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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정원사 Nov 22. 2024

가을과 겨울 사이, 그 담을 넘을 수 있을까

길가의 담을 보며 명상하다

모든 것은 순환한다.
가을은 잃어버린 것을 회복하고,
겨울은 새로운 시작을 준비한다.
 (부루스 리)


가을의 막바지. 떨어진 낙엽의 수는 계절의 전환을 예고한다. 나무는 본래의 가지를 드러내고, 시리도록 차가운 바람이 아침저녁, 마음을 가라앉게 한다. 햇살조차 차갑게 느껴지는 한낮은 이제 겨울이 코앞에 왔음을 알려준다. 여름의 뜨거움이 나에게 아직 고스란히, 생생히 남아있는데, 잠시 멀어진 사이에 가을은 순식간에 스쳐 지나가버렸다. 다채로울 가장 좋은 계절은 채 보름도 되지 않는다. 스치듯 만났지만, 여름의 이야긴 더 이상 나눌 수 없겠지. 나에게 닿았던 여름은 환상처럼, 혹은 꿈처럼 모호해진다. 그 뜨거움은 착각이었을까. 어느새 익숙함은 낯설어진 기억으로 정제되어 있다. 계절은 겹겹이 입고 다시 변화를 맞이할 준비를 한다. 11월은 헤어지며 마주하는 계절이다.


길을 걷다 가을과 겨울 사이에 서 있는 담을 마주 했다. 여름은 그저 담 너머의 기억 속으로 남겨졌다. 다시 여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날것의 심장에 닿았던 온기의 나날로. 닫혀진 담 너머, 여름의 당신을 만날 수 있을까. 여름은 이 가을의 담을 넘어 내게 올 수 있을까. 이별의 무상함은 상실로 이어지고, 기억은 그 농도가 옅어져 공기 중에 흩어진다. 가을의 담 아래 서서, 그 너머의 뜨거움을 그리워한다. 그러나 다시 겹겹이 입은 외투를 여미어 걷는다.

아, 그것은 담이 아니라면, 함께 오를 저 겨울빛으로 녹아드는 계단이라면. 그래서 맞닿을 온기를 거리낌 없이 누릴 수 있다면. 우리, 이 가을의 담을 넘을 수 있을까.



때로는 인간관계에 미련이 생겨 멀어지는 게 힘들 때가 있어요. 시간을 돌리고 과거의 선택을 후회할 때도 있지요. 넘지 못하는 담이 아니라, 함께 오를 계단이었더라면, 시간과 거리가 멀어져버리면 관계도 멀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막연한 불안을 넘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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