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o Sol Aug 08. 2021

나에 대한 믿음을 스스로에게 증명하고 싶었다

Frank ocean - Pink + white

#1

Frank ocean - Pink + white


pink white


내 몸을 혹사시켜 내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했다. 한라산에 간 이유는 꽤 단순했다. 백록담에 대한 열망이 아니라, 산행의 즐거움이 아니라, 나에 대한 직접적인 믿음. 그것이 전부였다. / (2020.7월 말의 기록)


여름은 늘 지독히 덥다. 목을 태워버릴 것 같은 열기, 갑작스레 쏟아지는 소나기, 거친 습도.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는 계절이다. 더위에 삶이 고단해질 만큼 여름을 힘들게 지내는 편은 아니지만, 작년 여름은 꽤 지독했다. 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늘 들고 다니던 우산을 집에 놓고 나온 날 휘몰아치는 소나기를 만나듯 대비 없이 찾아온 역경들에 눈앞이 아득해지는 경험을 자주 했다.


“That's the way everyday goes

Every time we've no control”


그 무렵 이 노래를 다시 찾아들었던 건 우연이 아니었다.

2016년에 해당 트랙이 수록된 앨범 <blonde>를 처음 들었을 때는 이 곡을 크게 귀담아듣지 않았다. (앨범이 나왔을 때 가장 꽂혔던 트랙은 10번,  solo(Reprise)였다.) 그런데 약 5년 뒤의 늦여름은 온통 이 곡으로 채워졌다. 어떤 노래를 품는 것도 다 때가 있다는 걸 덕분에 깨달았다.


“그게 삶이 흘러가는 방식이지

우린 매 순간을 컨트롤하지 못해”


매 순간을 내 마음대로 컨트롤할 수 없다는 것. 이 당연한 문장에 깊은 위로를 받았다. 왜 내 뜻대로 일이 흘러가지 않을까, 왜 모든 세상이 나를 오해할까. ‘왜?’라는 물음으로 가득 찼던 일상이 조금 누그러진 건, 역설적이게도 ‘왜’라는 물음을 가질 수밖에 없는 삶에 대한 인정이었다. 그것을 인정하기까지는 꽤 긴 시간이 걸렸다. 내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이 세상에 던지는 물음표이듯, 나 역시도 나에게 불어닥치는 ‘왜’를 인정해야 했다. 그래야만 삶이 굴러갈 수 있었다.


“Won’t let you down when it’s all ruined”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게 망가져도 널 무너지지 않게 할게’라는 말에 옅은 희망을 가져 보았다. 모든 게 망가져도 나를 무너뜨리지 않을 힘이 내게 있다는 것. 이 곡은 허리케인 카트리나 재해 당시를 은유한 곡으로 알려져 있다. 삶이 엉망진창이 되는 재해에도 불구하고 너의, 서로의 삶을 지탱하겠다는 말. 나는 이 라인 덕분에 나에 대한 믿음을 내가 져버리지 않는 이상 무너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놓지 않을 수 있었다.


나는 그때부터 지금까지도 이 곡을 즐겨 듣는다. 유튜브 뮤직 메인에 들어가면 ‘나를 위한 추천’에 반드시 이 곡이 띄워져 있을 만큼, 잊을만하면 다시 듣는다. 노래가 시작하자마자 울리는 웅장한 소리로부터 광활한 나무들이 머릿속에 펼쳐지고 산을 힘겹게 오르던 고통마저 떠오른다. 그러다 이내 산의 정상에서 맞이했던 여러 가지 감정들이 흩어 뿌려지면 노래가 끝난다. This is life, life immortality.




매거진의 이전글 아스팔트 음표가 만들어낸 궤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