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서랍을 열어보세요.
분명 하나면 충분할 텐데, 가위가 서너 개, 손톱깎이가 두세 개,
심지어 비슷한 색상의 립스틱들이 마치 대기 선수처럼 줄지어 있지는 않나요?
우리는 흔히 "필요할 때 없으면 곤란하니까" 혹은
"이건 싸게 샀으니까 일단 두자"는 생각으로 같은 기능을 하는 물건을 여러 개 소유하곤 합니다.
하지만 물건이 많아질수록 우리의 시야는 분산되고
물건 관리는 버거워지며, 정작 그 물건이 절실히 필요한 순간에
그것을 찾는 시간은 점점 길어집니다.
진짜 살림의 고수는 수십 개의 도구를 창고에 쟁여둔 사람이 아니라
내 손에 착 감기는'최고의 물건 하나'의 가치를 알고
그것을 귀하게 대접하는 사람입니다.
물건의 개수가 줄어들수록
내 삶의 밀도는 오히려 높아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자주 잊고 삽니다.
중복된 물건들 사이에서 방황하지 않는 가장 명쾌한 방법은
바로 물건들의 '오디션'을 치르는 것입니다.
서랍 속 비슷한 물건들을 식탁 위에 모두 꺼내놓고 하나하나 찬찬히 살펴보세요.
그중에서 가장 상태가 좋고, 내 손에 무리를 주지 않으며, 디자인까지 내 취향에 꼭 맞는
'단 하나'의 주인공을 선발하는 과정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선택받지 못한 나머지 물건들을 '혹시 모르니까'라는 이름의
예비용으로 다시 서랍에 밀어 넣지 않는 용기입니다.
상태가 양호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법한 물건은 필요한 이웃에게 기분 좋게 나누고,
이미 제 기능을 다한 물건은 미련 없이 버려야 합니다.
이렇게 확실히 문밖으로 보내주어야만
살아남은 '최고의 물건' 하나가 주는 쾌적함을 온전히 누릴 수 있습니다.
비움은 물건을 잃는 것이 아니라, 최고의 것을 더 빛나게 만드는 작업입니다.
물건의 가짓수를 줄인다는 것은, 단순히 공간을 넓히는 행위를 넘어
내 삶의 선택지를 단순하게 정돈하는 일입니다.
주방의 조리기구부터 책상의 문구류까지, 비슷한 것들을 하나로 통합해 보세요.
텅 빈 서랍 속에서 나를 설레게 하는 단 하나의 명품 도구가 정갈하게 놓여 있는 풍경을 마주할 때
당신은 더 이상 물건에 휘둘리는 사람이 아닌 공간의 진정한 주인으로 서게 될 것입니다.
"이거 하나면 충분해"라는 단단한 확신은
당신의 일상을 이전보다 훨씬 가볍고 자유롭게 만들어 줍니다.
복잡했던 마음까지 함께 정돈되는 그 짜릿한 여백의 힘을
오늘 당신의 서랍에서부터 시작해 보시길 바랍니다.
#공간 인문학 비움과 수납의 시스템
#책 쓰는 도서관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