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믿지 못할 때 — 혐오의 시대 속에서

혐오에서 벗어나는 방법

by 예월

많은 사람들이 꿈에 도전을 한다.

여기서 '도전'이라는 단어를 쓰는 이유는

그것이 분명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

현실을 살아나가는 우리에게, '꿈'에 도전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무언가를 포기하기도 해야 할 것이고,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길을 걸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은 세상과의 싸움임과 동시에, 나 자신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우리는 혼자 살아갈 수 없게 설계되었다



어떤 사람은 매우 강하다.

스스로 정한 길을 흔들림 없이, 묵묵히 나아간다.

분명 그런 사람들이, 적어도 그래 보이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

오히려 그렇게 강한 사람이 돌연변이이다.

혼자서는 생존하기 어려운 야생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무리를 이루고 협력하는 것이 생존 확률을 높이기에

사람들, 우리 호모 사피엔스들은 사회적 동물로 진화해 왔다.


예전에는 분명 그것이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을, 나 자신도 의심하는 능력은 더욱 생존 확률을 높여줬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이미 안전이 보장되어 있는 안전한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거기에 인터넷까지 더해지며 우리는 너무 과다한 네트워크를 갖고 살아간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고,

눈치를 보고,

때로는 부러워하는 것은 못나서가 아니다.


그냥 사람이 원래 그렇다.




믿음을 잃은 사람들



그런 과정 속에서 스스로에 대한 의심에 파묻혀 '믿음'을 잃는 사람들이 있다.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사람의 삶은 어떻게 될까?

이미 무너졌거나, 모래 위의 성처럼 위태로울 것이다.



나 자신과의 관계는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

나는 나 자신과 가장 많이 소통하고, 깊게 연결되어 있다.

당연한 이야기이다.




나와 제일 친한 친구이자, 동반자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런 사람이 나를 믿지 못한다.

심지어 질책하고, 욕하고, 싫어하기까지 한다고 생각해 보자.


...


얼마나 절망적인가?

그런 관계는 당장 끊어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앞서 말한 친구이자 동반자는 나 '자신'이다.

그리고 불행히도 나 자신과의 관계는 끊을 수도 없다.

그렇기에 '무조건'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을 믿어야 한다.

행복하려면 필수조건이다.




그럼에도 당장의 자신이 미울 수 있다.


오늘은 그런 자신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는 것으로 시작해 보자.


"많이 힘들었지?"

"괜찮아. 내가 너를 믿어 줄게."

"고생 많았어."


어떤 말이든 상관없다.






자살률 1위 국가에서 살아간다는 것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사람이 아주 소수라면 개인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OECD 자살률 1위를 유지하는 것.

그리고 10대 자살률이 높다는 건 분명 사회 어딘가가 고장 났다는 뜻일 것이다.


한 번만 넘어져도 '낙오자', '패배자'로 낙인찍고,

서로가 서로를, 서로가 서로의 '다름'을 혐오하는,

분명 어딘가 고장 난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안타깝다.


남을 혐오하는 그 시선으로,

남을 무시하는 그 시선으로,

언젠가 자기 자신을 바라볼 텐데.

어쩌면 이미 바라보고 있을지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뭘까?


당장 '나'부터 따뜻하게 바라보자.

그리고 그 시선을 점차 주변 사람들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게 미워했던 사람들에게도 적용해 보자.


분명 개인에게도, 나아가 모두에게도 보다 살아갈만한 삶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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