 특징 이상의 의미일 것이다.


능력이 있음에도 제도권 안에서 차별받고 핍박받는 사람들의 일부를 이사야가 대표하고 있다면, 은 시대가 변하며 차근차근 올라와 기어코 정상으로 올라온 다른 일부를 보여준다. 이러한 복합적인 이유로 샘은 혈청을 맞고 죽기 힘든 히어로가 되는 길을 택하는 대신 죽을 가능성을 언제나 가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 꿋꿋이 버텨나가는 한 명의 인간으로 남기를 택한 것이다.


뛰어난 두뇌와 신체를 가졌지만 자신이 가진 능력에 대해 끊임없이 골몰하며 왕관을 올곧게 쓴 영웅들을 그린 마블은, 골몰하는 인간이라는 그들의 유산을 그대로 이어받아 기어코 왕관의 무게를 견디고자 하는 새로운 영웅을 탄생시킨다. '자신의 존재와 능력을 골몰하고 철학하는 것'은 최근 MCU 드라마를 다시 살려낸 <로키2>와 그 궤를 같이 한다. 로키와 샘은 미완성된 자신을 받아들이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존재를 완성한다는 공통점을 가졌고, 이러한 공통점은 그간 마블이 관객을 떠나보내고 새 인물의 소개에 급급했던 최근작들의 패인이라고 볼 수 있겠다.

덧붙여 실패 없는 틴 아메리카가 되기 위한 노력이 대의보다는 겸손에 가깝다는 점에서 자리가 곧 사람이던 기존의 영웅과는 차별점을 보인다. 작품과 더불어 조연에서 시작하여 40대 중반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의 피지컬을 유지하며 끝내 주연으로 이름을 올린 배우 앤서니 매키 역시 그가 맡은 역에 더욱 몰입하게 만든다. 헐리우드 스타는 자신이 아닌 팔콘이라는 그의 말이 극 중 캡틴의 대사와 결을 같이한다는 것을 당시의 그조차도 몰랐으리라.


개인적으로 그가 캡틴 아메리카라는 역할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작품에서 만나볼 수 있기를 희망하는 바이다. <오펜하이머>에서 아이언맨을 놀랍도록 지워낸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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