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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새벽의 모든 것을 담은 레터 새벽녘 운영자 라잎디입니다.
추석연휴를 지내고 나니 새벽기상 패턴이 많이 망가져서 그저께(10월 11일, 토요일) 일찍 일어나 새벽 루틴을 단단하게 해봤어요. 기분이 너무 좋아서 기록을 잔뜩하고 나니 공유하고 싶어서 새벽녘에 담아보았습니다.
늦잠을 자는 주말도 당연히 좋지만, 컨디션이 괜찮을 때는 평일에 못누렸던 새벽의 여유로움을 느껴보는 것도 추천드려요!
4:45am
추석 연휴를 끝내고 나니 몸이 꽤나 무거워졌다. 고향의 새벽을 누리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본가의 침대에는 무슨 마법이 있는 건지 잠이 깊이 들고,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연휴 내내 가족들과 술을 한두 잔씩 곁들여서였을까? 그래서 이번 주말은 평일의 패턴을 다시 시작해야 하고 하니 4시 45분으로 알람을 맞춰놓고 일어났다.
어젯밤부터 내리던 비가 여전히 톡톡 떨어지고 있다. 새벽 산책을 기대했는데 실패가 되려나? 좀 아쉽다. 그래도 창문을 열어보니 한여름 장마때와는 공기가 다르다. 그리 습하지가 않은 비였다. 습기는 땅으로 떨어지고 차가운 새벽의 공기만 슥 창문을 통해 들어오니 기분이 상쾌해서 방에 있는 두 개의 창문을 모두 열어두었다.
4:55am
오늘 하루의 시작도 당연히 붓기차로 시작하기. 곧 날이 쌀쌀해지니 따듯한 티를 마시기 시작할 것 같은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차가운 공기에 따뜻한 티 조합을 즐길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난 10월을 좋아한다. 가장 좋아하는 온도를 지닌 달인데, 벌써 추석 연휴 덕분에 10일의 시간을 즐겼다.
오늘은 상온에 두었던 물병에 있던 물을 따르니 미지근~ 하지만 빈속을 슥 타고 내려가는 물이 느껴져서 좋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투명한 물이 점점 구수한 색을 띠며 차가 우려지는 것이 보인다. 평소엔 차가 우려지는 것을 들여다보고 있을 여유가 없는데, 주말이 주는 여유로움은 내게 일상에서 못 느꼈던 것들을 조금은 더 느끼게 만들어준다. 물을 한 모금, 아니 두 모금 마시고 나서 모닝페이지를 꺼낸다. 처음엔 꾸역꾸역 다 채우기 어려웠던 이 큰 한 페이지가 이젠 좀 아쉽게 느껴지는 걸 보니 글을 써 내려가는 근육이 올해 1월보단 커진 게 아닐까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물론 모든 글자가 다 유의미하지는 않지만, 내 머릿속에 있는 생각들을 아침마다 꺼내어 보면서 나와 마주하는 시간을 갖는 습관 자체에 가치를 더 주고 있다.
5:07am
톡톡 거리는 비 떨어지는 소리.
조용히 나만 있는 공간과 아늑한 조명. 적당한 온도의 우려낸 티와 생각을 끄적이기에 충분한 시간. 잠에서 깬지 얼마 되지 않아 손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지만, 나 혼자 보는 일기장이니 너무 신경 쓰지 않기로 한다.
종종 모닝페이지에 무슨 말을 쓰냐고 물어보는 말엔 나의 잡다한 떠오르는 생각들을 모두 적어둔다고 했는데, 오늘은 무슨 내용을 쓸까? 그렇다 늘 무슨 내용을 써야 할지 모르는 채로 펜을 들고 다이어리를 오픈한다. 시작은 대충 ‘오늘 새벽 기상을 성공했다.’라고 쓴다. 모닝페이지를 쓸 때는 이 글을 쓰는 시간이 언제인지 정도 기재해두면 더 좋아서 대충 아침에 쓴 건지, 저녁에 쓰는 건지라도 적어놓으려고 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 얼마 만에 혼자 보내는 새벽인가 하는 부분에 놀랐고, 갑자기 일주일을 본가에 내려가 가족들과 보내고 나니 가족들과의 관계가 너무 가까워도, 멀어도 좋지 않은 거구나. 가족의 관계도 곧 하나의 인간관계이니 배려하고 존중해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어서 모닝페이지 첫문단으로 적었다.
그러다 보니 추석에 아빠가 내게 ‘너 정말 골 때린다. 뭔가 될 거 같아 너’ 라고 하며 칭찬을 날리셨는데 그게 생각이 나서 적었다. 난 나를 그리 대단하게 생각한 적이 없었다. 항상 애매하다고 생각했는데, 가족들이 긍정적으로 평가해 주니 내 가능성을 내가 굳이 덮어놓고 살아가는 것인가?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 것이지? 명확히 정의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두 번째 문단으로 적었다.
삶에 대한 정의, 방향성을 고민하다 보니 자연스레 일주일 만에 출근해서 다시 부정적인 생각의 뿌리를 부활시킨 회사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늘 적극적으로 능동적인 태도를 취하는 내가 왜 회사에 가면 부정적이고, 수동적으로 변했는지. 나는 회사라는 시스템 안에 살아갈 것인지 생각하다가 운동하면서 이어폰을 꽂고 들은 송길영 작가님의 메세지에 대해 적게 되었고, 오늘의 목표는 서점에 가서 송길영 작가님 신간을 사야겠다는 생각으로 도달했다.
그리고 모닝페이지의 마지막은 감사일기로 채운다. 오늘 아침에 감사한것 4가지를 적었고, 모닝페이지를 덮었다.
5:40am
커피를 마시러 나갈 건데 빈속에 커피를 넣으면 몸에 안 좋겠지. 추석 연휴를 끝내고 과일 잘 챙겨 먹으라고 본가에서 엄마가 챙겨주신 사과를 냉장고에서 꺼낸다. 차가운 과일을 좋아해서 전날 자기 전에 아침에 꺼내 먹을 나를 위해 냉장고에 사과를 미리 넣어둔 나에게 스스로 고마워한다. 스위스 신혼여행에서 스위스는 칼이 좋다며 친구가 사다 준 과일 껍질 깎는 칼을 이용해서 사과 껍질을 깎는다. (이 칼은 요물이다. 한번도 끊기지 않고 사과 껍질을 벗겨낼 수 있다) 무인양품에서 구매한 그릇에 사과를 툭툭 담아 포크를 챙겨서 테이블에 가지고 간다.
가족과 친구와 내가 나를 사랑해서 만들어진 소중한 순간이다.
6:00am
나의 고질병 중 하나는 눈앞에 먹을 게 있으면 참지 못한다는 것.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먹으려고 한 아침 식사들은 하나같이 속도 조절을 하지 못하고 빠르게 먹어 없앤다. 한 줄에 한입씩 슥슥 먹다 보면 읽어가는 속도에 비해 너무 빠르고 허무하게 아침식사가 사라져 버린다.
아무튼, 차갑고 달콤한 사과. 조금 천천히 읽어 내려가야 이해가 되고 공감을 하게 되는 책. 빈 공간이 많아 어쩌면 빠르게 읽고 덮어버릴 수 있는 책인데, 작가님과 편집자님들이 이 책에 이렇게 여백을 주고, 마치 나의 일기장처럼 공백이 많도록 만들어주신 것은 빈칸을 내 생각으로 채우라는 뜻이 아닐까 싶어서 천천히 읽고 나의 경험을 떠올려보게 된다. 다 씹어삼켜 사라져 버린 사과가 담겨있던 그릇은 옆으로 밀어두고 책을 좀 더 읽는다.
읽으면서 작가님을 생각한다. 나는 나의 감정과 상황을 어떻게 표현해낼 수 있을까. 작가님의 표현 방법 중 내가 닮은 게 있나? 나라면 어떻게 썼을까? 여전히 빗소리만 존재하는 새벽인데, 머릿속은 시끌벅적해졌다.
6:15 am
찬물로 세수를 한다.
6:50am
집을 나선다. 편하게 입고 싶은데 날이 갑자기 추워져 입을 수 있는 긴팔을 총동원해서 입으니 이른 아침 시간 대비 너무 꾸민 게 아닌가 싶어 어색하다.
여전히 톡톡 떨어지는 빗방울
공원으로 갈 땐 동네 주민들만 아는 뒷길을 선택한다. 밤새 내린 비 때문에 흙이 너무 질퍽해졌다. 조금만 더 발에 힘을 주면 팔이 푹하고 꺼져버릴 것 같아서 왼쪽 발이 더 가라앉기 전에 불안하게 오른쪽 발을 딛고. 또 오른발이 너무 가라앉기 전에 왼발을 디디니 촐랑촐랑 뛰어가는 모습이 된다. 조급하긴 한데 촉촉한 비포장길을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아 잠깐 몽글해진 기분.
7:00am
오랜만에 새벽 산책을 하고 싶었다. 새벽에 해가 뜨는 맑은 10월의 하늘을 담아내는 것이 내 목표였는데.. 흐리고 흐리다. 비는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다. 아쉽지만 오히려 좋아. 조용하고, 어둑하고 촉촉한 공원을 조금이라도 담아보고자 공원으로 들어간다.
이럴 수가. 아무도 없는 공원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우산을 쓰고, 또는 모자를 쓴 채로 뛰고 걷고 있다. 비가 와서 새벽 산책을 포기하려고 했던 내가 부끄럽다. 각자의 방식으로 주말 아침을 보내고 있다. 얼마나 다양한 형태의 새벽이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우산을 들고 트랙 위를 걷고 계시는 어른들을 보니 흐린 날씨보다 건강과 움직임을 더 중요시하시는 게 느껴졌다. 나를 위한 시간과 건강은 좀 뒷전으로 미뤄두게 되는 30대의 내가 우선순위를 잘못 두고 있는 것이구나. 더 가만히 공원을 걷고 싶었으나 또 해야 할 일들이 생각나서 빠르게 발걸음을 돌리는 내가 조금 아쉽다. 비에 젖은 풀은 더 무겁고, 나무는 더 어둡다. 아무리 평평하게 만들려고 해도 도로는 굴곡이 생겨 물이 고이고, 꽃잎은 많이 떨어졌다.
이사를 한 달 정도 앞두고 있으니 이 동네를 더 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더 많이 둘러보고, 새로운 곳을 가기보다, 계속 생각날 것 같은 맛집을 다시 방문하려고 굳이 굳이 시간을 내고 있다. 아무리 다 똑같은 스타벅스라고 해도 내가 여기서 보낸 시간들은 아마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고, 이사 가고 나면 굳이 이곳에 찾아오는 시간도 줄어들겠지?
7:18am
그래서 작업할 것들을 담아온 백팩을 메고 스타벅스로 들어간다. 오픈한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은 시간. 나도 직원분들도 약간은 잠이 덜 깬 느낌이다. 음료를 시키고 주위를 둘러보니 이미 한참 작업을 하고 있는 사람, 운동을 끝내고 와서 커피에 샌드위치를 먹고 있는 부부, 아이패드에 신문을 띄워놓고 커피를 마시며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 중년의 손님. 학원 가기 전에 엄마 아빠와 아침을 해결하는 중학생. 커피를 시켰으나 커피는 거들떠도 안 보고 핸드폰에 집중하고 있는 청년.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무표정으로 앉아있다가 일행이 도착하니 환한 미소로 대화를 시작하는 사람. 공부할 것들을 꺼내 집중하고 있는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 그리고 컴퓨터를 꺼내 글을 쓰고 있는 나.
공원에서 느낀 것들을 또 느끼게 된다. 내가 잠으로 채워가던 주말의 새벽이 꽤나 역동적이다.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아침 시간이 존재한다. 잠을 자거나 깨어있거나가 아니라 깨어있는 사람들의 다양한 시간이 존재한다. 그리고 꽤나 자발적인 움직임으로 보여서 내게 더욱 동기부여가 된다.
8:15am
그리고 지금. 점점 카페의 좌석이 채워져간다.
오전이 채워져간다. 직원들은 더욱 빠르게 움직이고 있고, 나의 커피는 차가워지고 있다.
재밌는 새벽 시간이었다. 다양한 형태로 더 누리고 싶다.
또 얼마나 많은, 다양한 새벽이 존재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