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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지> 사랑, 그 아름다워 폭력적인 것에 대하여

by 사서 유

나는 사랑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그린 영화보다도 그 이면을 그린 영화에 더욱 끌린다. 사랑이 가진 숭고함은 마치 동화 속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그것이 가진 잔인함, 헛헛함, 처연함은 현실을 기저에 두는 것만 같기 때문이다. 영화 <데미지>는 치정을 넘어 아름다워 폭력적인 사랑의 속성을 매우 잘 담은 영화라 할 수 있다. 눈부시게 아름다우면서도 처절하게 폭력적이고 또한 사무치게 헛헛한 그 사랑의 속성을 영화는 한 남자의 돌이킬 수 없는 선택으로 그린다.

영화 <데미지>는 두 주연배우가 영화의 서사를 부여할 정도이다. 제레미 아이언스란 배우가 가진 섹시함과 고독함, 불안정함과 줄리엣 비노쉬가 가진 미지의 매력이 그 두 주인공들을 설명한다. 그렇기에 영화는 극 중 안나(줄리엣 비노쉬)가 왜 자신의 남자친구의 아버지인 스티븐(제레미 아이언스)을 유혹하는지에 대해선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제레미 아이언스가 가진 본연의 매력을 관객으로 하여금 스스로 납득시키게끔 그의 매력을 눌러 담아 전달할 뿐이다. 사실 영화 <데미지>가 그저 그런 불륜영화로 보이지 않는 이유는 두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과감히 생략함으로써 그것이 욕정인지 애정인지를 혼돈하게 하는데에 있다. 그러니까, 두 주연배우가 곧 이 영화의 개연성인 셈이다.


안나는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매력으로 스티븐을 매료시킨다. 스티븐은 그녀에게 누구냐고 재차 물으며 자신의 감정을 거친 어쩌면 폭력적인 섹스로 표출한다. 사실 안나는 꽤나 자신에 대해 그에게 설명하고 있었음에도, 둘의 섹스는 시간이 갈수록 부드러워지기는커녕 여전히 서로를 물어뜯듯이 탐할 뿐이다. 영화 <색,계>에서 주인공이 나누는 섹스의 강도를 통해 두 사람의 심적인 거리를 보여주었다면 영화 <데미지>는 도무지 가까워지려야 가까워질 수 없는 두 사람의 관계를 거친 섹스로 표현한다. 두 사람이 가장 부드러우면서도 보통의 체위를 보일 때에는 두 사람의 불륜을 마틴이 목도했을 때이다.

안나는 그러니까 알 수 없는 매력을 가진, 남자를 속수무책으로 빠져들게 하는 팜므파탈이라기보다는 사랑이 가진 폭력성이 의인화된 것에 가깝다. 친오빠마저 그녀를 사랑하여 스스로 생을 마감할 만큼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들은 저마다 각기 다른 방법으로 자멸한다. 속절없이 빠져들게 하여 기어코 상흔을 남긴 채로 사그라들고 마는 사랑의 이중성. 안나는 마치 그 이중성 자체처럼 말미에는 그저 평범한 한 명의 여성으로 돌아갈 뿐이다. 그 누구보다도 소유하고, 탐닉하고 싶은 대상이 어느 순간 다수 중 한 명일 뿐인 타인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 정열에 폭풍처럼 휩싸이고 난 후에 남은 폐허 속에서 쓸쓸히 잔해를 치워야만 하는 사랑의 헛헛함. 그 사랑의 속성은 안나 그 자체이며 그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지고 마는 인간은 무력할 뿐이다.


극 중 마틴은 아버지인 스티븐에게 열정이 부족하다며 언급하기도 했고, 스티븐의 장인은 그가 선택한 삶은 없었다는 식으로 그를 표현한다. 그가 주체적으로 열정을 가지고 선택한 것은 마치 소년의 사춘기와도 같다. 어른이면서도 성장하지 못한 그의 내면은 그를 미치도록 갈망하게 만드는 사랑을 만나 폭주하고 만다. 안나가 사랑 그 자체에 가깝다면 무지한 스티븐은 그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마는 어리석은 인간일 뿐이다. 신도가 십자가를 바라보듯 그는 자신이 잃어버린 그의 아들과 연인, 그리고 그 자신이 찍힌 사진을 바라본다. 공허하면서도 처연하고 어찌 보면 후회와 후련함을 동시에 가진 그 눈빛은 오로지 제레미 아이언스가 가진 배우의 역량에서 나온다.


사랑의 이중성을 그린 비슷한 영화로 <당신이 사랑하는 동안에>,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중독>을 추천하는 바이다. 아릅답지만 그 무엇보다도 추악해질 수 있는 사랑. 어쩌면 사랑은 삶의 속성과 닮았기에 우리는 알면서도 속고, 속으면서도 모른 채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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