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엄마의 결정에 따라 달린 육아, 엄마가 처음이라 미안해
세 번째 응급실행이다.
첫 번째는 신생아때 침대에서 떨어져서... 다시 생각하기도 싫다. 두 번째는 시댁에 다녀오는 길 열이 며칠째 떨어지지 않아서였다. 이 두 번 집에서 가까운 대학병원에 다녀왔다. 제대로 휴식조차 취하지 못한 듯한 의료진들, 여기저기 들리는 신음소리, 걱정스런 얼굴로 기다리는 가족들 - 이 병원엔 소아과 응급병동이 따로 있는데도 불구하고 미드에서 본 여느 응급실과 같이 정신없는 풍경이 가득했다. 한 시간 가량 기다렸을까 젊은 의사분을 뵐 수 있었다. "넌 내가 뭘했다고 우니? 아직 아무것도 안했어!"
아이를 대하는 의사선생님의 말투가 신경쓰이긴 했지만 바쁘고 정신없는 응급실에서 진료만 제대로 봐주시면 그만이었다. 이런 건 이해할 수 있었다. 그저 목이 부어서 그런 거라고 진단해주셔서 검사도 하지 않고 나오게 됐다. '별일아님'에 감사했다. 이 후 며칠 더 지속된 열에 대학병원보다는 작은, 동네병원보다는 조금 큰 병원 선생님께서는 구내염이였다고 그리고 약 안먹고도 이제는 지나갔다고 말씀해주시니 더이상 그 대학병원 응급실을 신뢰할 수 없게 됐다.
세 번째다.
4일째 39도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다. 24시간 14개월된 아가의 몸이 불덩이다. 첫 날은 동네 병원이 열자마자 그리고 점심시간이 끝나자마자 빗속을 뚫고 아이를 안고 달려갔다. 목이 부어 그런거니 이대로 해열제만 2시간마다 교차복용하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나의 예민함을 의심했다. 이틀 째 들어간지 얼마 안된 회사에서 연차 3개 뿐인 남편은 눈치를 보며 휴가를 냈다. 밤새 39도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아기를 보며 도저히 내가 혼자 감당하기 어려웠기때문. 동네병원보다는 조금 큰, 대학병원보다는 작은, 그 소아과가 열기전에 달려갔다. 어제는 휴무였던 의사 선생님께서 오전 근무라 다행이었다. "아데노 바이러스". 자주 왕래가 없는 아기 친구 엄마에게서 한 번쯤 들어봤던 이름같다. 생각보다 심각한 증상과 견딤이 필요한 감기 종류라 어렴풋이 떠오른다. "오늘 견뎌보고 너무 안먹으면 수액 맞으러 내일 오세요"
열이 시작된 첫 째날 밤에도, 둘 째날에도 그 응급실을 가야하나 수없이 고민했다. 40도까지 치솟는 열과 2시간에 한 번씩 독한 해열제를 먹이며 이대로 견디는게 옳은가 고민했다. 매순간 모든 일을 엄마가 결정해야하는 육아 생활에 있어 난 완벽하지도 정답을 알지도 못해 아픈 아이를 껴안고 내 자신을 원망했다.
그렇게 힘든 밤을 지새우고 천둥 번개가 내리쳤다. 아이 아빠는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점심 미팅이 있었기에 오전 반차를 냈지만 아기가 안정을 취하고 밤새 못잔 잠에 들어 병원행은 포기했다. 늦은 오전 즈음 아빠가 출근을 하고 아기의 체온계가 또 빨간 불을 내뿜었다. 삐요삐요 - 빗속에 아이를 안고 점퍼를 씌우고 카카오택시의 자동 결제 시스템에 무한 감사했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해열제가 잘 들었는지 아이의 컨디션이 기적같이 좋아졌다. 안심하고 있던 찰라 12시간 동안 소변을 보지 않아 수액을 맞게 됐다. "수액 맞는 2시간 30분동안 소변을 보지 않으면 콩팥이 망가진 거라 응급실로 들어가야해요." 이틀 동안 아기가 먹은 건 분유 2번, 바나나 1개. 먹지 않아 걱정했는데 이런 큰 문제가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수액을 맞는 동안 이미 지쳐서 잠들어버린 우리 아기. 콩팥이 망가졌을 지도 모른다는 말에 남편 또한 무슨 일이 손에 잡히겠는가. 남편도, 때마침 생신맞아 남해로 여행을 떠나신 친정 부모님도 속도를 내서 달려왔다. 기저귀가 무겁게 느껴저서 소변을 본 줄 알았기에 걱정하지 않았다. 4시 30분. 수액이 거의 다 들어갔지만 기저귀가 뽀송뽀송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조금 더 기다려보자는 선생님의 말에 협소한 수액실에서 어른 4명이 초조한 마음을 한데 모았다. 으아아아아아아앙 ~ 너무 오랫동안 소변을 보지 않아 아팠나보다. 아기의 소변이 남편의 셔츠를 한가득 따뜻하게 적셨다. 수액을 맞는동안도 몇 번을 종합병원을 갔어야 했나 내 자신을 자책했는지 모른다. 그저 안좋았던 경험으로 인해 괜히 아픈 아기를 더 고생시킬까 하며 병을 키운 건 아니었나.
안심하긴 이르다. 집에 가서 자기 전 최소 2번은 더 소변을 봐야한다고 했다. 이제 병원이 끝날 시간이 다 되가니 피검사는 할 수 없고 내일 다시 오면 할 수 있다 했다. 집에 오자 해열제 복용한 지 2시간이 채 안됐는데 열은 또 치솟았다. 응급실 전화 상담 2번째. 응급실로 와봤자 소용없다는 첫 번째 상담과는 달리 '다른 병원' 응급실 선생님은 보지 않았으니 도움을 줄 수 없다 하셨다. 친정 부모님께서는 빨리 응급실로 들어가야한다하시고, 남편은 종합병원 결사 반대를 외치니 스트레스스트레스스트레스! 수액도 맞치지 말자는 남편 말만 고지곧대로 들었으면 병을 키웠으리라, 응급실은 오진 경험이 있기에 두려웠다. 2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해열제를 투약했다.
끙끙 앓는 아기의 손을 꼭 잡고 밤새 검색을 했다. 모든 걸 스스로 결정해내야하는 육아. 힘겨웠던 응급실 경험을 떠올리며 새벽 일찍 외래 진료를 보려했지만 또 빨간색을 내뿜고 있는 체온계를 보며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조금 먼 병원의 응급실(전 날 전화상담했던 그 '다른 병원')로 방향을 돌렸다. 아침이 오는 새벽에 와서 그런지, 이 병원은 그 전 병원과 달리 근무 환경이 좋은 건지 의료진도 많고 다들 표정이 좋아 보였다. 아이가 심하게 우는데도 달래 치료해보려고 노력하셨다.
생애 첫 소변검사, 피검사, X-ray검사 모두 큰 문제는 보이지 않았지만 또 다시 수액을 맞으러 와야하는 상황이면 입원을 권하셨다. 아무것도 먹지 않던 아기가 고심의 순간 빵을 엄청나게 잘 먹어서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지금 여전히 먹고 있지 않고 체온계도 삐요삐요 거리고 있다.
별놈의 기침 가래 콧물 감기, 수족구도 한 달 사이 두번이나 겪어본 육아 생활이었지만 이 놈이 수족구보다 더 강력한 놈같다. 열이 조금 내리니 온 몸에 두드러기 꽃이 피어서 이번엔 가와사키병인가 의심했을 정도. 낫는 과정에서 생기는 열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닷새 사이에 매일 병원에 출근, 365병원 상담, 119 상담, 응급실 상담, 너무 힘들어... 드드드드드드드드
처음부터 종합병원으로 갔어야 할까. 동네병원은 대부분 수액 치료를 하지 않고 동네병원보다 조금 큰, 대학병원보다는 작은, 소아과는 3시 이후에는 수액치료는 물론 그 어떤 검사도 할 수 없다. 6시 퇴근 시간 전 모든 업무를 마쳐야하기 때문. 맘카페에서는 처음부터 종합병원으로 달려갈걸 괜히 견뎌서 아기도 엄마도 힘들었다고 하는 소리가 있는 반면, 응급실에 가도 똑같이 해열제 주고 물수건으로 몸 닦고 기다림의 연속이라 더 괴롭다는 소리도 있다. 3차례의 응급실 경험을 통해 느낀 바, 병원마다 상황마다 조금씩 다른 것 같다. 앞서 오진한 대학병원에서 봤던 풍경은 열나서 축 늘어진 아이들이 엄마 품에 안겨서 기다리고 있는 걸 오랜 시간 봤다. 소아과 응급 병동이 있지만 방 한켠 공간에 함께 기다리는 모습일 뿐. 하지만 이번에는 가자마자 X-ray 검사하고 바로 안내 받아 수액 꽂고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소견서가 있고 그 동안의 증상과 상황을 디테일하게 설명해서인 것 같기도 하다. 아침이 되니 회진도 있었다. 세상에..!
또 무슨 일이 있으면 응급실로 달려가야할까.
모르겠다. 엄마가 처음이라 엄마 경력이 겨우 고작 14개월이라 모든 결정이 어렵다. 어쩌다 전업맘이 되니 육아의 모든 결정을 내가 스스로 해야할 때가 99.9%다. 대학 졸업 후 사회생활에서 했던 결정보다 14개월동안 했던 결의 넘치는 결정이 생각보다 많았던 것같이 느껴진다. 아기가 아플 때는 엄마의 무게가 더 무겁게 느껴진다.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우리 엄마는 어떻게 해낸 걸까. 라는 생각에 시달린 일주일이 지나가고 있다.
이상스레 급하게 병원을 가는 날 정신차려보면 목요일이나 금요일을 자주 만난다. 주말이 오기에 마음이 급하다. 작지도 크지도 않은 병원에 마지막으로 방문했을 때 소견서를 떼오지 않았더라면 응급실에 가서 얼마나 힘들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제 응급실에 검사 기록이 남아 외래 진료를 볼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라는 안심도 된다. 아! 아데노 바이러스. 수족구보다 독한 놈. 이제 만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