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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몬 샤베트 Jul 23. 2020

[반도]

[부산행]을 전면 부정하는 서사

    [반도]의 오프닝 시퀀스는 같은 세계관의 전작인 [부산행]의 시퀀스를 떠올리게 하면서도 전면적으로 [부산행]의 요소들을 부정한다. 열차의 밀폐된 공간은 탈출선의 밀폐된 객실로 대체되며,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좀비 장르의 쫄깃한 맛을 다시금 재현한다. 

    그러나 이 둘의 결정적 차이는 [반도]의 감염상황이 탈출선 객실 단 한 공간에서 종결된다는 점이다. 이는 [반도]가 지향하는 방향이 [부산행]의 장르적 재미와 다름을 선언하는 것처럼 보인다. 같은 맥락에서, [반도]의 배 시퀀스와 교차편집 되는 미국의 TV쇼는 [부산행]의 종착점이자 희망이었던 부산 또한 안전지대가 아니었음을 이야기하며, [부산행]의 결말을 부정하게 된다. 이는 전작의 주인공이었던 석우가 보여준 (억지스러운) 분유씬과 부성애를 부정하는 것은 물론, 석우의 딸이었던 수안이 터널에서 부른 알로아오에를 공허한 메아리로 흘러가게 만든다.


    연상호 감독은 마치 전작에서 할 수 없었던 것들 것 하기 위해 같은 세계관의 [반도]를 만들었다는 것 마냥 [반도]는 [부산행]과 여러 부분에서 대척점에 놓여있다. [부산행]의 주 무대였던 KTX 내부의 한정적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며 좀비 장르의 재미를 챙겼던 것과는 반대로 [반도]는 아포칼립스 서울의 활짝 열린 공간을 만끽하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에서 영감을 받았음이 분명한) 긴 자동차액션과 흡사 [월드워Z]나 [나는 전설이다]의 후반 시퀀스를 연상시키는 액션들로 채워 넣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반도]와 [부산행]의 결정적인 대척점은 [부산행]의 액션의 주역인 마동석이 [반도]의 이레로 대체된 점이다. 근육질, 마초, 부성애로 대표되는 거친 성인 남성을 대변하는 마동석의  캐릭터가 주체적(더 나은 표현이 생각이 안 난다)이고 非성인인 여성을 대표하는 이레로 대체됐다는 것은 [반도]가 [부산행]에서 관객에게 선보이고 싶었던 한반도의 주역이 이동했음을 의미하며, 영화의 전개를 위해 희생되는 기존의 흔한 여성 캐릭터 설정이 아닌 영화의 데우스마키나 역할을 쥐어 준 것은 분명 감독(혹은 각본가)가 영화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한국 사회의 실패를 수습할 주인공이 누가 되어야 하는지를 내포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부산행]의 공유가 맡은 주인공 역할을 이어받는 [반도]의 강동원(이 연기한 캐릭터)라 할 수 있겠다. 얼핏 보면 비슷한 맥락에서 캐스팅된 것처럼 보이는 두 배우의 캐릭터는  [부산행]의 평범한 한국 사회의 남성 가장으로 대변되는 주인공이 만약 결말에서 자신의 딸과 임산부(로 대표되는 가정)을 구출해내지 못했다는 상황을 상상하며 [반도]의 주인공 캐릭터를 설정한 것처럼 보인다. [부산행]의 한정된 공간을 마음껏 확장시킨 [반도]의 세계관처럼 [반도]의 주인공 또한 전작의 주인공의 캐릭터성을 확장했다 할 수 있겠다.(정확히는 확장한 뒤 강동원과 김도윤 배우가 맡은 두 남성으로 분할했다고 생각하지만) 

    ‘가족’으로 대표되는 소중한 것을 이미 잃은 채 영화에 던져진 강동원 배우가 연기하는 정석은 영화의 주인공이자 텐트폴 영화가 요구하는 잘생기고 훤칠하면서 일정 수준의 액션을 수월하게 수행한다. 아니, 수행하는 것’처럼’ 보인다. 착실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상업액션영화의 주인공 역할을 수행하려던 정석의 서사는 흔한 주인공 서사의 ‘위기’ 단계에서 준이와 유진 2명의 여자아이들에게 ‘구원’받으며 양상이 뒤틀리게 된다.


    [반도]의 카메라는 정석이 두 여자아이에게 구원받는 순간부터 정석이 자신의 ‘가정’을 지키기 위해 버렸던 민정과 민정의 딸로 포커스가 옮겨간다. 이 지점이 [반도]를 접한 관객들이 낯설게 느낀 부분이라 생각하는데, 한국 관객이 한국 블록버스터 액션 영화에서 응당 기대하는 강동원이라는 배우의 캐스팅에 부합하지 않는 전개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영화는 민정이 진작에 정석(과 정석처럼 자신의 가족을 버린 다른 사람들)에 대한 원망을 버렸음을 강조하고, 단지 아포칼립스 서울에서 자신의 가족을 탈출시킬 수 있다는 목표를 향해 질주하는 민정의 서사와 이를 가능케 하는 정이의 초인적인 면모에 집중해버린다. 

    사이사이 등장하는 631부대 내부의 극단적인 남성들의 지옥도는 민정의 행보에 탄력을 부여할 뿐이다. 어쩌면 [부산행]에서 그린 남성에 의한 구원이 [반도]의 정석의 실패부터 631부대의 타락한(혹은 본성이었을지도 모를) 모습까지 여러 방식으로 반박 당하는 것은 한국 사회 남성의 인격 구성 실패를 이야기하고 싶었을 수도 있겠다.(지극히 한국적인 남성성을 대표하는 군대문화의 여러 군상이 대부분 담긴 631 부대의 구성을 보면 더더욱 설득력이 생긴다.) 


    이 과정을 거쳐 민정과 정석은 서로 소위 ‘사망 플래그’를 끝도 없이 뿌리고 다니는데, 결국 이 희생의 주인공이자 영웅서사의 주인이 민정으로 선택된 것은 지금까지 서술한 해석에 정점을 찍는다고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부산행]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한 이 희생의 서사마저 끝내 부정해버리며 ‘생존’한 사회적 약자들의 해방을 담아낸 [반도]의 각본은 결국 [반도]가 [부산행]에서 각본과 감독이 찾아낸 한국 사회의 희망이 헛된 것이며 기존 한국 영화의 남성 가장에 의해 지켜진 한국적인 가정 헤게모니가 아닌 새로운 주체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었다고 본다.


    [반도]의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혹자는 [분노의 질주] 시리즈가 떠오른다고 하는) 질주하는 이미지를 뒷받침하는 직선적인 서사 구조는 [부산행]에서 관객들의 호응을 이끈 군더더기 없는 직선적인 서사의 쾌감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구태여 여러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하나의 일관된 목표를 향해 질주하는 인물들과 그들의 액션은 [부산행]의 KTX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벗어난 넓은 아포칼립스 서울의 도로와 이를 장식하는 폐허와 좀비의 파도를 더해 여름 블록버스터 액션 영화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담아낸다. 오히려 영화의 위치를 생각하면 세계관의 확장이 제대로 먹혀 들었다 느낄 정도로 액션 시퀀스의 쾌감은 상당하며, 수많은 100억 이상의 자본이 투자된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시도들을 통해 일궈낸 기술적인 성취를 엿볼 수 있다. 

    단지 이를 수행하는 인물이 이레 배우가 연기한 여성 청소년인 정이라는 점이 기존 남성 주인공 히어로에 찌든 한국 관객에게 어색할 뿐이겠지만, 사실 이 또한 전의 [마녀]를 통해 활로가 열린 부분이며, 오히려 [마녀]의 주인공, 혹은 좀 더 과거로 가자면 [소녀 K]나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에서 그려낸 ‘미소녀 액션’이라는 굴레마저 벗어난 이레 배우의 정이의 캐릭터는 한국 영화의 발전이라 할 수 있다.


    요약하자면 [반도]의 제작진은 [부산행]의 모든 서사가 담아낸 한국 사회의 인간상과 그 사회에 필요했던 구원의 서사가 사실은 실패한 서사이며, 이를 같은 세계관의 [반도]를 통해 부정하며 새로운 답안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비록 오프닝 시퀀스와 엔딩의 5분간 펼쳐지는 지극히도 한국적인 진한 신파의 한계가 존재함에도, 영화의 구원이 사회적 약자(여성, 아이, 노인, 난민, 환자)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은 [반도]가 추구하는 방향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여담)

1. 사실 [반도]의 구교환이 연기한 서 대위가 '대위' 직급인 부분부터 그의 심복이 '이병'인 것도 이야기할 거리가 된다고 생각하지만 이거까지 쓰면 너무 투머치토커 같아서 생략했다. 김민재 배우가 연기한 지극히 한국적인 악역이 황 '중사'인 것도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귀찮기도 했고. 사실 631부대의 구성이 너무 한국 군대 문화의 투사체 그 자체라 이들이야 말로 한국 남성 문화의 실패를 집약한 집단으로 느껴졌다만 본문에선 생략.

2. 이레 배우님 영화 보는 내내 어디선가 본 얼굴인데 누군진 모르겠는데 아무튼 너무 존잘이라 감탄하면서 보다가 엔딩크레딧 보고 머리가 띵

3. 본 글은 연상호 감독의 의도와 전혀 다른 해석일 수 있습니다.(가능성 매우 높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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