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머글이 생각하는 사서
'사서(司書)' 하면 떠오르는 형용사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정적이다, 조용하다, 지적이다, 섬세하다…
현직 사서인 내가 들어온 '사서의 이미지'는 대략 저 정도이다. 대한민국에서 도서관이란 공간은 아직도 조용히 개인학습을 하거나 또 조용히 책을 읽는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일까.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서 또한 비슷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그래서인지 드라마 혹은 영화에서 비치는 사서의 이미지 또한 대략 비슷하다. '참'한 여성을 표현하기 위한 직업으로 사서가 딱인가 보다.
사서를 직업으로 하는 여주인공이 등장한 드라마 중 흥행에 성공한 작품으로 "봄밤"이라는 드라마가 있다. 정해인, 한지민 주연의 MBC 드라마였는데, 내 직업이 사서여서 그랬는지 본방 사수하면서 열심히 봤던 기억이 있다.
그동안 사서라는 직업이 등장했던 드라마, 영화에 비해 "봄밤"이라는 드라마는 비교적 현실을 제대로 반영한 편이라고 생각했다.
이 드라마에서는 사서가 하는 일을 단순히 책을 꽂거나 도서를 대출, 반납해 주는 일로만 묘사하지 않았다. 글쓰기 행사를 기획하기도 하고,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그것이 비록 일회용 접시에 낱개포장된 과자를 놓는 일일지라도...)을 보여주기도 했다. 업무가 그다지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다. 누구나 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좋아' 보인다.
클립보드에 끼워진 서류를 보며 북트럭에 있는 책을 서가에 꽂는 장면도 있었다. 솔직히 이 장면은 무슨 일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장면이기는 했다.
책을 꽂는데 왜 서류를 확인하는 걸까...
허준이 침을 빼고 굳이 확인하는 장면이랑 뭐 비슷한 의미인가.
드라마를 방영할 당시, 본방사수를 못한 날에는 포털사이트에서 관련 기사를 찾아보곤 했었다. 그리고 당연스럽게 댓글창을 훑어보았다. 그러던 중 충격적인 댓글을 보게 되었다.
(자세히 기억나진 않지만 대략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댓글)
“한지민 옷이 왜 저럼? 옷 색이 너무 칙칙하고 큰데?"
->(대댓글)
“우리 동네 도서관 사서들 다 저렇게 입고 다니던데"
뭔가 뜨끔한 기분을 느끼며, 언니에게 장난 삼아 말했다. 말도 안 되는 댓글을 읽었다고... 무슨 사서가 헐렁한 옷에 무채색 옷만 입는 줄 아냐고... 그런데 언니의 답변이 뒤통수를 때렸다.
"너도 그래"
그랬다! 나도 사서였고, 무채색 인간이었던 것이다. 대중의 눈은 정확했고, 나는 나를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이쯤 해서 뭔가 익숙한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가? 도서관에서 일하는 정적이고, 조용한 무채색 사람들... MBTI로 굳이 구분하자면 확신의 I(Introversion)들...
느낌적인 느낌으로 '사서'라는 작업은 I들에게 적합해 보인다. 정적이며 조용하고 튀기 싫어하며 헐렁하고 무채색인 옷을 입는 사람들. '
‘사서' 하면 떠오르는 형용사에 I 성향의 사람을 대입해 보면 위화감이 거의 없다.
이건가보다. 확신의 I들에게 도서관이 기회의 땅으로 여겨지는 이유. '사서' 일이 내향적인 성향에 딱 맞을 것 같아 보이는 이유.
그때문이다... 공공도서관 사서 중 외향적인 사람을 찾기 쉽지 않은 건.
비슷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 모여 고난이도의 업무가 아닌 적당한 수준의 업무를 하는 것으로 보이니, 이 직업... 참으로 좋아 보인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