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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으로서의 교육 Apr 14. 2020

2014년 4월 14일의 수업

#과거의 오늘

2017년 4월 14일 

2014년 1학기에 두 곳의 대학원에서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한 곳에서는 ‘다문화교육의 철학적 이해’라는 수업으로 선생님들을 만났다. 교재 중 하나가,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었다. 수업계획대로 4월의 한 복판을 지나고 있을 때 그 책을 읽었다... 한 주 한 주 수업에 가는 마음이 뭐라 제대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고 비장했다. 함께하는 모든 분들도... 학기 마치면서 어떻게 이 시기에 이 책을 선택했냐고들 하시는데... 그렇게 말하게 된 현실이 참혹했다.

다른 곳에서는 ‘교사를 위한 다문화교육’이라는 수업으로 선생님들을 만났다. 오래 만난 사이라 같은 시기를 지날 때, 힘들어하는 마음들을 가리지 않고 표출했고, 계획된 수업을 접고 계기수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 힘들어하셔서 (아이들을 위해) 대화를 통해 속을 다 풀고 가야 했는데, 쉽지 않았다. 마음이 좀 회복되어 가신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그 마음을 받아내고 집에 와서는 죽은 듯 쓰러졌다.

같은 시기 학부 교직과정의 ‘교육과정’ 수업에서는 한 성실한 학생이 4월 말부터 장기 결석하는 일이 생겼다. 도무지 연락이 안 되다가, 연결하고 보니, 조카가 단원고 1학년생이었다. 이유를 듣고 보니, 조카와 친구들이 불신과 배신감에, ‘대체 누가 누굴 가르친다는 거예요’라고 항의하며 등교거부를 해서, 조카와 조카 친구들을 만나러 갔다가, 아이들 이야기도 귀 기울여 듣고, 또 안산과 진도를 오가면서 유가족들도 만나고 있었다... 예비교사로서 ‘누가 누굴 가르친다는 거예요’라는 말이 마음에 박혀 올 수가 없었던 것 같았다... 수업을 가서 그 학생의 부재를 확인하면 더 마음이 무거웠다.

같은 시기 초등 예비교사들을 만나는 시간도 너무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기운이 하나도 없는 예비교사인 젊은 청춘들 앞에서, 마침 시기적으로 변혁적 관점을 다루어야 했는데, 부끄럽고 미안하고 무거웠다.

교육 동네에 머물며 다음 세대를 품고 있는 내게도 그 시기 이후 너무나 많은 것이 달라졌다...  


다음 주, 수업계획대로, 변혁적 성격의 인물을 다룬다. 주말 동안 광화문, 안산을 다녀온 학생들, 안산에서 온 학생들과의 수업. 부끄럽고 미안하고 무거운 마음이지만 용기를 낼 수 있도록, '그 마음'을 나눌 수 있도록 마음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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