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설 - 우리는 무엇을 보고 듣고, 어떻게 이해하는가

브런치 무비패스

by 거짓말의 거짓말

*영상 언어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 매우 주관적인 감상임을 밝힙니다. 배우의 연기, 연출, 구성 등에 대한 언급은 줄이고 영화의 '이야기' 자체와 영화의 이야기를 통해 확장한 브레인스토밍을 주로 쓸 예정입니다. 영화에 대한 추천지수는 본글에 앞서 별점과 흥행 예상 지수로 대신합니다.


별점: ★★★☆


예상 흥행 관객수: 100만 명 / 말할 수 없는 비밀 별 5개 >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별 4개 > 청설=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외국인과 사귀면 어떨까.


대학생 때 '한국어 도우미'란 언어·문화 교류 프로그램이 있었다. 유학을 온 외국인 학생의 도우미가 돼서 한 학기 동안 밥도 먹고, 과제도 도와주고, 마음이 맞으면 인사동이나 경복궁 같은데 놀러 가기도 하는 그런 프로그램이었다. 심리학을 전공하는 이란 남자, 한국어를 전공한 태국 여자애, 대만 여자애 등등 여러 명의 도우미를 했고, 그들을 통해서 또 다른 외국인 친구도 만날 수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하게 됐다. 외국인과 사귀면 어떨까,라고.


처음에는 의사소통의 장벽으로 아마 힘들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서로 전하고 싶은 말을 완전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이해도 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곧 생각이 바뀌었다. 한국 친구와 비교하면 외국인 친구와는 서로 매우 제한된 숫자의 단어만을 사용했지만 소통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단어의 제한으로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하는 상황도 많았다. 쉬운 단어로 풀어서 설명하다 보면 상황이 오히려 더 명료해지기도 했다. 때로는 만난 지 몇 달 밖에 되지 않은 외국인 친구가 그 누구보다 나에 대해 잘 파악하고, 알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신기하기도 했다. 사람의 성격과 그 사람의 개성을 아는 데는 꼭 많은 말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반대로 한국인 연인을 사귈 때를 생각해보면 둘 모두 표현하고 싶은 생각과 말들을 제약 없이 표현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잘 표현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말로 풀지 않아 오해가 쌓이고, 싸우고 나서 서로 입을 닫는 경우도 많았다. 때로는 너무 많은 말이 상대에게 되려 상처가 되기도 했다. 언어라는 장벽으로 표현이 제한될 때는 표현하기 위해 서로 노력하지만 반대로 표현이 열려 있을 때는 잘 표현하지 않는 문제가 생겼다.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나면서는 우리가 하는 말이 같은 한국말이지만 서로 다른 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러니까 전 세계에 300개의 나라가 있다면 300개의 외국어가 있는 것처럼 지구에 60억 명의 사람이 있다면 60억 개의 서로 다른 언어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사과. 여기 사과라는 단어가 있다. 사과를 생각해보자. 누군가는 빨갛게 윤이나고 꼭지가 달린 사과를, 또 다른 누군가는 초록색 아오리 사과를, 그리고 어떤 이는 한 입 베어 문 사과를 떠올릴 것이다. 사람의 생각과 사유가 언어에 기반하고, 우리는 동일한 언어가 동일한 생각을 가리킨다고 믿는다. 하지만 실제로 그 생각의 모양과 형태는 모두 제각각이다. 심지어 구체적인 형태와 대상물이 있는 실존 명사인 사과마저도 사람마다 다른데 추상명사, 감정을 나타내는 말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고마워, 가슴이 아파, 보고 싶어. 우리는 이런 감정이 담긴 말을 많이 하지만 나의 고마워와 너의 고마워는 다르다. 나의 보고 싶음과 너의 보고 싶음은 전혀 다른 것이다. 다만 우리는 표현하는 말이 같으면 내용도 같은 것이라고 착각하거나 그렇게 믿는 것일 뿐이다.


사랑해. 내가 너에게 말한다. 너를 사랑해. 너도 내게 말한다. 나도 너를 사랑해. 우리는 서로 같은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일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있지만, 서로 다른 사랑을 하고 있다. 서로 사랑을 하고 있을 때는 서로 다른 사랑의 정의가 문제 되지 않지만 사랑이 식어갈 때쯤 서로 다른 사랑의 방식은 상대에게 상처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흉기는 대부분 너와 나의 '말'이다.


영화 '청설'을 보면서 머릿속에서 계속 일본 영화 하나가 떠올랐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란 제목의 영화다. 이 영화의 남자 주인공 역시 장애를 가진 여자아이와 사랑에 빠진다. 걷지 못하는 조제와 사랑에 빠지는 츠네오. 이 영화가 좋았던 점은 둘의 아기자기한 사랑과 예쁜 화면도 있었지만 애써 무리하지 않은 결말의 방식이었다. 영화 말미에 츠네오는 결국 조제를 버리고 자기를 좋아해 주는 다른 여자에게 간다. 잔혹하고 아프지만 납득이 가는 결말이었다.


청설을 보며 '조제'를 떠올렸던 것은 이야기보다 '장애'라는 소재의 유사성 때문이었다. 청설 역시 듣지 못한다는 장애가 영화의 큰 흐름을 만든다.


남자 주인공 티엔커는 수영장에 도시락 배달을 갔다가 우연히 양양을 만나게 되고 첫눈에 반한다. 양양은 친언니인 샤오펑을 위해 본인의 삶을 포기하고 억척스럽게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을 꾸려간다.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언니가 장애인 올림픽에 나가 금메달을 따는 것이 양양의 꿈이다. 언니는 양양에게 "내 꿈을 훔쳐가지마. 너의 인생을 살아"라며 (수화로) 상처를 주는 말도 하지만 결국에는 자매의 갈등도, 양양과 티엔커의 사랑도 헤피엔딩으로 결말을 내리게 된다.


2009년에 개봉한 영화라 조금은 촌스러운 부분도 있었지만 어쩌면 그 촌스러움 때문에 정이 가는 영화였다. 몰라도 되는 것들을 너무 많이 알아버린 30대가 지나서 오랜만에 본 '첫사랑' 영화였지만 나쁘지 않았다.


같은 대만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이' 별 5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별 4개라면 이 영화는 또 다른 대만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와 함께 별 3개 반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참고로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의 영어 제목은 'You are the aplle of my eye'다. 직역하면 "넌 내 눈 속의 사과야"라는 뜻이지만 원래 뜻은 우리말의 '눈 속에 넣어도 안 아아픈 너'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뜻한다.


아래 링크는 'apple of my eye' 관련 글

https://brunch.co.kr/@lieoflie/26


청설은 11월 8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