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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성인 Mar 24. 2016

둘째날. 과식

2016년 2월 21일. 빈 - 미술사 박물관, 저녁식사

둘째날

2016년 2월 21일 일요일


시간이 없다. 이번 여행은 안 그러기로 했는데 또 마찬가지다. 앙커(지하철 역에 있는 빵집 체인)에서 부랴부랴 브레쩰 하나를 사서 입 속에 우겨넣는다. 미술사 박물관에 가기로 했는데 위장이 비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어쩌다 보니 미술로 도배(?)하는 날이 되어버렸다. 민수 씨 내외와 여기서 알게 된 수정이도 미술사 박물관이 처음이라서 함께 가게 되었다.



이집트와 고대근동, 그리스, 로마를 지나 중세와 바로크, 로코코, 신고전주의 그리고 합스부르크의 찬란한 보물들. 사치가 당연한 귀족의 권리였기에 금장색과 은장색, 유리세공장인 등은 지금과는 좀더 다른 방식으로 노력했을 것이다. 기성품의 세계는 가성비를 따지지만 하나하나가 고유한 작품이 되는 시대에는 장인의 노력과 끈기 또한 상상을 초월할만큼 확장된다. 이 예술품들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착취적 성격을 직시하더라도 여기에서 반짝이는 것은 보석보다도 귀한 땀이며 숨이며 혼이다.




회화 파트 또한 명화의 보고였다. 뒤러와 홀바인과 크라나흐 같은 독일화가, 루벤스와 렘브란트, 반 아이크, 브뤼겔 같은 플랑드르 화가, 카라바지오, 라파엘로, 티치아노, 틴토레토 같은 이탈리아 화가들이 각각의 개성과 정신성을 회랑마다 가득 내뿜고 있었다.


루벤스: 메두사(좌) / 브뤼겔: 바벨탑(중) / 렘브란트: 자화상(우)


라파엘로: 초장의 성모

하지만 나는 이 이상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일종의 과식이었다. 더구나 다리가 아팠는데 그건 마치 매일 같이 야자와 보충수업에 시달리던 고딩이 갑자기 체력장에 불려나와 뜀박질을 했을 때와 비슷한 현상이었다. 지난 2년간 나는 매일 같이 운전을 하고 다녔다. 걸으면 30분은 기본이었던 7~8년 전과 같을리 없었다. 또 내가 한 가지 잊고 있었던 사실이 있었는데 그건 이 곳 유럽의 땅바닥이 우리나라보다 더 딱딱하다는 것이다. 어쨌든 내 몸에는 뇌성마비의 후유증이 남아 있어 보행 시의 차이에 무척 예민하다. 그런데 그림들에 홀려 그 사실을 잊고 한국에서처럼 쿵쾅거리며 다닌 것이다. 무릎 뒤쪽 인대 수술 자리에 아무래도 염증이 생긴 것 같다. 첫날부터 이게 무어야. 사람 안 바뀐다는 말이 맞는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행복하다. 뭔가 한껏 충전되는 기분이다. 한국에는 뭔가 늘 쫓기게 하는 영이 있는 것 같다. 보아도 누림이 되지 못하고 마음껏 경탄도 못하고 듣는 것과 읽는 것은 늘 일이 되는 상황에 있다가 이런 호사를 누리니 배나 행복한 것 같다. 다리 아픈 것쯤이야 괜찮다.


박물관을 나와 저녁을 먹으러 갔다. 민수 씨가 예약을 해 두었다. 우리는 비너 슈니첼과 돼지 립, 샐러드를 곁들인 돼지고기 요리 그리고 시금치를 넣어 반죽한 수제비 비슷한 요리를 먹었다. 물론 싱싱한 맥주 한 잔도 빠질 수 없다.



비너 슈니첼은 돈까스의 원조인 음식인데 송아지 고기로 만들어 돼지보다 부드럽다. 레몬을 뿌리고 마멀레이드를 발라 먹기도 한다. 예전 빈에 처음 갔을 때 "임머폴(언제나 만석 - 이라는 뜻)"이라는 곳에서 너무 맛있게 먹었었는데 지금은 망했단다 ㅜㅜ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맛있게 먹었다. 돼지고기 요리들은 짜지 않고 튼실한 게 마음에 든다. 곁들인 샐러드도 괜찮았다.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적어도 독일 쪽보다는 자기네 음식이 낫다고 자부한다. 비교대상이 독일이라는 게 좀 안타깝지만 그래도 음식이 온화하고 풍성해서 좋았다. 시금치 수제비가 정말 의외로 맛있었다. 아니 파스타라고 해야 하나. 반죽에 시금치와 허브향이 은은하고 마일드한 크림소스가 과하지 않게 버무려져 은근히 개운하다. 


맥주도 훌륭한 편이다. 빈 사람들이 많이 마신다는 오타크링어. 하지만 맥즙이 훌륭한 데 반해 홉의 캐릭터가

다소 약하고 라거의 특성이기는 하지만 탄산도 약한 편인 게 아쉽다. 그래도 이게 어디냐 나는 감지덕지 하며 맛있게 먹었다.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과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 가운데 나는 늘 전자에 공감하며 살아온 것 같다. 그런데 바로 그래서 나는 후자에 격렬하게 공감하는 우리 마누라 같은 사람과 살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음악 얘기가 오갔다. 삶 얘기가 오갔다. 하나님 얘기가 오갔다. 우리들은 아무것도 아니며 하나님 안에 음악이며 삶이며 예술이며 음식이 다 들어 있더라는 얘기가 오갔다. 민수 씨가 나 몰래 먼저 계산을 하고 왔다. 나중에 한국에서 거하게 쏠 것을 이 글에도 명확하게 적어 놓겠다. 긴 하루가 그렇게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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