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ICK e Y Nov 18. 2023

'엄마표'에 대한 단상 ... 엄마표 영어미술 해볼까?


'엄마표 영어를 합니다'라고 말하기에는 부끄럽다. 어느 정도는 하고는 있지만 명함도 내놓을 수 없다. 엄마표 영어 커뮤니티를 들여다보면 나는 한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보통 엄마표 영어라 하면 하루 몇 권씩 읽고 흘려듣고 집중 듣고 기록하는 루틴이다. 실제로 그렇게 성공한 사례가 많고 얼마나 많은 노력의 시간을 쏟아부었을지 존경스럽기 그지없다. 내심 엄마표를 왜들 어려워하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다. 하지만 엄마도 아이도 즐기는 시간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나 역시 아이와 힘든 노력 없이 술술 자연스럽게 지내고 있다. 어떻게 보면 '엄마표'라는 용어는 아이러니하다. 실상 주 양육자가 엄마인 육아 자체가 바로 엄마표다. 그저 엄마표 뒤에 카테고리가 하나 붙었을 뿐이다. 



엄마표는 영어에 국한되지 않는다. 엄마표 영어, 엄마표 과학, 엄마표 수학, 엄마표 미술... 육아에 성공의 잣대를 두는 건 오만한 생각이지만 '엄마표 세계'에서 두드러진 사람들을 보면 공통점이 하나 있다. 어렵지 않다. 억지스럽지 않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왜일까. 육아를 하며 엄마와 아이의 케미가 맞는 즐거운 활동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엄마표라 불리는 행위의 시작은 주로 4세 전후다. 2세 전까지는 먹이고 자고 똥 치우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삶이다. 2세부터 3세는 무언가를 잡고 반응하고 눈을 마주친다. 3세부터 4세는 걷고 말하고 의사를 표현하려고 하고 4살 후반엔 기저귀 떼는 게 가장 큰 과제다. 일주일에 하루 이틀은 문화센터에 가서 귀여움 폭발하는 모습을 보고 나머지 하루들은 집에서 주위 여러 물건을 집어보고 흔들어보고 때려 부수는 반복 행위를 하는 것만으로도 하루는 다 갔다. 이런 일상을 지나오면 엄마는 아이와 함께 둘 다 즐거운 영역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기 시작한다. 



나의 삶은 독박 육아 그 자체이다. 그렇다고 육아에 소질이 있어 아이에게 온 하루를 집중하는 타입도 아니다. 여러 사정으로 일찍이 어린이집에 보냈고 대신 하원 후에는 아이에게 최선을 다했다. 무릎 내려 아이의 눈을 보고 이야기하기. 바닥에 마음껏 칠해도 잘한다고 칭찬해 주기(지우개로 열심히 지웠다. 매직 스펀지의 존재를 그때 알았더라면 팔이 그리 아프진 않았을 텐데). 원하는 옷 마음껏 골라 입게 두기. 아이가 한 말을 그대로 반복해 주되 다른 표현으로 다시 대답해 주기(경험상 말을 더듬더듬하는 시기에 매우 좋은 방법이다. 풍부한 어휘를 금방 습득할 수 있다). 뻥튀기 큰 봉지 사 와서 온 집안에 뿌려놀기(청소기로 돌리면 되니까). 너무 평범한 것들이다. 아기를 키우는 어느 집이나 으레 하는 소소한 일들이다. 그러다 엄마로서 '나'를 새로 알게 되었다. 정확히는 내가 못하는 영역을 구분 짓게 되었다. 역할놀이는 고되다. 연기를 하기엔 창의력이 부족했다. 보드게임과 같은 정해진 규칙을 설명하는 놀이는 재미없었다. 문해력이 없는 걸까, 왜 이해가 안 되는지.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건 쉽지 않다. 이렇게 재미없는 장난감을 몇 만 원이나 주고 사다니. 이 놀이들을 아이가 싫어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딸은 여느 아이와 같이 하루 종일 역할 놀이에 빠져있고 EBS 광고에서 본 장난감을 모두 사고 싶어 한다. 단지 엄마인 내가 재미없었다. (다행히 이 모든 건 아빠와 함께 한다. 역할놀이도!) 



그러다 함께 물감을 섞어보거나 찍어보면서 아이와 대화하기가 쉽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덕분에 우리 딸은 세 살부터 12색이 아닌 48색 크레파스를 가졌고 초록, 민트, 청록 미묘한 색의 변화를 빠르게 눈치챘다. 그렇게 하나씩 늘어나, 지금은 어떤 작은 미술 교습소보다도 다양한 미술 재료를 구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들이 오해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미술을 시킬 거냐고. 결코 아니고 그런 생각을 해본 적도 없다. 그저 미술도구를 이용한 놀이가 우리에겐 서로 소통하는 창구가 되었을 뿐이다. 이렇게 엄마표 미술이 시작되었다. 2년 정도가 지나 6세가 되니 아이는 스스로 생각을 표현하고 혼자서도 미술놀이를 즐겼다. 엄마표 영어나 책 육아 분야 유명인들의 말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과를 자랑하기엔 엄마표 미술은 애매하다. 아이가 미술로 이름을 떨치거나 엄청난 작품을 만드는 게 아니다. 사실 이건 방향 자체가 잘못되었다. 미술을 시킬 거냐 하던 사람들의 오해와 같은 맥락이다. 



엄마표 미술을 하다 보니 아이 성장 단계별로 다른 친구들이 하는 고민을 자연스럽게 하지 않고 지나가게 되었다. 나는 지인들이 한 번쯤 해본, 연필을 잡기 싫어한다든지, 글씨를 쓰기 싫어한다든지, 동그라미도 겨우 그라든지 하는 고민은 하지 않았다. 엄마표 미술을 하면 아이가 엄청나게 그림을 잘 그릴 것 같지만 굳이 일반적인 기준으로 비교를 하자면, 일찍이 미술 학원을 다닌 아이들보다 훨씬 못 그린다. 동그라미를 못 그려도 엄마표 미술은 할 수 있다. 오히려 그릴 줄 몰라서 더욱 즐겁게 접근할 수 있다.   



아이의 성장과정에서 미술은 정말 좋다. 손가락 힘도 기를 수 있고 감정 표현력도 기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주변에 엄마표 미술을 해보라고 추천하지 않는다. 엄마가 좋아하지 않는데 혹은 아이가 흥미도 없는데 미술로 유도할 필요는 없다. 엄마도, 아이도 누구나 자신이 잘 하는 분야나 좀 더 재미있는 분야가 있다. 엄마표의 궁극적인 목표는 어떤 분야의 전문가를 만들려는 게 아닌 아이와 공통의 관심사를 도구로 소통하기 위함이다. 


딸 친구 A의 엄마는 아들 둘맘이다. 아들 엄마라서인지 그녀 고유의 장점인지 기계적이고 구조적인 아이디어가 좋다. 뭐든 뚝딱 조립하고 로봇 변형은 일도 아니다. 아들 A와는 보드게임을 하며 소통하는 시간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A도 모든 방면에서 논리적이고 영특하게 자라고 있다. 이건 엄마표 사고력 아닌가. 딸 친구 B의 엄마는 딸 둘 맘이다. 원체 외향적인 성격에 한시도 집안에 있지 않는다. 그런 엄마 덕에 아이들은 하루도 빠짐없이 놀이터고 공원이고 나가서 뛰어노는 시간을 보낸다. 남들처럼 독서에 연연해하지도 않는다. 딸은 기질적으로 내향적이지만 밝고 명랑하게 크고 있다. 이게 바로 엄마표 체육 아닌가. 

이처럼 뭐든 엄마와 아이가 함께했을 때 케미가 좋은 놀이가 있다. 엄마표 영어나 엄마표 수학이 좋아 보인다고, 나만 뒤처져 보인다고 억지로 할 필요는 없다. 어느 정도의 노력은 필요하나 즐겁지 않으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육아의 시간이 고되고 힘들어질 뿐이다. 





엄마표 영어미술,
엄마표 미술을 해도 되는 엄마들?


✔ 나의 허용 범위는 어디까지 인가.


엄마표 미술을 해도 되는 성격의 소유자들이 있다. 일단 미술 전공자나 예술을 사랑하는 엄마면 하늘이 주신 재능이라고 하겠지만 보통 엄마는 그렇지 않다. 엄마표 영어에서도 엄마가 영어를 잘 하느냐 못 하느냐는 논외 영역이다. 전혀 상관이 없다는 이야기다. 예술 전문가가 보면 우스울지도 모르겠으나 육아는 전문지식과는 별개다. 책 육아는 책을 좋아하는 엄마가, 엄마표 영어는 규칙적일 삶을 지향하고 잘 지키는 엄마가 성공할 확률이 크다. 엄마표 미술은 허용 범위가 큰 엄마만이 할 수 있다. 예술은 과학적 사고도 문학적 사고도 들어가는 넓은 개념이다. 경계가 없이 자유롭고 오히려 경계를 넘어갔을 때 높이 평가 받기도 한다. 쉽게 말해, 어제 산 하얀 색 옷에 물감이 묻든, 도배해 깨끗한 흰색 벽지에 크레파스가 그어지든, 식용색소를 장판에 흘리든(빛의 속도로 닦아야 지워진다) 엄마의 얼굴 표정 변화가 없어야 한다는 뜻이다. 간혹 손에 모래도 묻히길 껄끄러워하는 아이가 있다. 처음에는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친구들 대부분은 엄마가 못 견뎌한다. 아이들 누구나 끈적이는 클레이를 만졌을 때, 두 손 가득 아크릴 물감이 묻어 지워지지 않을 때 처음에는 당황하고 낯설어한다. 그럴 때 '이런 느낌이구나', '손이 알록달록 물들었네'라고 태연하게 반응할 수 있는 엄마만이 지속할 수 있다. 안되는 걸 노력하진 말자. 아이는 금방 안다. 



✔ 집에서 멋진 작품을 만들 필요는 없다.


사교육의 힘을 빌리지 않고 엄마와 함께하는 놀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바로 친구들과 비교하는 환경에서 벗어난다는 의미기도 하다. 초등학교 그 언젠가부터 국영수 학원을 다니게 될테다.  사회에 나가서도 분기별 평가를 받는다. 어쩌면 자의든 타의든 평생 평가 받는 삶을 사는데 선행 비교를 경험하게끔 하고 싶지는 않다. 유아 시기의 자존감과도 연관이 있다. 영어미술 과정에도 자존감을 키워주는 포인트가 몇 군데 있다.


아이의 생각이나 표현 방식에 참견하지 않는다. 엄마표 미술을 하는데 어른이 보기에 멋진 작품이 나올 필요는 없다. 엄마표를 하거나 마주이야기를 기록하는 엄마면 더욱 공감하리라. 엄마보다 아이의 생각이 훨씬 깊고 넓다. 영어미술에서 미술 놀이를 완성한 후에는 Show & Tell 시간을 갖는다. 물론 학원에서야 "It's show & tell time!"이라고 시작하겠지만 집에서는 아이의 생각을 듣는 시간이다. 사실 엄마표 영어미술에서는 이 시간도 일부러 의식해서 가질 필요는 없다. 과정에서 엄마의 참견이 곁들어지지 않는다면 어느새 아이는 오늘의 놀이에 대해서도 나아가 엄마가 보지 못한 유치원 생활에 대해서도 쉴 세 없이 말하고 있을 것이다.



✔ 미술관에서 사는 기분을 즐길 수 있는가.


유치원에서 가위질한 여러 종이 조각을 가져온다. 속마음은 바로 버리고 싶지만 이내 포기한다. 우리 집에는 도화지 작품을 보관하는 바구니와 종이 접기 조각을 보관하는 상자가 있다. 유치원에서 가져온 작품은 대부분 종이 접기 상자에 보관해둔다. 처리할 때도 임의로 버리지 않고 아이와 상의해서 직접 버릴 조각을 선택하라고 한다. 우리 집은 사방팔방 깨끗한 벽이 없다. 꼬꼬핀으로 꽂아 걸어두기도 하고 테이프를 사용한 흔적도 허다해 찢긴 부분도 있다. 심지어 3살 아이의 세계를 엿볼 수 있는 난해한 낙서, 5살에 좋아했던 캐릭터, 6살의 마음으로 엄마와 아빠에 대한 사랑 가득 담아 적은 '사랑해' 글씨도 구경할 수 있다. 언젠가 글씨를 잘 모르는 우리 딸이 내게 물어 '눈으로만 보세요'를 열심히 적었다. 그리고 책장 위에 붙여 두고 나만의 미술관이라고 했다. 아이에게 우리 집은 자신의 작품을 전시한 미술관이었다. 엄마표 영어미술, 엄마표 미술을 한다면 어린이 작가님의 미술관에 사는 기분을 즐길 수 있어야 할 것이다.




✔ 분리수거장이 되어도 참을 수 있는가.


나는 프린트하기가 귀찮아서 도안을 활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아니, 한 번도 없었다. 대신 페트병, 플라스틱 뚜껑, 계란 판의 동그라미 뚜껑, 택배 박스, 유리병 등 분리수거장으로 가야 할 재활용을 모아둔다. 특히 휴지심은 쌓이고 쌓여 넘쳐 흐를 정도. 돈 아끼고자 분리 수거 용품을 활용하는 게 아니다. 생활 속에 자투리로도 훌륭한 예술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경험을 줄 수 있다. 의자가 필요하면 원하는 디자인과 기능의 의자를 사도 좋지만, 나만의 디자인과 소재로 직접 만들 수 있다. 대여섯 살 아이에게 기대하는 바가 너무 큰가. 정말 의자를 만들 수는 없겠지만 언젠가 문득 '의자를 만들어서도 쓸 수 있지'라는 생각을 하리라 믿는다. 






아이가 태어나면 먹이고 재우고 웃어주면 되는 줄 알았다. 아이는 어떻게 자라는 건지, 아이는 태어나면서 어떤 존재인지 배운 적이 없다. 그렇게 서툴게 엄마 역할을 하다가 두 살, 세 살 즈음 엄마 역할이 익숙하게 되면 교육이라는 놈이 등장해 어깨를 짓누른다. 나는 영어 교육에, 영재 교육에, 너무 많은 정보를 한꺼번에 맞이해 당황했었다. 더군다나 교육이라는 핑계로 쉽사리 밖으로 아이를 내보내고 싶지도 않았다. 네 살 중후반은 특히나 어렵다. 기관을 옮겨야 하는 시기가 오기 때문이다. 엄마의 선택으로 아이의 유아 시기를 좌우할 것 같은 무게감에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한다. 잠시 숨을 고르고 엄마인 내가 즐겁고 그래도 조금 더 쉬운 영역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좋겠다. 아마도 생각하려는 노력 이전에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파이팅! :)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