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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보고, 사랑하고, 기억하라

정원이와 산책하는 법

by 인생정원사
정원아, 저기 봐봐.


"정원아! 저길 보렴. 나뭇잎이 데구르르 굴러가네. 우리 정원이 발밑에 작은 돌멩이가 있구나. 어이쿠, 신발 벗었니? 조심조심, 쉿! 사람이 있을 때는 소곤소곤 이야기하자. 정원아, 엄마 기다려줘! 손잡고 갈래. 그래 고마워. 우와, 우리 정원이 최고! 정말 고마워. 정말 애썼어. 엄마는 정원이가 노력한 거 다 알아. 그래, 잘 했어요. 배고프니? 우리 이따 맛있는 고기 구워 먹을까? 좋지, 좋아."

정원이와 산책하는 길에서 저는 늘 수다쟁이가 됩니다. 사실 저는 과묵한 사람이예요. 하지만 아이와 함께 하는 순간만큼은 아이마음도 읽어주고 주변 상황도 설명해주고 미리 준비도 시켜야 합니다. 그 와중에 단문으로 알아듣기 쉽게 리듬감 있게 이야기해야하지요. 벌써 7년. 이제는 혼잣말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산책할때도 운전할때도 계속됩니다.

정원이와 산책하거나 마트에 가거나 이동할 때는 늘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아이의 눈빛이 어디에 향해 있는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지켜봅니다. 그에 맞춰 몸을 슬쩍 움직이거나 알맞은 말을 건넵니다. 요즘은 고개를 끄덕일 줄 아니 묻고 기다릴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원이 컨디션에 따라 조금씩 다릅니다. 매번 이렇게 원만하게 산책이 진행되진 않습니다. 어떨 때는 나가자고 하는 아이는 울기만 합니다. 울음을 그치고 조절할때까지 기다렸다가 그치면 약속대로 나갑니다. 어떨때는 차에서 내리지 않고 귀만 막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또 기다립니다. 기다리는 것이 첫번째고 설명해주는 것이 두번째죠. 억지로 잡아 끈다하여 이제 정원이를 들고 갈 수 없으니까요. 정원이와 산책하는 것은 조절하는 것을 배우는 과정이자 소통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누군가에게 맡길 때면 늘 처음부터 이 컨디션과 기다리는 법에 대해서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가끔이 이 밀도가 아이에게 버겁게 느껴질때가 있고 저도 낭랑하지 못하고 짜증이 묻어있을때도 있지요. 그럴땐 입을 닫고 음악을 틀기도 해요. 때로는 아무말도 하지 않으며 같은 것을 듣고 있을때도 함께 하는 것이지요.


아이와 간단한 산책에도 늘 많은 것을 생각해야 하지만 그 과정은 즐겁습니다. 매순간 조금씩 자라는 정원이를 가까이서 만날 수 있으니까요. 아이는 기억하고 있거든요. 정원이도 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세상을 두 눈에 가득 담습니다. 때때로 예측하기 어렵고 버거울지라도 아이와의 외출이 소중한 이유지요. 사소한 모든 일정이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처럼 느껴집니다. 의무를 덜어내고 순간순간에 집중하다 보면, 어깨를 누르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집니다.

장애라는 이름표도 무발화란 제약도 잊혀지고 그저 아이와 함께 하는 산책의 순간이 전부거든요. 그러면 아마 우리도 보통의 엄마와 아들처럼 시간을 보내게 되는 것이겠죠. 때로는 그런 일상이 저희에게는 공부랍니다. 바라보고 지켜보고 기억하는 그 모든 순간이요.



모든 그림은 chatGPT와 함께 그렸습니다.



브런치북 <자폐를 가진 정원이의 세계> 1부는 변방의 언어로 머물던 ‘장애’가 아니라, 보통의 아이 정원이가 가진 자폐를 이야기합니다. 2부는 ‘서포트 리포토 for 정원이’로 직접 활용했던 리포트를 통한 구체적인 사례를 기록합니다. 이어서 행정학자인 엄마의 시선으로 정책의 틈을 이야기합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asd-pap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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