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23일 빈 -> 프라하
이번 여행에서 처음 겪어 보는 일 중 하나는 유럽 버스를 이용해 본 것이다. 그동안 독일과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을 다닐 때는 주로 기차를 이용했다. 지역기차를 갈아타 가면서 중간중간 도시들에 내려가면서 하루에 도시 두세 개를 보면서 이동하는 나의 여행을 나의 어떤 지인은 여행이 아닌 고행이라 칭하기도 했다. 하지만 애 둘 아빠가 되고 차를 가지고 다니다 보니 옛날식으로 다닐 엄두가 안 난다. 그래서 버스를 알아보기 시작했는데 우와 이런! 가격이 이렇게 착할수가 없다. 국가 간 이동하기도 나쁘지 않다. 더구나 전반적인 이용 평도 좋다. 나의 프라하 일정은 그렇게 우발적으로 생겨났다.
빈에서 버스에 몸을 싣은 뒤 그저 4시간쯤만 눈을 붙이면 프라하다. 매력적이지 않은가. 뮌헨에 살 때 언제든 갈수 있겠지 하고 미뤄두었다가 결국 가지 못했었다. 그때의 아쉬웠던 기억이 잠시 떠올랐다가 버스에 오르자 점점 설렘으로 바뀐다. 프라하는 내게 어떤 얼굴을 보여주려나.
프라하 플로렌스에 버스가 도착한 건 대략 5시. 좀 애매한 시각이다. 일단 뭘 좀 먹어야지 싶어 민박집에 짐을 풀고 나서 저녁을 먹으러 간다. 로맨틱 프라하 민박의 해맑은 주인이 추천해 준 하이노프스카라는 곳이다.
신난다. 시원하다. 필스너 우어크벨을 생맥으로 준다. 소고기 굴라쉬를 시켰는데 노오란 찐빵 슬라이스와 함께 나온다. 춘장 같은 색에 장조림 같은 식감이지만 체코 전통 빵이라는 이 구수한 빵에 올려 먹으면 입안이 흐뭇해지는 특별한 맛이 된다. 축축하고 포근포근한 빵과 씹히는 맛이 기가 막힌 고기. 감자와 언뜻언뜻 씹히는 구운 베이컨 조각. 그리고 짭짤하고 뽀득뽀득한 소시지! 먹다 보니 어느새 배가 불러온다. 그런데도 다 해서 8유로밖에 되지 않는다. 감탄스럽다.
내가 먹는 사이 태양이 퇴근을 하고 프라하는 밤의 옷을 갈아입는다. 한때 합스부르크 제국의 수도였던 얀 후스, 스메타나, 드보르작, 카프카의 도시는 말할 수 없는 매혹으로 반짝거린다. 바츨라프 광장을 지나 구 시청사와 얀 후스 동상, 유명한 카를 교까지 어디를 들러보아도 다 엽서가 되는 풍경이다.
상점 안에는 프라하의 크리스탈이 반짝이고
돌길에는 빛이 매끈하니 감돌고
사람들의 눈망울은 은은하게 빛난다.
블타바 강의 물결소리가 들려와
돌길에 부딪히는 발소리와 뒤섞일 때면
프라하의 푸른 밤공기는
중세적인 낭만을 한껏 머금는다.
프라하의 밤.
반짝이는 탑들과 그림자.
그 그림자에 내 그링자가 먹혔다가
다시 나왔다가를 반복한다.
프라하의 밤에 흠뻑 젖어
나의 밤도 잠을 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