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임을 인정합니다
작년 3월, 정신과에 방문하게 되었다.
그동안 애써 무시해 오던 삶과 죽음, 의미와 무의미에 대한 생각이 한꺼번에 몰려온 탓이었을까.
의사 선생님의 추천에 따라 전문 심리 검사도 받게 되었다.
그렇게 상담과 검사를 마친 뒤, 결과지에 나온 그래프를 보며 대화를 나눴다.
"이 정도면 많이 우울한 편인가요?"
"그럼요."
막연히 '조금 우울감을 잘 느끼는 사람'이었던 내게 '우울증'이라는 병명이 내려진 순간이었다.
약도 받았다.
약을 꾸준히 먹었다.
내가 받은 병명은 다음과 같다.
공황, 우울, 불안 장애
그다지 거부감은 없었다.
실제로 예전부터 일상 중 우울감을 꾸준히 느껴왔고,
작은 일에도 불안해 해왔으니까.
그리고 그 당시에는 그렇게 심하진 않지만 공황 증상도 있었다.
그 당시 내가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사가 확실히 해줬음에도
나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그저 '진짜 문제가 있긴 있었구나'라고 막연히 생각했을 뿐이다.
그렇게 나는 내 병을 받아들인 줄 알았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로부터 1년 하고도 8개월 정도가 지났다.
내 상태는 어떨까?
공황 증상은 확실히 거의 없어졌다.
하지만 우울, 불안은 여전히 크게 느끼는 것 같다.
꽤 오래 치료를 받았음에도 왜 아직도 이런 상태일까 뒤돌아보니, 내가 온전히 병을 받아들이지 못했음을 깨닫게 되었다.
나를 환자처럼 보살피지 않고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다리가 부러져서 치료 중에 있는데
"이 정도는 괜찮잖아? 살아가면서 운동은 해야지."
라고 하며 헬스, 달리기를 시도했던 것이다.
그리고 뛰지 못하는 자신을 향해 이 정도도 못 뛰냐며 화를 냈다.
이미 마음이 고장 나 있는데
왜 못 나아가냐며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그 결과
편히 쉬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무언가를 제대로 하지도 못한,
그야말로 약 2년의 시간을 허비하게 되었다.
뼈가 부러졌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하고 뼈가 붙을 시간을 줘야 한다.
그렇게 뼈가 붙고 나야지 운동도 조금씩 할 수 있다.
조금이라도 빨리 낫겠다고 괜히 움직이다가 뼈가 붙는 것을 방해할 수 있다.
마음도 똑같다.
이미 마음이 부러졌는데, 계속해서 몰아붙이는 것은 마음이 회복되는 것을 방해할 뿐이다.
다만, 뼈는 x-ray로 상태가 확실하게 보이지만,
다음은 그렇게 직접적으로 부러진 증거를 볼 수 없다는 것이 다르다.
나에게도 보이지 않고,
주변 사람에게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스스로가, 그 사람이 '환자'임을 자꾸 잊는다.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 정도 치료했으면 됐잖아. 언제까지 힘들어하려고?"
"너만 힘들어? 다른 사람도 다 힘든데 참고 사는 거야."
"네가 진짜 힘들어보질 않아서 그런가 보다."
.
.
.
이런 말은 병을 악화시킬 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부러졌음을 의사가 확인했는데
왜 비전문가인 사람들이 뛸 수 있다고 확신하는가.
그렇다고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며 누워있기만 한다고 해서 병이 낫는 건 아니다.
꾸준히.
그리고 할 수 있는 만큼.
차근차근 변화해야 한다.
뇌의 사고 회로가 정상적으로, 나아가 긍정적으로 돌아갈 수 있게 꾸준한 운동과 명상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채찍은 필요 없다.
하루하루 그렇게 나아지면 되는 것이다.
그러다 힘이 생긴다면 더 어려운 일도, 힘든 일도 시도해 볼 수 있다.
근육을 키우지 않고 너무 무거운 것을 들면 다치듯,
마음의 근육을 키우지 않고 무리하면 다친다.
이 당연한 걸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고 이해하지 못한다.
수많은 전문가가 이야기 함에도...
이 이야기가 당신, 그리고 당신 주변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우울, 공황 같은 정신질환은 절대 '의지'나 '능력'의 영향이 아니라는 것,
암처럼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보다 따뜻한 시선으로 사람들을 보길 권한다.
당신이 지금 가지고 있는 '그 시선'으로 언젠가 스스로를 바라볼 테니.
왜냐하면, 예상치 못한 병이 생길 수도 있고, 예상치 못한 사고가 날 수 있으며, 운이 좋게 계속해서 아무일도 없었더라도 — 모두가 언젠가는 늙어서 무능력하고 아픈 사람이 된다. 언젠가는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그런 사람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남을 바라보는 것은 곧 언젠가의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이기도 하다.
글을 마무리하며 — 만약 당신이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그것을 먼저 온전히 받아들인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너무 아프지 않게 당신이 나아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