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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몬 샤베트 Jul 23. 2020

[도서관의 대마법사]

현 시점에 갑자기 등장한 만화계의 이단아적인 만화


    한동안 한미일을 중심으로 한 전 세계의 소위 ‘오타쿠’들은 하나의 만화로 인해 들끓었다. 기존의 소년 만화 속 클리셰를 깨는 동시에 과할 정도로 빠른 템포의 스토리 전개, 그리고 원작의 부족한 작화를 메우는 ufotable의 고퀄리티 애니화로 인한 홍보효과까지 모든 것들이 맞물린 초대형 히트작, 바로 [귀멸의 칼날]이다. [블리치]의 막장스러운 후반부 전개로 인한 갑작스러운 완결, 혹은 [나루토]의 완결 이후 만화계는 소년만화의 굳건했던 인기를 (특히 인기 라이트노벨 원작인) 이세계 전생/환생 판타지물에게 자리를 내줘야만 했다.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나 [어떤 마법사의 금서목록], [작안의 샤나]부터 위협을 받던 자리는 인기 소년만화의 몰락 이후 [소드아트온라인], [Re: 제로부터 시작하는 이세계 생활]등에게 오타쿠들의 마음을 빼앗겼고, 이후 등장한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블랙 클로버] 등의 만화가 소년만화의 계보를 이으려 노력했지만 전임자의 자리를 완전히 메우진 못했다. 가끔은 [원펀맨] 같은 라이트노벨의 먼치킨적인 요소를 차용하면서도 소년만화의 열혈 속성을 가미한(물론 무라타 유스케의 혀를 내두를 정도의 작화력이 가장 큰 인기 요소였겠지만) 변종도 등장했지만, 만화의 인기는 예전만 하지 않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 와중에 갑작스레 등장한 [도서관의 대마법사]는 제목부터 시대착오적인 만화라 할 수 있겠다. 제목부터 주류에 벗어난 ‘도서관’이 메인 테마다. 17년 11월부터 월간 연재를 시작한 이 만화는 ‘도서관’을 중심으로, ‘도서관 사서’가 세계관 속 권력을 쥔 존재이며 ‘책’의 힘을 설파한다. 기존의 인쇄된 서적들마저 e북으로 변환하여 작은 화면 속에서 읽는 현 시점에, 도서관과 서적을 핵심 소재로 사용한 만화라니, 얼마나 시대착오적인 만화인가 싶다. 심지어 그 ‘사서’ 직책은 [바이올렛 에버가든]의 ‘자동수기인형’(대필기사의 작품 내 표현인데, 이 직업명에 대한 불만은 본 글에서는 생략한다) 마냥 여성중심의 전문직으로 묘사된다. 결정적으로, [도서관의 대마법사]의 공간적 배경은 중앙아시아를 모티브로 한 게 분명한데, 이런 만화가 [신부 이야기] 이후로 얼마만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심지어 주인공의 행보는 기존 소년만화의 성장서사를 너무나 정직하게 따른다. 도대체 요즘 같은 시기에 이정도로 이단아적인 만화가 어떻게 튀어나온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로, [도서관의 대마법사]는 이질적이면서도 흥미를 이끄는 작품이다.


    [도서관의 대마법사]는 ‘책’과 그 속에 담긴 이야기, 그리고 지식의 힘을 중심적으로 권력관계를 구상해 나가는 작품이다. 중세시대와 중앙아시아를 섞어 놓은 어딘가 즈음을 배경으로 하는 만큼, 인쇄 방식에 따른 서적의 가치변화를 다루는 것은 물론 ‘사해문서’, ‘마야 달력’은 물론 ‘구텐베르크 성경’, ‘공산당 선언’까지 시대를 아우르는 여러 주요 문서들을 모티브로 한 만화 속 ‘7대 고대발전’은 이러한 만화 속 ‘책’의 힘을 든든하게 뒷받침한다 할 수 있겠다. 그렇게 ‘책’이 담고 있는 ‘지식’의 힘은 판타지적인 설정인 ‘마법’과도 연결이 되어 세계관을 자연스럽게 중세 판타지의 장르로 이끈다. 물론 ‘책’과 ‘지식’의 힘을 설파하는 작품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오히려 많다면 많지만) [도서관의 대마법사]의 설득은 조금 더 깊이 들어간다.


    끊임없이 사회적 약자(소수민족 중심의)와 이방인들을 ‘지식’이 가져다 주는 권력과 엮는 중심 스토리라인을 통해 기존 문화가 어떻게 대중화되어 시민을 ‘지식인’으로 탈바꿈 시키려 노력했으며 이것이 민주사회로, 더 나아가 다인종/다민족 공동체의 형성으로 이어졌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서적의 대중화가 시민혁명/산업혁명을 거쳐 당시 대중의 지식 수준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생각할 때 이는 더욱 의미를 가지게 된다. 또한 작중 등장하는 수많은 (노골적인)인종차별의 메타포와 빈부격차에 따른 지식에 대한 접근성 문제, 성차별 문제 등은 지금까지도 유효한 메시지이며, 심지어 이런 문제들을 별개의 문제가 아닌 교차된 문제로 인식하고 다루는 본 만화는 판타지 장르의 특징 중 하나인 다양한 종족의 대립구도와 맞물려 흥미로운 갈등관계를 형성한다. 독자들은 이러한 갈등관계를 어떤 식으로 해소해 나가는지 그 과정을 소년만화의 영웅서사를 따라가며 자연스럽게 지켜보고 또 그 방식의 정당성을 끊임없이 고민하는 주인공의 고뇌에 공감하게 된다.


    주인공의 종족이 흔한 엘프/백인 금발의 형상을 하고 있으면서도 노골적인 차별의 대상이 되는 것은 분명 이런 고민의 결과일 것이다. 흔한 판타지 장르의 구도를 깨는(특히나 금발 엘프 모에화가 극단적으로 양산되는 지금 시점에서) 종족 간 대립 구도는 노골적인(이를 테면 눈이 찢어진 것을 가리키는 흔하디 흔한 동양인에 대한 혐오표현 같은) 인종차별 메타포와 매우 잘 어울린다.(심지어 그 혐오 대상이 된 종족의 모티브가 중국이나 일본, 한국이 아닌 소수민족인 티벳인 것은 더더욱 흥미로운 지점이다.) 현실의 흔한 사회적 문제의 구도를 어느 정도 뒤집는 방식은 가깝게는 메갈/워마드의 미러링과도 맥락을 같이 하며(그 방식의 정당성과는 별개로), 이슬람 교도에 대한 현 사회의 편견을 역전한(당연하게도 중앙아시아 쪽이 중심 무대이니 그 쪽 문화가 지배적이도록 했겠지만) 만화 속 구도는 최근 수많은 대중문화 매체들 사이에서도 유의미한 시도라 할 수 있다.


    이런 고민 외에도 독자들은 서점과 도서관의 경쟁/공생관계를 다룬 짧은 에피소드에서 작금의 서점/도서관/신문과 온라인서점/e북/온라인뉴스의 관계를 고찰하게 된다. 서점의 매출이 도서관의 존재와 마냥 대립하는 것이 아닌, 독서의 습관화와 연결된다고 주장하는 이 에피소드를 통해 우리는 현 시점에서 온라인화 된 활자의 세계가 과연 종이에 인쇄된 서적과 공생이 가능할까(특히나 지극히도 고전적인 만화기법을 사용하며 인쇄된 서적을 소재로 한 이 만화가 e북으로도 나와있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맞물려) 라는 질문을 품게 된다.


독자들은 이 만화를 통해 인쇄 기술의 발전과 맞물려 지식이 지닌 가치와 권력관계가 변하게 된 역사적 맥락처럼, 현재의 온라인 속 활자에도 그런 힘이 있고 이들 만이 해낼 수 있는 역할이 있으며, 동시에 기존에 생산되어왔던 서책들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고민하게 된다. 석판에 기록된 문서부터 목판인쇄까지 폭 넓은 기록물을 동등하게 다루는 세계관이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다.(그렇기에 문서의 보존과 복원 작업에 큰 비중을 두는 ‘능력 있는’ 사서의 비중을 크게 다루는 것은 아마도 당연할 수순일 것이다.)


    다만 여성 중심의 전문직을 다루면서도 능력 있는 여성의 사회진출 문제를 끝끝내 해결하지 못했던(해결은 커녕 수동적인 직책명과 능동적인 행동의 괴리를 좁히지도 못하고 되려 여성들을 모에화하는데 급급했던) [바이올렛 에버가든]의 패착처럼, [도서관의 대마법사]가 분명 지식인 계층에 포함되는 여성 ‘사서’들의 욕망을 어떤 식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을지는 걱정되는 부분이다.(제아무리 ‘책’을 중심으로 한 권력관계를 한다지만, 분명히 작중에서도 ‘지식’ 있는 자들의 직종은 여럿이며 이 직종에 대한 성차별이 존재한다고 묘사되기에) 특히나 주요 인물 중 하나이자 가장 우수한 인물로 묘사된 아야 군조가 작중 내비친 욕망의 억제(아마 대표 사례로 다룬 것이 분명한)가 어떤 식으로 해결될 지는 이 걱정이 기우일지 현실이 될지 판가름할 요소가 될 것이다. 여기에 조금만 선을 넘으면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의 평가를 혼자서 다 깎아 먹는 미네타 같은 캐릭터 될 수 있는 스모모 카비시마흐의 존재도 불안요소지만, 작중 (거의 샹크스 급의) 주인공의 성장 근거를 제시한 세드나의 캐릭터(작가 공인 성별 미상)를 보면 좀 지나친 걱정일 수도 있겠다 싶다. 작중 묘사된 '사서' 직종이 출산으로 인한 경력 단절과 무관한 직종이라는 묘사가 종종 나오기도 했고 말이다. 어쨌거나 기존의 소년 만화와 비교했을 때 [도서관의 대마법사] 속 주요인물들 간의 성별관계와 세계관의 성차별을 다루는 진지한 묘사가 지니는 차별성을 생각할 때, 작가가 그저 현재까지의 고찰을 끝까지 유지하며 좋은 결말을 내길 바랄 뿐이다.


    현 만화계의 이단아라고 할 수 있을 [도서관의 대마법사]는 시대착오적임에도 시의적이고 매력적이다. 보는 누구라도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을 수려한 작화부터, 요근래 정말 보기 힘든 정직한 소년만화 장르의 (그럼에도 수긍이 가는)주인공의 성장서사, 그러면서도 클리셰적인 소년만화 대사를 스스로 인지한 듯한 본 작품 속 인물들의 언행에서 찾는 소소한 재미, 혹자는 [강철의 연금술사]를 언급하게 되는 진지하면서도 탄탄하고 매력적인 세계관과 스토리, 그리고 앞서 이야기한 시대착오적인 요소들이 역설적으로 시의성을 지니며 현 시점에 고민해볼 법한 질문을 던져주며, [도서관의 대마법사]를 그저 그런 판타지 만화로 지나치기엔 아까운 작품으로 만든다. (추가로 현재 연재 속도에 크게 뒤쳐지지 않은 정발 속도도 큰 매력포인트라 할 수 있겠다)




여담)

- 작화가 진짜 손에 꼽을 정도로 아름답다. 굳이 강조는 안 했지만 이것 만으로도 볼 가치가 있는 만화다.

- 어쩌면 한국 웹툰 중 [푸른사막 아아루]와 비교하는 재미가 있을 거란 생각도 든다.

- 다만 ‘책’과 ‘지식’을 다룬 만화다 보니 대사의 분량이 좀 많지만…. [데스 노트]나 [명탐정 코난]도 인기 있었는데 뭐 이 정도야.

- 이 글을 쓴 시점에 아직 스토리의 1장을 겨우 넘겼음에도 이 정도로 할 말이 많은데 나중에 어떻게 스토리를 풀어나갈지 궁금할 따름.

-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금 주류 일본 대중문화 흐름에 어떻게 이런 만화가 튀어나왔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이윽고 네가 된다]는 그래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갔었는데 [도서관의 대마법사]는 진짜 별종이라는 생각 밖엔 안 들고.

- 이렇게 장황한 글을 써놓고 만화 보라고 권유하는 글을 누가 읽을까나….?

- 작중 등장인물이 기록한 이야기라 설정한 본 작품의 저자가 현실에서도 작중 인물로 등록된 것마저도 이단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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