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온전한 슬픔 역시 없다는 것을
미국여행에서 돌아온 뒤 1년이 지나고
미국에서 돌아온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라라랜드>가 극장에서 재개봉을 했다. 사회적 거리두기인 상황에서 공노비였던 나는 한동안 재개봉 소식에도 달려가지 못하다, 이대로 영영 이 영화를 스크린으로 다시 보지 못하면 후회할 것 같아 극장으로 향했다. 영화를 다시 보면서 나는 촬영지를 직접 다녀왔다는 낯익음에 영화가 현실인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 아렸고, 아린 만큼 해소되지 못한 감정의 찌꺼기들이 몰려왔다.
당시 쓴 글의 제목은 이러했다. '어쩌면 내 인생도 드라마가 아니었음을' 드라마가 아닌 게 당연한 인생임에도 불구하고 그때의 나는 못 이룬 어떤 꿈들에 대한 미련이 남았는지 내 인생이 드라마가 아니라며 한탄하고 있었다. 내게는 허용되지 않은 어떤 삶의 형태가 있는 것 같았고, 그 삶에서 철저히 벗어난 현재의 삶을 살고 있는 내가 처연했다. 주인공들이 서로의 꿈을 향해 달려가고 결국 이뤄낸 영화적 허용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그들의 사랑은 이루지 못한 현실적인 결말이 마치 나의 인생과도 같았다. 당시에 불발된 인연과 끊임없이 시드니를 떠올리게 했던 캘리포니아의 눈부신 날씨가 영화 <라라랜드>에서의 현실적인 결말처럼 느껴졌다. 애초에 영화적 허용이란 것도 영화에서만 존재한다는 것을 나는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다. 나는 내 삶에 퍽 적응하며 새로운 꿈을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부는 치열하게 하지 않으며 글은 꾸준히 써나가는 그런 평범한 일상을 보낸다. 1시간이나 버스를 타고 조그만 극장에서 홀로 <라라랜드>를 보며 다시 눈물을 훔치던 나는 어느덧 이별에도 의연해지려 애쓰는 법을 아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1년 전 글에서 나는 <라라랜드>의 결말이, 온전히 행복할 수 있는 선택이란 없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라 말했다. 그러한 이유로 나는 이 영화를 사랑하다 못해 촬영지까지 찾아갔노라고. 그러나 이제 나는 안다. 인생에서의 그 모든 선택들은 당시의 나였고, 행복하지만은 않았던 선택 속에서도 온전한 슬픔만은 없었다는 것을. 서로를 향해 짓던 셉과 미아의 미소엔 '우리 참 빛났었지'라는 무언의 격려가 있다는 것을. 그러한 위로와 격려를 나는 나 스스로에게 꾸준히 해주어야 한다는 것을. 과거를 포함한 지금의 나와 앞으로의 나에게도, 내 모든 여행기를 묵묵히 읽어준 당신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