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간에 대한 애착이 크다. 내 공간에 대한 필요성을 처음 느낀 건 학창 시절 항상 둘째 언니와 방을 같이 써야 한다는 게 불편하게 느껴지면서부터였다.
세 딸 중 막내로 둘째 언니와 나는 큰언니가 시집을 가기 전까지 항상 같은 방을 썼다.
고등학교 3학년에 진학할 때쯤 처음 내 방을 갖게 되었는데, 침대와 책상이 겨우 들어갈 정도로 좁은 방이었지만 나는 그 공간이 너무 좋았다. 잠버릇이 험한 언니와 함께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일이 없는 것도, 방해받지 않는 공간이 있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유년기 가정형편이 좋지 않아 결혼하기 전까지 열일곱 번의 이사를 한 이력이 있어 이사하는 일이 얼마나 번거로운지, 정들만하면 떠나야 하는 2년의 계약이 얼마나 야속한 일인지 일찍이 깨달았다. 그래서 10대부터 나의 꿈은 직업이 아닌 집이었다.
20대 초반 고정수입이 생긴 이후 가장 먼저 시작한 게 '주택청약통장'일만큼 집에 대한 내 꿈은 진심이었다. 당시120만 원의 월급으로 20대에 내 집을 마련하는 일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지만, 상관없었다. 사실 그게 아니라면 달리 방법을 알지 못했다.
그로부터 한참 후에야 내 집을 갖게 되었다. 예상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처음 집을 갖게 된 날은 비로소 첫 번째 꿈을 이룬 날이다. 비록 은행에 70% 넘는 대출을 받아야 했지만 더 이상 이사를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저지를만했다.
감사하게도 당시에는 은행 금리가 2%대로 매우 저렴한 시기였다.
우리 부부에게 원리금이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었지만 돌이켜보니 그때가 아니었다면 나는 아직 꿈을 이루지 못했을 것만 같다.
집을 사게 된 덕에 우리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들어간 기회비용을 충당하느라 더 열심히 달렸다.
왕복 3시간의 출퇴근 시간을 견뎌야 했던 직장생활도, 지금의 자영업도 집이 아니었다면 견뎌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다행히 우리는 집값이 오르기 전 저렴한 금리에 집을 사 집값이 오른 후 차액이 대출금을 갚고도 한참 남는 상황이 되었다. 감사한 첫 번째 꿈의 보답이다.
집을 갖게 된 이후로 한동안은 공간에 대한 욕구가 사라진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최근에는 내가 원하는 집을 짓고 싶다는 꿈을 꾼다. 수도권에 있는 집에서는 평일을 보내고 주말에 지낼 수 있는 집을 짓고 싶다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얼마 전 남편과 반려견 보리와 셋이 강릉여행을 다녀오는 길 지명도 잘 알지 못하는 어느 강변에 있는 땅을 보고 차를 세웠다.
"오빠, 우리 저련 땅 살까?"
"그래. 저기에다가 예쁜 집 하나 지으면 좋겠네. 마당도 넓게"
"얼마나 있으면 저런 땅에다가 집을 지을 수 있지?"
"글쎄. 한 30억 들려나?"
"많이 드는구나 "
그 어떤 것도 구체화되지 않은 꿈에 상상을 더해 부루마블 게임이라도 하듯 집을 짓는 그림을 그려나간다.
"집은 2층으로 지을 거야. 2층에는 통유리로 만들고 테라스도 넓게 있어. 그리고 마당은 보리가 뛰어놀 수 있도록 넓어야 해. 그리고 흔들의자도 놓자. 멋있는 소나무도 심어야겠지?"
"1층에는 자기 작업실이 넓게 있어야지."
이미 머릿속으로 널찍한 저택 하나를 뚝딱 만들고 정원 가꾸기에도 여념이 없는 우리 부부다.
나는 '꿈꾸는 다락방'이라는 책에서 말하는 비비드드림을 믿는다.
생생하게 상상하는 것만큼 더 확실하게 이루어내는 방법은 없음으로. 집을 사기 전 밤낮없이 아파트 단지를 찾았던 그 마음으로 나는 새로운 집을 짓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