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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다 May 06. 2021

애도에는 마침표가 없다

49.3년에 대한 나의 계획


엄마 장례를 치른 지 61일이 지났다. 나는 별 감흥 없이 그럭저럭 잘 지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애를 키우다 보니 감상에 젖을 타이밍을 찾기가 애매하다. 돌봄 노동은 내 컨디션이나 감정상태와는 별개로 일정하게 시간과 체력을 써야 하는 일이므로, 엄마 생각에 울컥했다가도 아이가 "구덩이에 빠졌어요!!! 달님, 동아줄을 내려주세요"하면 바로 담요로 만든 밧줄을 던지며 몰입해줘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별 감흥 없는 하루가 지나고 아이가 잠들면 엄마 생각을 조금씩 했다.


한 사람이 이 세상에서 완전하게 지워지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서류와 품이 들었다. 엄마 명의로 가입된 각종 보험과 부동산, 은행 계좌, 엄마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에도 성실하게 빠져나가는 할부금들까지. 정리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그렇게 장례를 치른 직후부터 지금까지 두 달을 이 세상에서 엄마를 완전히 지우는 데 썼다. 아이러니한 것은 엄마를 완전히 지우기 위해 반복적으로 엄마가 죽은 사람임을 증명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모든 작업이 우선은 사망진단서로 엄마가 죽은 사람임을 확인받고, 그 후엔 엄마의 가족관계 증명서에 적힌 자녀가 나임을 증명해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처음에는 되게 가혹하게 느껴졌는데, 이 짓도 자꾸 하다 보니 나중에는 전화기 너머 상담원만큼이나 나도 사무적으로 대답할 수 있게 되었다.


엄마는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보험을 해약하고 계좌를 하나씩 해지할 때마다 엄마가 조금씩 지워지는 상상을 했었다. 엄마의 옷가지와 신발들까지 다 정리하고 16000원을 벌었다는 남동생의 카톡을 받았을 때는, 엄마를 너무 빨리 지운 것 같아 다시 상상 속에서 살려내기도 했었다. 진짜 엄마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49재 때 큰 스님 말씀처럼, 이제 이승에서의 죄업을 다 씻고 극락으로 갔을까? 그날 석왕사 법당에 다녀갔을까? 제상에 올린 내 첫 책을 보고 기뻐했을까? 염불 외는 소리와 가슴까지 쿵쿵 울리던 큰 북소리에 감정이 격해져 눈물을 좀 홈치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꾸벅꾸벅 졸던 한심한 나를 봤을까.


한참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와 계산기를 꺼냈다. 한국인 평균 수명이라는 83.3에서 내 나이를 빼보니 49.3이란 숫자가 나왔다.


'이제 49.3년을 엄마 없이 살면 되는 거군. 그리스도 탄생으로 기원 전과 기원 후가 나뉘는 것처럼 엄마의 죽음을 기원으로 삼는다면, 나는 이제 앞으로 49.3년 동안을 기원 전의 엄마와 나를 추억하며 지내게 되는 거야. 그건 앞으로 내 남편과 주변인들은 똑같은 이야기를 49.3년 동안 들어야 할 운명이라는 뜻이기도 하지. 저런... 맙소사...'


사실 나는 아직도 엄마에 대해, 애도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 나에 대해 쓰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그런데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니 어쩐지 좀 애매해졌다. 이제 더 이상 엄마가 없으므로 앞으로의 이야기는 반추뿐일 텐데, 그게 나의 상실을 극복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될까? 사람들이 지겨워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들이 생겼다. 그러다 엊그제 뮤지션 요조의 신작 산문을 읽다가 정말 나와 똑같은 염려를 찾았다. 그녀가 2007년 지하철 사고로 하루아침에 동생 수현을 잃었다는 건 인터뷰에서 꽤 자주 봐서 알고 있었는데, 이런 고민을 하는 줄은 몰랐었다.


그 무엇보다도 수현은 제가 쓰는 글 속에서 수시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데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신경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너무 수현의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은 아닌가. 사람들이 지겨워하지는 않을까. 그리고 정말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 혹시 수현을 그저 내 창작의, 혹은 내 센티맨털리즘의 소재로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닐까. 수현은 그냥 더 슬픈 나, 더 고민하는 나를 위한 하나의 썩 괜찮은 수단인 것일까. 지금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중략)

 제가 보고 듣는 많은 것들을 어쩔 수 없이 수현이라는 필터를 거쳐 느끼고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는 것을 한결 가볍고 자연스럽게 여겨보기로 했습니다. 수현을 잃은 경험과 상실감이 극복되지 않아도 좋은 채로, 저는 앞으로도 느끼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수현을 사용해보겠습니다. 수현을 이야기하다가 재미있으면 웃고, 수현을 이야기하다가 슬퍼지면 울도록 하겠습니다.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


앞으로 엄마 이야기를 쓰는데 두고두고 든든한 내편이 되어 줄 만한 문장을 만나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나도 경험과 상실감이 극복되지 않아도 좋은 채로, 자꾸 닦고 조이지 말고 자연스럽게 주어진 시간들에 부유하며 살아야지. 마음속으로 여러 번 생각했다. 비정규 가족 탄생 D+292일. 우리 가족은 모두 안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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