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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aela Dec 14. 2023

ISTJ, 꼼꼼하고 성실한 분류·편목자

  공공도서관에서 분류와 편목작업은 한 명의 사서가 담당한다.

  물론 10년 전만 해도 편목 담당자와 분류 담당자는 구분되어 있었다. 편목담당자가 먼저 목록을 완성하면 분류담당자는 도서에 분류기호(분류번호+저자기호+저작기호)를 부여하고 목록에 잘못 기재된 부분은 없는지 교열하는 작업까지 진행했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품질 좋은 도서목록을 제공하는 국가자료종합목록 덕분에(?) 편목에 들이는 품이 줄어들고, 목록담당자의 일을 수월해졌다. 더욱이 독자들이 서가 사이를 찬찬히 살펴보며 책을 고르기(브라우징) 보다 검색을 통한 책 찾기를 선호하게 되면서 분류담당자의 품도 줄어들었다. 섬세한 분류작업에 할애하던 시간이 줄어들면서 업무분량이 줄어들었고, 자연스럽게 편목과 분류를 담당하는 사람은 1인으로 수렴되었다.


  현재 공공도서관에서 분류와 편목의 입지는 축소된 상태다. 그러나 분류와 편목에 대한 사서들의 사랑은 여전해서 아직도 많은 사서들은 분류와 편목을 맡고 싶어 한다.

  도서관 규모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최소 10명에서 40명까지 육박하는 공공도서관에서 분류와 편목 담당자는 1~2인에 불과하다. 최소 10대 1, 최대 20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만 분류와 편목을 맡을 수 있다. 차라리 공개 오디션을 통해 각자의 장기를 어필하고 공정(?)하게 뽑으면 좋으련만... 조직의 준엄함은 늘 공정함보다 우위에 있다.


  많은 사서들이 분류와 편목 업무를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하루 종일 책을 만져볼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분류와 편목을 담당하는 사서는 책을 한 권씩 열어보면서 작업을 진행한다. 북커버, 표제지, 판권기를 차례로 살펴보고 분류, 편목에 필요한 정보들을 수집하여 목록시스템을 통해 기입한다. 이러한 작업을 하루 종일 진행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책을 만져볼 수밖에 없다. 그저 책이 좋아서 사서의 길을 택한 사람들, 이런 사람들에게 이보다 좋은 직무는 없다.


  둘째, 규칙만 지키면 크게 문제 될 게 없다.

  편목작업은 규칙에 따라 도서의 정보를 기입하는 과정이다. 그 말인즉슨 규칙만 지키면 크게 문제 될 게 없다는 이야기고,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할 일이 많지 않다는 말이다. (물론 분류작업은 선택의 문제 이긴 하지만... 분류보다 편목에 더 많은 시간이 투입되니까... 그냥 넘어가자...) 오늘의 점심메뉴 선택도 힘에 부친다는 사람들이 많은 요즘... 선택의 고통을 느낄 필요가 업무는 절대 환영이다.


  셋째, 업무량이 1년 내내 비슷하다.

  분류와 편목은 책 1권마다 개별적으로 이루어지는 작업이고 분류와 편목 담당자에게는 이 작업이 상시업무다. 그리고 분류와 편목 담당자에게는 시즌 업무라는 것이 부여되어 있지 않아 특별히 바쁜 시즌은 없다. 물론 책을 연말에 대량으로 구입한 경우(당해에 분류와 편목을 완료해야 하므로)는 예외가 되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시간에 쫓겨 야근을 해야 할 날들은 타 직무에 비해 현저히 적다.


  넷째, 관리자의 레이더망에서 벗어나 있다.

  분류와 편목작업은 상시업무로 시한을 다투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따라서 관리자의 감시망에서 살짝 벗어나 있다. 분류와 편목으로 인해 민원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담당자는 상사와 대면할 일이 많지 않다.


  여기까지만 보면 분류와 편목은 세상 맘 편한 업무인 듯하다. 그러나 모든 일엔 일장일단이 있는 법, 이렇게 세상  맘 편한 업무의 단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하루종일 책의 껍데기만 봐야 한다.

  담당자는 업무 특성상 책을 한 권씩 열어봐야 하지만 책을 읽을 시간은 없다. 분류작업을 위해 책의 목차를 보는 정도까지는 허용되지만 책을 읽을 수는 없다. 하루에 처리해야 하는 책의 양이 최소 50권인데 책을 읽는다니... 가당찮은 소리다.


  둘째, 세세한 규칙을 모두 다 지켜야 한다.

  편목규칙은 태그사용부터 띄어쓰기, 구두점의 사용법까지 정해져 있고, 이 규칙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귀찮다고 대충 했다가는 해당 도서가 데이터베이스에서 검색되지 않는 사태가 벌어진다. 돈 들여 준비한 책을 유령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면 융통성을 발휘해서는 안된다.


  셋째, 1년 내내 동일한 업무를 반복해야 한다.

  책을 들어 펼쳐보고, 도서 정보를 타이핑하고, 내려놓는 작업! 이 작업을 수도 없이 반복해야 한다. 같은 근육을 매일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근골격계 질환에 취약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깨통증으로 인해 고통스럽다는 말은 하면 안 된다. 그런 말을 했다간… 다음번 인사발령 때 경쟁자들에게 자리를 빼앗길 수도 있다.


  넷째, 관리자의 관심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

  상시업무만 하는 분류와 편목 담당자는 관리자의  관심에서도 칭찬에서도 멀어져 있다. 분류와 편목업무를 최선을 다해 수행했다 하더라도 관리자는 그 사실을 파악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열심히 했는데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직무... 그러다 이용자의 민원이 등장하면 질책이 쏟아지는 그것이 분류와 편목이다. 즉, 잘못하면 질책이, 잘하면 무관심이 돌아오는 업무다.


  그럼 분류와 편목은 어떤 사람들에게 딱 맞는 업무일까?


  첫째, 내향형 인간

  하루종일  책껍데기만 보며 일해도 좋은 사람, 모든 사람과 하루 종일 대화하지 않는 것이 더 편안한 사람에게 분류·편목 업무는 찰떡이다. 분류·편목 담당자가 가장 빈번하게 소통하는 사람은 수서담당자인데, 그것마저도 도서의 구입 시기와 규모를 논의하는 것에 불과한 수준이다. 동료와의 소통 부재로 인해 느낄 수도 있는 극도의 소외감도 즐길 수 있는 사람이라면 더할 나위 없다.

 

  둘째, 세심한 관찰능력을 갖춘 섬세한 자

  분류·편목 담당자는 하루종일 책에 인쇄되어 있는 정보를 찾아 목록규칙에 따라 기입해야 하므로 섬세하고 꼼꼼해야 한다. 하루 종일 반복적인 일을 계속해야 하므로 끈기도 있어야 하며,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는 성향이라면 더욱 좋다.


  셋째, 원칙을 잘 지키고 정리정돈에 집착하는 자

  짜인 틀 안에서 원칙을 잘 지키는 사람이어야 한다. 목록규칙, 분류원칙을 절대적으로 지켜야 하며, 정리정돈에 집착해야 한다. 데이터베이스에서 휘뚜루마뚜루 작성된 목록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야 하며 구두점이 딱 맞게 기입된 목록을 보고 희열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넷째, 스스로와의 계획을 잘 지키는 사람

  분류·편목은 단독업무다. 따라서 본인이 정해 놓은 업무 스케줄을 지켜서 이행해야 한다. 스스로 세운 계획을 이행하지 못했을 경우 당연히 뒷감당도 본인 혼자 감당해야 한다. 사서로 일하는 20년간 나는 분류·편목 담당자가 본인 업무를 감당하지 못해서 동료에게 SOS를 요청하는 경우를 본 적은 없다. 아주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분류·편목을 도와달라고 하는 담당자가 있다면? 두고두고 인구에 회자될 일이다.


  그럼, 지금까지 서술한 분류·편목 업무 분석 결과와 MBTI 성격유형의 구분요소들을 매칭한 결과를 살펴보자.



ISTJ: 청렴결백한 논리주의자, 현실주의자



  도서관 사서 중에서도 가장 흔하고, 한국인 중에서도 가장 많다는 유형... ISTJ

  수많은 ISTJ 사서들에게 딱 맞는 데다, 직무 스트레스도 최하인 이 업무... 최고라고 생각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일까...

  매년 인사철이 되면 팝콘을 꺼내게 된다. 이 엄청난 경쟁률을 뚫는 자는 과연 누구일까... 궁금해하면서...


<분류·편목 업무의 부문별 지수>

사서지수 ★★★★★

민원접점지수 ☆☆☆☆☆

야근유발지수 ☆☆☆☆☆

직무스트레스지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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