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판결>은 예고편만 본다면 오히려 법을 불신하게 된 피해자가 사적제재로 가해자를 처단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 정반대의 이야기이다. 철저히 법의 테두리 안에서 심판하기 위해 불법을 저지르는 이 아이러니함은 마치 선을 넘나들며 수사하는 형사의 이야기와도 비슷하다. 우리나라에서는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인도네시아를 배경으로 제작된 글로벌 합작영화 <판결>은 설정이 개연성을 만드는 영화이다. 영화의 낯선 배경이 한국관객들로 하여금 시종 떠오르는 의구심들을 잠재울 수 있기 때문이다. 법을 불신하는 자가 사적제재재를 가한다는 클리셰를 역으로 유턴한 설정이 참신하게 보이기도 하다.
영화 <판결>은 국내 개봉작인 류승완 감독의 영화 <베테랑>과 묘하게 비슷한 영화이다. 차이점이라면 <판결> 속 주인공은 1인칭 시점에서의 피해자이지만 <베테랑>은 가해자를 뒤쫓는 형사라는 점이다. 물론 테러를 감행하는 영화의 무거운 분위기는 때로 유쾌하게 그려지는 액션활극에 가까운 <베테랑>과는 결이 몹시도 다르지만, 이윽고 법의 테두리 안에서 재벌을 심판한다는 점이 비슷하게 다가온다. 재벌 자제들이 국가 사법시스템을 조롱하듯 빠져나가고 이를 이 악물고 다시 법의 심판대에 세우는 결말이 현실을 풍자하면서 보는 이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비록 우리는 형사도, 전직 특수요원도 아니지만 법이 결국은 정당하다는 것에서 안도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판결>의 영리한 지점은 극의 배경이 우리나라가 아닌 인도네시아라는 점이다. 부패지수가 우리나라보다 낮은 인도네시아에서는 실제로 재판 중 금품을 요구한 검사가 체포된 사례도 있다. 물론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변호사의 일처리 방식이나 사법체계의 허술함은 현실감이 떨어진다. 하지만 이 모든 일들이 벌어지는 국가가 우리나라가 아닌 타국이라는 설정은 관객이 갖는 의문을 다소 희석시킨다. 이 영화가 인도네시아 본토에서 개봉할 때 관객의 반응이 또 어떨 것인가에 관한 우려가 따르지만, 오로지 국내시장에서만 본다면 아이러니하게도 이 설정은 구멍을 영리하게 빠져나갈 구실을 제공한다.
이 영화에서 사실 납득하기 어려운 점은, 훈련받은 현장 특수부대요원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다소 무능하게 그려진다는 점이다. 극 중 주인공의 아내는 임신 중에도 변호사시험에 합격할 정도로 엘리트로 나오는데, 이러한 여성의 사회적 진출을 그려냈음에도 조력자인 여성캐릭터의 무능함은 한계를 보인다. 이 점이 영화의 설정 문제인지, 혹은 아시아영화의 미처 다 해결하지 못한 문제인지, 또는 국가적 인식문제인지를 알 수 없다는 점이 다소 답답할 따름이다. 다만 이 영화가 권선징악의 쾌감을 선사한다는 점에서 재밌게 즐길 수 있는 영화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어쩌면 여성캐릭터의 한계는 비단 이 영화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해당 영화는 <씨네랩>(영화/OTT 전문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 초청 시사회로 관람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