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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 Sol May 30. 2021

새로운 정류장

기다렸던 버스가 온다는 안내말이 들린다. 이내 ‘잠시 후 도착’이라는 사인과 함께 길 저편을 돌아오는 버스의 앞모습이 보인다. 정류장에 가득 찬 사람들은 저마다의 숫자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나 역시도 마음에 품은 숫자는 따로 있다. 나의 숫자가 가까워진다.


버스 문이 열린다. 매일 타는 똑같은 버스지만 누가 이 버스를 운전하는지, 기사의 얼굴은 모른다. 내가 원하는 목적지까지 버스가 도착하면 그만이니까. 1250원을 착실히 지불한 뒤 어디에 앉을까 고민한다. 차멀미를 하기 때문에 맨 뒷좌석만 아니라면 어디든 괜찮다. 그런데 오늘은 왜인지 버스 앞쪽 문이 열리는 자리에 앉아보고 싶다. 버스에 타는 사람들이 괜히 내 얼굴을 보지 않을까 싶어 웬만하면 피하는 자리였는데, 조금은 높이 솟아 있는 이 자리가 끌린다. 오늘 버스에 아무도 없어서일까? 한적한 버스 속은 텅 비어있어 아무 데나 앉을 수 있지만 창문이 활짝 열린 맨 앞자리에 앉아보기로 한다.


거대한 버스 앞 유리 너머로 다른 세상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잦은 비와 들쭉날쭉한 날씨를 핑계 삼아 흐린 하늘을 등한시했는데, 오늘 시야에 가득 차는 것들은 건물 수만큼이나 가득 찬 도시의 나뭇잎들이다. 사실은 나무들도 많았구나, 당연한 것을 곱씹어본다. 이 길을 돌아서면 어떤 장면이 나올지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휴대폰은 잠시 접어두고 기사의 핸들과 유리창에 시선이 왔다 갔다 한다.


몰랐던 정류장들도 눈에 들어온다. 여기서도 버스를 타는 사람들이 있구나, 또다시 당연한 것을 생각해본다. 너무도 당연해 잊고 살았던 것들은 무엇이 있었을까. 공상을 즐겨하는 편은 아니지만 오늘은 하나의 생각이 다른 생각의 꼬리를 물고 커진다. 머릿속에도 새로운 정류장이 생긴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다시  밖의 햇살에 흔들리는 나뭇잎들을 본다. 아침 햇살 치고는 뜨거운 태양빛 때문에 휴대폰 열이 잔뜩 올랐다는  느낀다.


목적지에 가까워지고 있다. 내릴 채비를 한다. 맨 앞자리에 앉았을 뿐인데 내가 직접 운전해서 목적지에 온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내일도 맨 앞자리에 앉겠다는 다짐을 하며 정해진 목적지, 익숙한 정류장에 내린다. 햇살은 여전히 뜨겁다. 오늘 할 일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며 시간을 확인한다. 아직 오늘 하루는 많이 남았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낀다. 이제 나에게 주어진 일을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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