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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Nov 04. 2018

<창궐> 재밌으면서 재밌지 않아

부실한 스토리를 포장한 억대 제작비의 화려한 좀비물

(위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토록 기묘한 영화는 참으로 오랜만이다. 그러니까 나름 영화를 좋아하여 되도록이면 신작을 챙겨 보고, 가장 좋아하는 예능 프로는 현재 <방구석 1열>인 나로서는 영화를 본 후 감상평이 크게 3가지로 나뉘곤 하는데 영화 상영 내내 가슴 밑에서부터 무언가 울분이 치솟아 엔딩크레딧이 올라도 그 잔열이 남아있던가 하면, 도무지 이게 무슨 이야기야라며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든다든지, 차갑고 날카로운 사회 비판적인 영화들을 마주할 때마다 느낄 수 있는 그 서늘함과 찝찝함 등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니까 영화 <창궐>처럼 킬링타임용으로는 나쁘진 않으나 그렇다고 내 시간이 유쾌하게 킬링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으며, 누가 보아도 슬픈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관객에게 연신 감동을 종용하는 인상을 남기며) 눈물이 나오지 않는 데다가, 영화가 주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는 뚜렷하게 읊을 수는 있겠으나 그 방식이 굳이 꼭 이래야만 싶은. 그러니까 총체적 난국이면서 동시에 버리기는 애매한 기묘하고도 독특한 영화였다.


영화 <창궐>의 주 내용은 이러하다. 마치 인조를 떠오르게 하는 무능하고 탐욕스러운 왕 (간신의 말에 귀 기울이며 청나라와의 관계에 있어 철저히 을의 입장인) 이조에 의해 무너져가는 조선을 두고만 볼 수 없었던 세자 이영은 청나라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하여 일을 도모하던 중 모든 것이 발각되자 수하들과 그의 식솔들을 위해 자결을 택하고, 그로 인해 청나라에서 한량과도 같았던 왕자 이청(현빈役)은 조선에 다시 돌아오게 된다. 그 과정에서 역모를 꿈꾸는 김자전(장동건役)에 의해 위기를 맞던 이청은 제물포항에서 수도 한양으로 향하던 길에 야귀떼들을 만나게 되고, 그를 지키려는 박 종사관(조우진役)과 그 무리들과 합류하여 안전히 입궁하게 된다. 한편 이영의 주도하에 화약 등을 밀항하고자 거래한 한 이양선에서부터 비롯된 그 야귀떼들을 이용하여 왕을 처치하려고 하는 김자전의 음모로 인하여 궁은 이미 야귀떼들로 창궐하게 되고, 궁 밖의 백성들을 지키기 위한 이청의 필사적인 노력은 시작된다.

영화 <창궐>은 앞서 설명하였듯 '야귀'라는 좀비와 뱀파이어가 합쳐진 듯한 괴생명체와의 사투를 그린 조선판 좀비 영화라 할 수 있겠다. 서양의 크리처에 조선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착안한 그 발상은 참으로 신선한 소재라 할 수 있겠다. 문제는, 그러한 신선한 소재를 단편적인 캐릭터와 익숙한 클리셰 그리고 미약한 감정선으로 점철되었다는 것이다. 영화의 도입부는 야귀가 조선으로 유입되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풀어가며, 관객에게 앞으로도 이 영화가 꽤나 그럴듯하다는 듯이 보여주지만 그 이후로 진행되는 영화의 내용은 지루하고 따분하기 짝이 없다. 무능하되 폭정을 일삼는 왕과 그러한 왕에게서 나라를 구하고자 애쓰지만 다소 유약한 세자. 그리고 세자 자리는 관심 없는 한량인 왕자는 그렇다 하더라도, 그 이후로 전개되는 내용과 주인공들의 행보는 다소 설득력을 잃어버린다. 오로지 미인만 쫓는 별 볼 일 없는 왕자가 군주로 성장하는 과정 안에서 그와 함께 야귀를 무찌르는 주변 인물들과의 감정선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주인공들의 연기에 의존하여 극을 이끈다. (그 들이 함께 동고동락하여 정을 쌓고, 우정을 나누는 과정이 필요 이상으로 생략된 것이다.)

영화 <창궐> 스틸컷 / 네이버 영화 제공

또한 극 중 이 모든 상황을 탄생시킨 악역 김자전 역시 그의 행보에 있어 설득력을 잃어버린다. 궁 안에서 벌어지는 좀비와의 사투를 그리기 위하여 캐릭터를 활용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그 캐릭터가 야귀로 변함과 동시의 극 중 설정마저 붕괴돼버린다. 신체 일부를 절단하면 야귀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설정은 그가 야귀에게 물린 손을 잘라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야귀로 변함으로써 잃어버렸고, 지능이라고는 볼 수 없이 한순간 변이 되었던 기존 야귀들과는 다르게 그는 메인 빌런이라는 극 중 역할에 의하여 홀로 지능을 가진 유일한 야귀로 분해버린다. 처음부터 그가 지능을 가진 야귀였고, 주변 인물들을 야귀로 변이 시켰다면 어땠을까. 애초에 '이랬다면 어땠을까'류의 상상이 영화가 끝이 났다는 아쉬움이 아닌 그 완성도에서 나온 것이라면 그 영화는 미흡한 완성도에서 나오는 여백이 있음을 말하는 것과 같다.


게다가 어린 시절부터 청나라에서 나고 자랐다는 불필요한 설정은 극 중 왕자 이청이 진정한 군주로 거듭나는 성장을 방해하기도 하며, (그가 야귀를 소탕하기 위해 궁으로 몰려드는 백성들을 내려다보는 장면에서 김은숙 작가의 그 유명한 '사학루등'이 절로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백성이 나라의 근간이라는 깨달음은 백성이 곧 야귀로 변해버리는 시점에서 몹시 이질감을 나타낸다. 그러니까 영화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작품을 얼기설기 꿰어놓은 채 '억대 제작비로 구현해낸 거대한 스케일'이란 고급 포장지로 포장한 느낌이었달까. 그렇다면 킬링타임용으로도 나무랄 데 없어야 하는데, 대개 그러한 영화가 주는 청량함보다는 어딘지 모를 의문점을 선사한다. 막 재밌지도 않은데, 그렇다고 재미가 없지도 않은 애매한 인상을 남기는 것이다. 좋은 배우들과 썩 나쁘지 않은 연출임에도 불구하고 숭숭 구멍이 뚫린 극본은 영화가 가진 모든 장점들을 상쇄시킨다. 무려 2시간짜리 현빈 영상화보집을 보는 기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극 중 박 종사관이 더욱 매력 있게 다가왔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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