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인-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이야기의 힘

사법 정의 실종 시대에 아직도 '바름'을 이야기하다

by 거짓말의 거짓말

*영상 언어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 매우 주관적인 감상임을 밝힙니다. 배우의 연기, 연출, 구성 등에 대한 언급은 줄이고 영화의 '이야기' 자체와 영화의 이야기를 통해 확장한 브레인스토밍을 주로 쓸 예정입니다. 영화에 대한 추천지수는 본글에 앞서 별점과 흥행 예상 지수로 대신합니다.


별점: ★★★★


예상 흥행 관객수: 400만 명 / 대법원장 구속, 사법 정의 실종 시대에 법이 말하는 정의에 대해 희망을 말하는 동화 같은 이야기.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인간의 본성이란 오묘하고 흥미롭다. 영화 '엑스페리먼트'는 교도관과 죄수의 실험을 통해 사회적 동물인 인간 본성의 취약함을 다룬다. 연구자들은 공개 모집을 통해 20명의 실험 참가자를 모집하고 그중 12명은 죄수, 8명에게는 간수의 역할을 부여한다. 처음에는 재미로 역할극을 진행하던 실험 참가자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폭력적이 되어가고 실험 5일째에는 첫 번째 살인이 발생한다. 연구자의 통제를 벗어난 실험은 당초 계획한 14일을 채우지 못하고 중단된다. 사회적인 지위와 힘을 부여받은 사람, 약속을 통해 권력을 쥐게 된 사람이 어떻게 변하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지위'와 '역할'이 주어지면 그것은 개인의 특성(착한 마음 혹은 나쁜 마음)을 얼마간 집어삼킨다. 본성이 나쁜 사람일지라도 경찰 제복을 입게 되면 자연인 상태일 때보다 윤리적인 행동을 하게 되고, 반대로 본성이 착한 사람이라도 UFC 선수가 되면 상대 선수를 무차별적으로 때린다. 한나 아렌트가 '예루 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적은 것처럼 수많은 유대인 학살을 자행한 공무원 아이히만은 자기에게 주어진 일(가장 적은 비용으로 유대인을 가장 많이 죽이는 것)을 묵묵히 수행한 평범한 남자였다. (이야기가 길어지므로 '악의 평범성'은 생략하자.)


브런치에 글을 쓰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일정한 심사를 거쳐 글을 발행할 수 있는 권리를 주고 '작가님'이란 호칭도 준다. 별거 아니라면 별거 아니지만 이게 사람에 따라 별거라면 또 별거다. 게다가 가끔 그중에 일부를 대상으로 무료 시사회 표를 주고 '영화평'도 쓰게 한다. 작가라는 호칭에 공짜 영화도 볼 수 있는 특권이 생겼다. 여기서 보통은 두 가지 고민을 하게 된다.


명색이 작가에 시사회에 초청되는 사람인데 영화의 부족한 점에 대해 뭔가 비판을 해야만 할 것 같다. 동시에 공짜 시사회 표를 제공하는 쪽의 입장도 생각해서 되도록이면 영화의 나쁜 점보다 좋은 점을 적어 주는 게 좋을 것도 같다. 이 두 가지 사이에서 언제나 고민을 하게 되는 것이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영화 '증인'은 썩 괜찮은 작품이었다. 아직껏 브런치를 통해 본 4편의 영화 중 단연 첫 번째다. 앞전까지 브런치 시사회를 통해 본 영화들은 대중성이 떨어지거나, 다큐멘터리 영화이거나, 재개봉 영화 등으로 사실상 시사회를 보면서부터 '이래서 흥행이 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먼저 들었다면 증인은 최근의 시대적 상황과 맞아떨어지면서 이야기에 힘이 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흥행도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사실 시사회가 진행된 건대 롯데시네마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영화가 시작된 20여분 동안은 조금 삐딱하게 영화를 본 게 사실이다.


우선 정우성(순호 역)이란 배우의 캐스팅이 걸렸다. 최근 정우성은 난민 운동에 앞장서며 사회적인 활동을 활발히 하면서 배우로서의 인기보다 '개념 있는 좋은 사람'의 이미지가 너무 강했다. 그런 차에 법정 영화의 주연으로 캐스팅되다니, 좋은 사람이 좋은 인간성의 변호사를 맡아 연기하면 너무 빤할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정우성이 가장 돋보였던 역할은 아수라의 악당 대장이었다)


하지만 이런 내 예상과 달리 정우성은 약자를 도와주는 변호사가 아니라 범죄 용의자의 유죄를 증명해야 하는 검사 역할이었다. 민변 출신으로 약자를 돕는 변호사를 하다 우리나라 최고 로펌인 김앤장을 연상케 하는 로펌의 검사로 새 출발하는 시점이었다. 영화 초반부 그를 영입한 로펌의 임원은 정우성에게 누누이 "때가 낄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정우성 역시 빚보증을 잘 못서 빚을 떠안은 노부를 부양하기 위해 어느 정도 때가 묻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유일한 살인 목격자인 김향기(지우 역)의 자폐아 연기도 단연 돋보였다. 맨발의 기봉이, 7번가의 기적 등 앞선 배우들의 연기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지 않을까 싶다. 더불어 법정 영화답게 공판이 진행되면서 전개되는 논리 싸움도 매우 사실적이고 흥미로웠다.


영화의 결말은 전직 대법원장이 사법거래로 구속되는 초유의 시대에 너무 말랑한 해피 엔딩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렇게 공주와 왕자는 평생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처럼 허무맹랑하지는 않았다. 영화 요소요소에 숨어있는 감동 포인트와 각종 볼거리가 넘치는 21세기 블록버스터 시대에도 단순한 이야기의 강직한 힘이 느껴졌다.


사법 정의 실종 시대에 '옮음'과 '바름'을 이야기하는 단순한 메시지가 허무맹랑하게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감독의 힘이 아닌가 싶다.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찾아보니 '완득이' 등을 통해 나름 흥행성도 입증받은 이한 감독이었다. 참여했던 대부분의 영화가 드라마/ 멜로·로맨스로 이야기 자체에 힘을 실어주는 영화였다.


스토리가 강한 영화이므로 영화에 녹아 있는 반전과 감동 포인트, 인상적인 대사는 적지 않았다. 개봉 시기에 강력한 영화들을 만나지 않는다면 잔잔하게 흥행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개봉은 2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