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생크 탈출은 내가 인상 깊게 본 영화 중 하나다.
1995년에 나온 영화로, 나온 지 꽤 오래됐음에도 지금도 여러 사람이 인생 영화로 많이 언급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주인공 '앤디'는 아내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종신형을 선고받게 된다.
그리고 감옥에서 겪게 되는 여러 이야기를 다룬 영화이다.
쇼생크 탈출을 보고 든 생각들을 정리하고 공유하고자 글을 쓴다.
신입들이 들어오고 감옥에서의 첫날밤.
집에 가고 싶다며 어린애처럼 우는 '죄수'가 있다.
그런 그에게 조용히 하라고 협박하는 '간수'.
죄수가 그의 명령에도 울음을 그치지 않자 그를 때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결국 그 죄수는 다음날 사망한다.
죽은 그 사람은 무슨 잘못을 해서 감옥에 오게 되었을까?
어린아이처럼 울던 그는 사실 앤디처럼 누명을 썼을지도 모른다.
별개로, 그런 그를 죽일 수 있는 권리는 어디서 왔는가?
만약 그가 정말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한 생명을 빼앗을 권리는 누구에게 있으며, 어디에서 주어졌는가?
국가, 사회, 정의라는 이름에서 주어지는 면죄부는 어디까지 허용되는가?
인권을 지키기 위해서 인권을 침해하는, 이 아이러니함을 이해하는가?
1.
작중 '브룩스'라는 노인은 젊었을 때부터 오랜 기간 감옥 생활을 했다.
어느 날, 그는 다시 사회로 나가게 된다.
'자유'를 되찾은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브룩스에게 있어 진정한 자유는 아니었나 보다.
결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그는 스스로 삶을 마감한다.
동물원의 철창 안에서 생활하던 원숭이에게
'자유'를 준다고 야생에 풀어놓는다면, 그 원숭이에게 그것이 정말 자유일까?
2.
이 세상을 살아가며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아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에서 요구하는 무언가를 하며 살아간다.
출근 준비, 회사, 일, 퇴근, 잠....
나는, 당신은, 우리는 정말 자유로운가?
...
어쩌면 사회라는 큰 감옥에 갇혀 자유롭다고 믿으며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자유란 무엇인가?
난 지금도 그 두 이탈리아 숙녀분들이 뭐라고 노래했는지 모른다. 사실은, 알고 싶지도 않다. 모르는 채로 있는 게 나은 것도 있으니까.
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워, 그 때문에 가슴이 아픈 것을 노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 목소리는 그 회색의 공간의 어느 누구도 감히 꿈꾸지 못했을 만큼 하늘 위로 높이 솟아올랐다. 마치 아름다운 새 한 마리가 우리가 갇힌 새장에 날아들어와 그 벽을 무너뜨린 것 같았다.
그리고, 아주 짧은 그 순간에, 쇼생크의 모든 사람은 자유를 느꼈다.
엘리스 보이드 레딩(Ellis Boyd Redding)
나는 어떤 순간에 자유를 느꼈을까.
작중 주인공인 앤디와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 '레드'라는 인물이 있다.
그도 브룩스와 같이 오랜 기간 감옥 생활을 하다가 어느 날 사회에 나오게 된다.
브룩스가 살았던 방,
브룩스가 일했던 마트,
그리고 브룩스처럼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레드.
하지만 레드는 브룩스와 다른 선택을 한다.
기억해요, 레드. 희망은 좋은 거예요. 아마 가장 좋은 것일지도 모르죠. 그리고 좋은 것들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요. 이 편지가 당신을 잘 발견하길 바라고, 당신이 안녕하길 바랍니다. - 앤디
친구 생각에 너무 흥분돼서 엉덩이를 자리에 붙이고 있는 게 힘들었다.
이것이 바로 자유로운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기쁨이리라.
결말이 정해지지 않은 긴 여행을 떠나는 자유로운 사람.
부디 국경을 무사히 넘기를 희망한다.
나의 친구를 만나 따뜻한 악수를 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태평양이 내 꿈에서처럼 푸르름으로 가득하기를 희망한다.
나는 희망한다.
어떤 생각에 엉덩이를 자리에 붙이고 있는 게 힘들 정도의 설렘.
그것이 자유로운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기쁨이리라.
결말이 정해지지 않은 긴 여행을 떠나는 자유로운 사람.
부디 사회적 시선을 넘기를 희망한다.
또 다른 나를 만나 따뜻한 악수를 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내 꿈이 태평양처럼 푸르름으로 가득하길 희망한다.
I hope. 나는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