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단상 - 마무리(Closer)에 대하여 (제3부)

아픔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딛고 일어서는 것이다.

by Equinox

9.


올해 KBO에서 돌풍의 주역이라면, 단연 한화 이글스를 꼽을 수 있다. 만년 하위권이었던 팀이 정규리그 우승을 가시권에 두었고, 심지어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했으니 ‘마리한화’를 비롯해 각종 밈으로 고통(?)받던 팬들 입장에서는 준우승도 행복한 결과라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일어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은 인간의 심리인데, 어찌 준우승에 만족할 것인가. 한화 팬들은 준우승의 원흉(?)을 찾아 십자가에 걸고 싶은 심정인 듯 하다.


이럴 때 가장 쉬운 희생양이 바로 마무리 투수이다. 팀이 이기는 경기의 마지막 이닝, 이기면서 문을 닫아야만 하는 압박감. 그리고, 단 한번의 실수로 패배의 멍에를 써야 하는 마무리 투수의 숙명. 어쩌면 토니 라루사 감독이, 욕받이 무녀로 쓰기 위해 1이닝 전문 마무리 시스템을 창안하지 않았나 싶은 억측(?)마저 가능할 정도이다.


마침 한화의 마무리는 시즌 후반부터 난파선의 외돛처럼 흔들리는 김서현이었다. 가을야구에서 그가 마운드에 등장하면 한화팬들은 머리를 싸매고 절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팬들의 믿음(?)처럼 그는 침몰했다.


사실 그를 변호하려면 못할 것 없다. 한화가 가을야구를, 그것도 정규시즌 2위의 기록으로 진출하는데, 그의 공로를 외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99번을 잘해도, 1번의 실수가 더 크게 각인되는 마무리 투수의 숙명이기에, 그것도 가을야구에서 추풍낙엽처럼 스러져간 마무리 투수는 십자가에 매달려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김서현은 덕아웃에서 눈물을 보인다.


남자는 눈물을 보이면 안된다는 구시대적 낭만을 말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투수는 그래서는 안된다. 특히 마무리 투수는 더더욱 그럴 수 없다.


마이너리그에서 엉망으로 두들겨 맞고 강판당한 투수에게 주문하는 것이 한 가지 있다. 덕아웃을 두들겨 부술 때는 던지는 팔이 아닌 반대쪽 팔을 이용하라는 것이다. 조신하게 덕아웃에 들어와 찌그러져 있으라는 주문이 아니라, 분풀이를 마음껏 하되, 적어도 부상 위험이 있는 던지는 팔로는 하지 말라는 말이다. 얻어맞는 투수는 있어도 찌그러지는 투수는 있어서는 안된다는 역설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도니 무어의 사례도 있다. 그래서 상당수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선수들, 특히 마무리 투수들을 상대로 정신과 심리상담 체계를 운영하기도 한다. 언제나 마이웨이적 마인드셋을 갖춘 사고뭉치 마무리 투수들을 다독이기 보다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찌그러지지 않는 강철심장을 갖게 하기 위함이리라.


지금 그에게 필요한 말은 그 어떤 비난도, 위로도 아니다. 밥 브렌리가 김병현에게 계속 외친 그 말.


“Keep your head up!”


10.


마이웨이를 외치며 마운드 위에서 상대 타자들을 실컷 농락했던 2002년의 김병현은, 거짓말처럼 양키 스타디움 원정경기에 나선다. 지금은 인터리그가 상시 열리지만, 당시는 AL동부의 양키스와 NL서부의 디백스는 월드시리즈가 아니라면 거의 만날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가을의 아픔을 설욕할 기회가 곧바로 주어진 것이다.


김병현은 여느 경기에서처럼 아주 손쉽게 마무리를 했다. 그리고 승리를 축하하며 1루수가 건네준 공을 받았다. 그리고….


https://youtu.be/o171F_1AXtk?si=REP4f0h10APp9nkU


그는 그 공을 양키스의 영구결번들이 전시되어 있는 모뉴먼트 파크를 향해 던져버렸다. 최절정의 기량으로 선수생활의 정점을 찍고 있던 그에게도 가을의 기억은 잊을 수 없는 것이었으리라.


누가 그러던가. 아픔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


언젠가 김서현이 한국시리즈 우승을 결정짓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 때, 그가 저 멀리 공을 던져버리는 장면을 그려본다.


‘이깟 공놀이를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은 없어!’하는 거만한 웃음을 지으면서 말이다.




p.s. “김서현을 살려야해.”라며 비통함으로 필자를 닥달했던, 전주의 한화팬 한 분에게 이 글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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