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드는 꽤나 혈통이 복잡한 영화이다. 유명한 원작이 있고 이를 2차 창작한 소설이 있으며, 이 소설을 가지고 만든 뮤지컬을 다시 영화로 옮겼다. 이러한 특이점에도 불구하고 <위키드>의 1탄은 대성공을 거뒀다. 원작의 이해도가 높은 배우들을 섭외하여 그 역량을 마음껏 뽐냈으며 무엇보다도 <위키드>자체의 서사가 영화로 옮기기에 좋은 이야기이다. 뮤지컬 <캣츠>의 실패요소가 괴랄한 CG인 것과 더불어 기승전결이 뚜렷하지 않다는 점을 생각해 보자면, <위키드>의 성공은 예견된 것과도 다를 바 없었다. 더군다나 뮤지컬에 평소 관심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오즈의 마법사>에 대한 기본 지식은 있는 편이라, 관객층을 두루 섭렵할 수 있었다는 것도 <위키드>의 장점이다.
위키드의 1편이 원작영화의 명예와 장점을 힘입어 만든 작품이라면 2편 <위키드: 포 굿>은 이러한 원작의 단점과 무게를 고스란히 지닌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원작 뮤지컬에서 2부가 지닌 한계는 이 영화도 고스란히 답습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원작을 충실히 따르는 작품들이 가진 필연인지라 영화의 역량이라 말하기도 어렵다. 두 주인공의 만남부터 서쪽마녀의 각성까지 기승전결을 뚜렷하게 그린 1편과는 달리, 2부의 내용은 착한마녀 글린다의 고뇌, 서쪽마녀 엘파바의 위기가 주된 구조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속도감이 더딜 수밖에 없다. 주요 인물들이 대거 등장하여 주인공의 탄생과 각성을 그린 1편과는 달리 2편은 앞서 등장한 주인공들의 활동이 다소 평면적이다. 피예로 왕자는 피예로 왕자답게, 엘파바는 엘파바답게 각자 그들의 역할에서 몇 보 전진할 뿐이다.
2편에서 가장 두드러진 성장을 보인 것은 착한마녀 글린다인데 그녀의 고뇌를 진중하게 담기에는 영화의 성격이 허락하지 않는다. 뮤지컬의 원작인 <위키드>는 서양고전인 <오즈의 마법사>를 비틀어 서구문화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작품이고, 이 작품에서 밝은 면을 강조하여 나온 것이 뮤지컬 <위키드>이기 때문이다. 원작소설의 염세적이고 날카로운 시선을 전체연령가로 낮추는 과정에서 주제의식 역시 같이 옅어진 까닥이다.
다만 동물을 탄압하는 과정에서 보인 인종차별, 선과 악의 진실 없이 쉽게 선동되는 대중심리 등이 잘 나타나있는 1편은 이러한 외부적인 요소 덕에 극의 속도감이 붙는다. 마치 1편이 격동의 시기와도 같다면 2편은 뒤틀려있지만 안정되어 있는 사회를 보여준다. 이러한 줄거리의 성격 탓에 <위키드: 포 굿>은 태생적인 한계를 지닌다. 그 점을 감안하고 이를 영화의 탓으로 돌리지 않는다면 이 영화는 뮤지컬을 브라운관에 옮긴 가장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위키드> 이전에 호평받았던 뮤지컬영화 <맘마미아>를 떠올려본다면 이 작품이 잘 만든 작품이라는 것에 이견이 없을 것이다. 기존 뮤지컬팬들을 실망시키지 않으면서, 뮤지컬을 잘 모르던 관객들도 원작에 대해 찾아보게 만드는 것이 두 영화의 공통점이다. 더불어 제한된 무대공간에서 보일 수밖에 없었던 공간적 한계를 뛰어넘어 영화판으로서의 장점을 보인다는 점 역시 이 영화의 장점이라 할 수 있겠다. <캣츠>는 '뮤지컬'이라는 장르적 특성을 십분 활용하여 관객들에게 만족감을 주던 점을 도리어 브라운관에 갇혀버리게 만듦으로써 실패했다. 이러한 점을 생각해 본다면 애당초 영화로 만들어질 수 있는 작품을 제대로 옮기는 것 역시 기획자의 역량일 것이다.
엘파바와 글린다를 연기한 두 주연배우는 뮤지컬 <위키드>의 광팬으로도 알려져 있다. 실제 영화 비화들을 살펴보면 원작의 이해도가 높은 배우들이 투입되었을 경우 작품의 방향성을 얼마나 올곧게 갈 수 있는가를 알 수 있다. 배우 개인 인지도가 높은 아리아나 그란데를 지우고 글린다로 완벽히 분했다는 점에서, 그녀의 작품을 향한 열정을 엿볼 수 있다. 영화 외적으로 이런 생각도 해보았다. 원작 팬을 가슴 벅차게 만들면서, 새로운 팬층을 원작으로 유입시키는 것. 최근 자사의 고전 애니메이션을 실사화하는 디즈니가 잃지 말았어야 할 원작을 향한 예우는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