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이를 알고 싶어 시작한 공부
정원이가 했던 재활수업을 차분히 정리해 봅니다. 정원이는 언어재활부터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그 뒤로 이어진 수업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래의 연령기준은 만 나이가 아닌 햇수나이 기준입니다.) 사실 전 이 내용을 전체의 표에 아이 최초 진료기록부터 치료가 어떻게 이루어져 왔는지 주기적으로 업데이트를 합니다. 센터는 여러 군데에서 다니지만 그 치료사가 모두 모여 한마음으로 아이의 발달을 상의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언어센터라 표기했음에도 한 센터, 한 치료사만 유지한 것이 아니라 아이의 사정, 거리, 치료사님의 사정 등으로 인하여 매번 헤어지고 만나고를 반복했습니다. 처음에는 그 헤어짐에 저도 아쉬워 울기도 했었지만 만남과 헤어짐의 반복은 정원이를 성장하게 했어요. 다만 모든 재활 수업을 한 센터에서 하진 않았기에 목표 없이 중구난방으로 치료가 진행되면 아이는 오히려 혼란스러워했지요. 그래서 전 방향성을 잡고 목표를 재활선생님들께 공유하면서 타 치료에서 얼마큼 배우고 있고를 공유하고 치료 전 특이사항은 매일 말씀드렸어요. 이는 유치원, 초등학교에서도 담당 특수교사님께 꼭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지금은 활동지원사님께도 꼭 말씀드리고 있어요. 이는 때로는 의무적으로 때로는 잠시 내려놓기도 했지만 그래도 기꺼운 마음으로 성실하게 해냈지요. 매번 10명 가까운 사람들에게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은 쉽지 않긴 합니다.
1) 3~4세 (유치원 입학 전)
- 병원: 언어재활, 감각통합(작업치료 병행), 발달놀이
- 센터: 언어재활*, 감각통합재활*, 음악심리재활*(5세까지)
2) 5~6세 (유치원 특수교육대상자부터 장애등록까지) : 주 15~20회기
- 병원: 언어재활, 감각통합(작업치료 병행)
- 센터: 언어재활*, 감각통합재활*, 인지치료*(6세 시작), 플로어타임*(2달 만에 중지)
3) 7세~8세 (장애등록 이후 초등1학년까지) : 주 10회기
- 병원: 실비종료로 중지
- 센터: 언어재활, 감각통합재활*(8세까지), 인지행동재활*, 특수체육*(8세부터),
ABA(7세부터, 센터 세 번 바뀜)
4) 9세~현재(초등 2학년~ 현재) : 주 8~9회기
- 센터: 언어재활*, ABA, 인지행동재활*, 특수체육*, 미술*,수영(인원이 적어서 대기가 길어요)
*승마의 경우 단발성이고 경련이라는 아이의 특수성 때문에 포기했습니다.
*의 표시는 바우처지원을 받는 수업입니다. 치료단가는 현재 한 회기 기준 5만 원(한 달에 4~8회기)이지만 지원금액은 월기준 10만 원 내외라 한 달에 1-2회기 정도 지원되고 있어요. 자부담이 크지만 그래도 재활을 유지함에 있어서 큰 도움이 됩니다.
아이는 온전히 아이의 모습 대로 우리 곁에서 나름의 속도로 자라고 있습니다. 이 평안의 미소를 지키기 위해 부단히 애써왔습니다. 1학년 입학하자마 민원을 넣고, 이사를 하고, 전학을 했습니다. 그것은 아이에게 지켜줘야 할 기본적인 존중이 무너졌을 때였죠.
그래서 아무리 오래 기다렸던 수업도 아이 존중이 결여된 순간, 그만둡니다. 정원이는 세상을 받아들일 때, 온 힘으로 받아들이거든요. 낯선 세상의 틈에서 겨우 신뢰를 터득합니다. 그리고 신뢰가 깨지면, 온힘을 다해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감당하지 못하면 지쳐쓰러져 버렸지요. 견딜 때는 협조적이고 늘 웃는 얼굴이라 늦게 알아차릴 때가 많았어요. 그래서 지금은 조금 한 템포 쉬어서 생활의 완급을 조절합니다.
저는 정원이가 유리그릇처럼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고 말하진 않습니다. 성장을 위한 고통은 누구보다 많는 감내를 하고 있는게 정원이 입니다. 그렇기에, 어린이가 온당히 누려야 할 존중을 이 아이도 받아야 한고 생각합니다. 어른들은 아이가 내어 준 '라포'라는 신뢰의 무게를 알지 못할 때가 있어요.
작년에 있었던 일입니다. 제대로 해당 치료를 수련하지 않은 상태에서 성인 남성인 치료사가 아이행동의 이유를 파악하지 못한 채, 응용행동분석에 등장하는 '벌'을 준다는 목적으로 발버둥치는 정원이에게 힘으로 중재를 했습니다. 너무나 가볍게.
"전 보통 3분 정도 벌을 줍니다."
전 공부를 하는 학생입장에서도 그리고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로서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아이가 내어준 신뢰가 무너뜨리는 것이었어요. 그렇게 전 항의했고 그만두었습니다. 변한 것은 수업이 하나 줄어든 것 뿐입니다. 치료사의 고유한 방향성은 존중하지만 전체 정원이가 가진 재활과 교육의 방향성과 반대라면 아이가 얼마나 혼란스러울까요?
저는 제 스스로 방향성을 잡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좋은 수업이라도 전체 흐름에서 반대인 수업은 어렵게 들어갔어도 포기했어요. 재활자체의 목표에 부합하지 못한 치료도 있었어요. 못 나가게 하거나 아이의 행동을 강제하거나 문을 잠그거나 혹은 자신의 수업을 위해 다른 수업을 포기하라고 엄마에게 강요하거나. 많은 것을 겪었지요. 그 안에서 아이의 현재를 고려하고 나아갈 길을 찾는 것은 오롯이 제 몫이 되었지요.
다소 힘들더라도 매일 꾸준히 재활 수업을 가는 대신, 아이의 성장을 지나치게 강요하지 않는 기다림을 가르쳐주는 곳, 그 신뢰를 바탕으로 정원이가 커갈 수 있게끔 하는 것이 제 목표였어요. 때때로 사람들은 물었죠. 아이가 이 정도 장애면 그저 어디 기관이라도 맡아주기만 해도 고마운게 아니냐며. 무슨 공을 이렇게 들이냐며, 왜 내려놓지 않아요? 밑빠진 독에 물 붓기 아니냐며. 글쎄요, 좋은게 좋은거는 아니잖아요. 전 그저 아이를 마주하고 존중받는 삶을 지키고 싶은것 뿐이에요. 정원이는 그래도 좋은 인연이 켜켜이 채워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운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여담이지만 지금은 제가 재활공부를 마쳤습니다. 정원이에게 닿기 위해 그리고 생활안에서 가르치기 위해 행동재활과 심리운동을 전공했어요. 정원이와 했던 많은 경험이 저에게 남아 있었고 실습때 아이들을 대하면서 저만의 장점으로 작용했습니다. 그 과정엣 조금 더 정원이를 깊이 이해할 수 있었고, 실습에서 만났던 또 다른 자폐를 가진 아이들을 보며 정원이의 어제와 내일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 만남이 정원이 엄마로서 제가 조금 빛난던 순간이기도 했지요.
브런치북 <자폐를 가진 정원이의 세계> 1부는 변방의 언어로 머물던 ‘장애’가 아니라, 보통의 아이 정원이가 가진 자폐를 이야기합니다. 2부는 ‘서포트 리포토 for 정원이’로 직접 활용했던 리포트를 통한 구체적인 사례를 기록합니다. 이어서 행정학자인 엄마의 시선으로 정책의 틈을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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